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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람에게 500억 원어치 판 장삿꾼, 아이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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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 사람에게 500억 원어치 판 장삿꾼, 아이템은?"

[강주원의 '국경 읽기'] 단둥, 한 걸음 더 들어가기 ②

'한중 FTA'에 '남북 교류'의 길을 묻다

늦은 밤, 아내가 "홈쇼핑에서 단둥에 있는 회사가 만든 중국 제품을 판매하네. 예쁜데, 나 하나 구입해도 될까?"라고 묻는다. 직업병이 도진 나는 아내에게 "회사 이름이 뭐지? 저 옷은 정말 중국에서 만들었을까? 아니면 북한에서 만든 것일까?" 또는 "중국 단둥의 북한 여공이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아내는 "또 시작이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채널을 돌리니, <잘살아보세>라는 프로그램(채널 A 2015년 11월 28일)에서 한 탈북 여성이 입고 나온 옷이 화제였다. 그녀의 옷은 북한에서도 입었던 것이었다. "남한 옷이래도 믿겠어! 북한의 최신 유행 패션", "보고도 믿기지 않는 북한 옷"이라는 자막과 함께 남한의 남자 연예인은 "이런 옷이 북한에도 있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저 옷은 한국 제품일까? 중국 제품일까?" "북한 여공이 만들었고 한국에서도 팔렸던 옷일 수 있는데!"라는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한 달 전, 평양에 갔다 온 조선족 H는 서울에 오자마자, 지인에게 "평양에서 아기 옷을 만들기 위해서 한국 원단의 패턴 디자인이 필요한데, 얻을 수 있니? 평양 사람들이 원하네!"라고 부탁을 한다. 한편, 2015년 11월 마지막 날, '한중 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와 관련된 뉴스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남북한 경제 협력 사업의 아이콘인 개성공단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재도약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동시에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 310개 품목이 특혜 관세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더욱 높여 중국 수출길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2015년 11월 19일)

위의 기사처럼, '한중 FTA'와 '남북 교류'는 개성공단 밖에 연결고리가 없는 것일까? 단둥의 압록강 유람선 광고판에는 한국 걸 그룹 소녀시대 뮤직 비디오가 하루 종일 방송되기도 한다. 강 건너편 신의주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한국 노래와 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단둥과 신의주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이다.

▲ 2013년 여름 신의주의 압록강에는 소녀시대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고 있다(2013년). ⓒ강주원

▲ 단둥의 보세 창고는 3국 무역의 중심에 있다(2014년). ⓒ강주원

단둥의 보세 창고는 3국 무역의 축약판

무역의 방식은 복잡하고 때로는 무역 통계가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한중 FTA'와 관련되어 "개성공단의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효과" 즉 미래를 언급할 때, 단둥 사람들은 '한중 FTA'를 북한과 관련된 3국 무역의 확대와 활성화의 계기로 여긴다. '한중 FTA'를 놓고 그들은 다른 생각을 한다.

왜 그럴까? '한-중 무역'과 '북-중 무역'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 단둥의 무역 현장에 가면 보인다. 먼저 단둥에서 펼쳐지는 3국 무역의 현주소를 이해해보자.

단둥에서는 의류 생산과 관련되어 중국의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법 이외에, 두 가지 방식이 더 있다. 하나는 평양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둥의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산한다. 둘 다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이점이 있다. 단둥 사업가들은 평양에서 중국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중국과 한국의 원단을 제공해서 평양에서 만든 제품들은 단둥의 보세 창고를 경유해서 한국을 포함한 제3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이익이 된다. 중국의 관세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한국으로 수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둥 사람들은 평양에서 생산된 제품에 'MADE IN CHINA'를 붙여서 한국에 수출하는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제품들이 한국에 수출되었다가, 다시 중국 단둥으로 역수입되고 북한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한국 홈쇼핑에서 팔리는 중국 단둥 회사 제품"과 "방송에 출연한 탈북 여성의 패션"은 남북 교류의 또 다른 장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통계에 보이지 않는 남북 교류가 가능한 것은 단둥에 한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조선족과 북한 화교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국 무역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무역 현장 가운데 하나는 단둥 보세 창고들이다.

5.24 조치 이전, 단둥 보세 창고는 중국을 경유하는 남북 교류의 메카였다. 창고에는 무관세 혜택을 받는 북한의 물건이 한국으로 수출될 날짜를 기다리곤 했다. 예외는 있었지만 보세 창고에 쌓여있는 물건의 모습 그대로가 3국 무역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5.24 조치 이후, 단둥 보세 창고들의 물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보세 창고에 중국 물건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단둥 보세 창고에는 중국 제품들이 쌓여있다.

