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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행 피해자 "상처가 얼마나 남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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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행 피해자 "상처가 얼마나 남았는지…"

[언론 네트워크] 아버지에게 어릴 적부터 성폭행…벗어났지만 빚은 남아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언제쯤 잊을 수 있을까요. 아직도 진행중이에요. 얼마만큼 남아있을지 알 수가 없어요."

유미나(가명‧24)씨는 고개를 떨구었다. 제대로 된 첫 질문을 건네기도 전에 그의 눈은 금세 울 것만 같았다. 미나 씨는 어릴 적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지속적인 성폭행을 자진신고 한 것도 미나 씨였다.
"죄를 진 건 제가 아닌데, 자꾸만 제가 죄인 같았어요. 할머니를 가끔 만나면 저에게 역정을 내세요. 그러면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럴 수 있겠다는 이해도 되고 그래요.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데 왜 내가 눈치를 봐야 하고 미안해 하는 건지 정말 속상했어요."


▲ 미나 씨(사진 왼쪽)에게 새겨진 상처는 너무 깊다. 언제쯤 사라질지 알 수도 없다. 현재 진행형인 이 싸움을 미나 씨는 오늘도 꿋꿋하게 해나가는 중이다. ⓒ충북인뉴스(육성준)

아버지는 성폭행 죄로 감옥에 수감됐다. 미나 씨의 사춘기는 남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처들로 얼룩졌다. 미나 씨의 엄마는 충격으로 더 이상 엄마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병원을 전전했다. 미나 씨는 자신이 원치 않게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몇 차례 학교를 옮겼고, 피해자 보호 쉼터시설에 들어가기도 했다.


"친구들이 보도를 보고 네 얘기 아니냐고 의심했어요. 그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미나 씨는 청주를 떠났다. 미나 씨를 도와주던 모든 손길도 뿌리쳤다.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었고, 일부러 살도 찌웠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 눈길을 받는 것 자체가 싫었다.

"청주를 떠나 다른 도시에 머물며 무작정 일을 했어요. 잊기 위해서는 열심히 무슨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관심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 때는 어리기도 했고요."


미나 씨에게 불어 닥친 폭풍이 지난 간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아빠는 형을 마치고 출소했고, 다시금 한 집에 살게 됐다. 아빠가 죄를 뉘우치고 적어도 바뀌어 있을 줄 믿었다. 아빠는 또 다시 미나 씨를 성폭행했다. 미나 씨의 사연은 또다시 보도됐고, 다시 한번 상처를 받았다. 이제 그의 아빠는 전에 받았던 것보다 2배 이상의 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몇 달 전 생을 마감했다. 그는 엄마를 떠나보낼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기둥을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남들이 뭐라고 해도 제 엄마였고, 사건이 터졌을 때 엄청 미안해하셨거든요."


미나 씨는 병원에 있는 엄마를 지극히 돌봤다. 나중에 엄마에게 모진 말을 들었을 때도 미나 씨는 모든 걸 이해했다.

ⓒ충북인뉴스

미나 씨는 다시 유치장에 들어간 아빠를 봤을 때 너무 기분이 이상했다.

"유치장에서 본 아빠 모습은 그토록 제가 원했던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왜 그런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지 너무 슬펐어요."


아빠는 가끔 미나 씨에게 편지를 보낸다. 미나 씨는 처음에는 원망의 말들을 적어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의 편지에 덤덤히 답장을 쓴다.

그는 지금도 12시간 가까이 일을 한다. 집에 와서는 유기견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을 돌본다. 미나 씨는 지금도 잠을 잘 못 잔다. 깨어 있는 동안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것도 좀 더 편히 잠들기 위해서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려면 몸을 바삐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어요. 강아지를 고를 때도 제일 못 생겨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것들을 데려와요. 그런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얼마 전에 죽은 개도 화장해서 유골함에 보관중이에요. 왠지 흩뿌리면 날아가는 느낌이에요. 엄마도 화장했는데, 조만간 수목장에 뿌려줄 계획이에요."


미나 씨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또 하나의 꿈은 돈을 벌어 애견센터를 내는 것이다. 1층엔 애견 센터를 내고, 2층엔 집을 꾸미고 싶다. 미나 씨처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그는 어떠한 말을 해주고 싶을까.


"
잘 모르겠어요. 그런 친구들 보면 얘기 듣다가 제가 더 많이 울 것 같아요. 정이 너무 많은 스타일이라, 지금은 정말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미나 씨는 어떤 지원을 받았나

성폭력 피해 전문기관에서 입증…전세주거지원 받아


미나 씨는 밝고 씩씩한 성격이다. 중학교 때 당시 성폭력 강의를 하러 왔던 최종미 지부장(현 한국피해자 지원센터 지부장)을 처음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끝나지 않는 아버지의 성폭행에 미나 씨는 좌절했지만 남들에게는 어두운 모습을 감췄다. 최종미 지부장은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확률이 높아요. 미나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껴요. 강한 정신력으로 그나마 이정도 극복하고 새로운 생활을 꾸리는 거죠. 범죄피해자의 경우 그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아예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죠"라고 말했다.

미나 씨는 성폭력 전문 지원 기관의 도움으로 범죄를 입증했다. 청주의료원에 있는 충북해바라기센터에서 먼저 사건을 입증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후 다른 지역에 있는 쉼터에서 생활했다. 청주에는 미나 씨가 거주할 수 있는 쉼터시설이 없었다. 쉼터에 다니면 중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학력 인정을 받아 중학교 졸업장은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리다가 최근 공장에 들어갔다. 현재는 청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주거지원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5000만원 전세금을 지원 받았는데 20년 연속 지원이 가능하다. 다만, 결혼을 할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미나 씨는 지금 가장이다.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미나 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장 애견 미용 학원을 다녀야 하지만 우선은 생계가 빠듯하다. 아버지가 놓고 간 빚도 미나 씨의 몫이다. "이제 아빠 빚이 얼마 남지 않았아요"라고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프레시안=충북인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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