단둥 사람들은 보세 창고에 있는 'MADE IN CHINA' 물건을 보고, 북한에 생산되었지만 한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으로 읽는다. 5.24 조치로 금지되어 있지만, 그들은 한국 물건을 단둥 보세 창고로 수입해서 중국이 아닌 북한으로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2014년 2월, 보세 창고에 나와 함께 갔던 한국의 연구자가 "내가 며칠 전 (한국의) 백화점에서 구입한 중국 제품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죠? 이 제품들이 평양에서 만들었다고 설명하셨는데 왜 'MADE IN CHINA' 라벨이 붙어있죠?"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 단둥 보세 창고들이다.

이처럼, 5.24 조치 이후 남북 교류의 무관세 혜택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단둥의 무역은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3국 무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중 FTA' 이후, 한-중 무역의 관세 혜택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 단둥의 3국 무역은 어떻게 될까? 앞의 <헤럴드경제>가 전망한 기사 내용을 단둥의 사업가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다르게 읽을 것이다.

3국 무역의 아이콘인 단둥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재도약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동시에 단둥(북한 포함)을 통해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들이 관세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더욱 높여 한국 수출길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과 마찬가지로 단둥은 북한 내 노동력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단둥에 거주하는 북한 노동자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대로 한국의 물건이 '더 저렴한 가격'에 단둥으로 수입되어, 중국에서 북한으로 수출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는 단둥의 무역 현장만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북-중 국경 지역의 중국 국경 도시들은 한반도(한국과 북한)와 연결되어 있다.

▲ 조선족 거리는 점점 더 북한과의 거래를 강조하는 문구들로 채워지고 있다(2015년). ⓒ강주원

▲ 조선족 거리를 살펴보면, 북한 사회에서 유통되는 물건들을 미루어 파악할 수 있다(2015년). ⓒ강주원

조선족 거리에 남북 교류가 녹아 흐른다

5.24 조치와 상관없이, 2010년 이후 단둥의 조선족 거리의 변화는 두 가지이다. 예전에도 '조선(북한)과의 무역을 강조'하는 문구는 조선족 거리를 걷다보면 쉽게 보였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이런 간판이 늘어났다. 그들이 중국 제품만 판매하지는 않는다.

"저희 공사는 액체 및 고체 화공 제품을 경영하는 전문 공사로 조선과 수년간의 수출 거래를 해왔습니다."

"전기 제품들을 조선으로 수출하며 장기간 눅은 가격으로 제공해드리며 품질을 담보하고 빠른 속도로 제품을 제공해드립니다. 품질도 제일 신용도 제일 조선고객님들과의 신용합작을 기대하며 많은 분들의 광림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조선족 거리의 풍경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북-중 무역만의 현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0년 전에도 조선족 거리에는 한국 물건들을 도매로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여기에서 판매되는 물건들의 최종 도착지는 대부분 북한이었다. 5.24 조치 이후에, 이런 상점들이 줄지 않고 오히려 현지 조사를 갈 때마다, 새로운 가게들이 개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식료품들을 취급하는 가게에 들어가 보면, 판매 가격이 한국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상점 주인은 "한국의 대형 마트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형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매하기도 한다. 그보다는 (한국에서) 대형 마트가 생기면 주변의 상권이 무너지고 그 결과 많은 소형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면 땡처리 물건이 발생하죠. 그런 물건을 구입해서 단둥에 가지고 오면 북한 사람들이 물건을 싸게 구입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웃으면서 설명하지만, 그의 말 속에 3국 무역의 전형이 담겨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조선족 거리의 대표 히트 상품은 '태양광을 이용해 충전하는 발전기와 제품들'이다. 장사가 잘 되는 한 가게가 북한에 판매한 제품 금액만 한국 돈으로 500억이 넘는다는 말이 돌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 화교 C는 이렇게 말한다.

"북한 사람들의 구매 패턴이 바뀌고 있다. 북한 사람들이 이제 태양광 조명 제품도 한국 것을 찾아!"

단둥 사람들은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제품(농수산물 포함)을 생산하고 이를 한국에 수출한다. 그들은 북한에서 인기 있는 제품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고, 북한 사람들이 한국 제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선호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제품들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북한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20여 년 넘게 삼국 무역의 중심지에서 살아온 단동 사람들은 '한중 FTA' 이후 어떤 사업의 길을 걸어갈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5.24 조치'와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는 남북 교류의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중 FTA 비준 동의안'의 국회 통과는 남북 교류의 길이 하나 더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한중 FTA'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5.24 조치 해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다.

단둥 사람들의 범주에는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에게 그동안 걸어왔고 앞으로 걸어갈 남북 교류의 길을 묻자!

▲ 5.24 조치 이후에도, 조선족 거리에는 한국 물건을 파는 가게들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2014년). ⓒ강주원

▲ 단둥에서 북한으로 수출되는 태양광 전기 관련 제품들이다(2015년).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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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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