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하면 음악이 떠오릅니다. 아프로-큐반 재즈라는 장르는 이제 고유명사로 굳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아프리카와 쿠바의 혼이 어우러진 재즈 음악인데요, 쿠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온 조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전통은 낮선 일이 아니겠지요. 우리에게도 이런 음악은 익숙합니다. 쿠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보셨을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한국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거장 빔 벤더스의 이 영화가 11월에 재개봉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쿠바에서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국내 여행사에 문의했습니다. 쿠바 전문 여행사인 글로벌 그린에는 음악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쿠바 여행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살사 투어, 그리고 아바나 재즈 페스티벌 투어인데요. 이런 상품을 이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네요. 물론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1년 365일 언제나 쿠바의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쿠바에서 음악은 그런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외국 소식과 쿠바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면, 훌륭한 뮤지션들이 일년 내내 아바나 시내 어디선가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다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먼저 대망의 개막을 앞둔 아바나 재즈 페스티벌부터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통상적으로 12월 중에 4~5일간 매년 열리는 축제입니다. 올해는 12월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데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프로-쿠반 재즈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Chucho Valdes) 씨가 조직한 것이라고 합니다.
추초 발데스의 음악을 한번 감상해볼까요? 유투브를 이용해 봤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여가수이자 시인, 프로듀서인 콘차 부이카(Concha Buika)와 함께 한 노래입니다. 시보니(Siboney) 라는 제목의 이 곡은 1929년에 발표된 쿠바의 유명한 대중 음악입니다. 쿠바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는 노래인데, 아바나 근교의 지명이기도 합니다.
한쿠바교류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윤초원 씨는 가장 좋아하는 쿠바 뮤지션이 누구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추초 발데스"라고 말합니다. 실제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초원 씨의 말이라 더 신뢰가 갑니다. 추초 발데스 씨는 전 세계의 여러 뮤지션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중국 뮤지션과 함께 공연을 했다고 하는데요, 전 세계 어떤 음색을 내는 악기든 어떤 음계를 쓰는 노래든, 음악은 그 스스로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초원 씨가 쿠바 음악에 빠지게 된 이유가 뭘까요?
"2011년에 3개월 정도 남미 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사실 제 전공이 피아노이기도 해서, 남미 음악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거든요. 애초 여행을 떠난 게 남미 음악을 마음껏 즐기자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을 여행하고, 많은 공연들을 봤어요. 그런데 성에 안차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마지막에 쿠바에 도착한 거에요. 충격을 받았죠. 아프로 쿠반 재즈라는 것도 그때 제대로 느껴본 것 같아요. 이 곳 음악은 한마디로 말해 수준이 다르다, 이런 느낌이었죠.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문화를 중시하는 이 작은 나라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혁명 이전에도 쿠바 음악은 서구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고 하잖아요. 혁명을 거친 후에도 쿠바 사람들에게 음악은 마치 식량과도 같은 무엇이었던 거 같아요. 공연 수준도 다르더군요. 확실히 쿠바 음악은 볼만 하다. 여기에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음악을 장려합니다. ECM, 즉 '쿠바음악인스티튜트(Instituto Cubano de la Música)'라고 쿠바 문화부 산하의 음악 관련 기관들이 뮤지션들과 잘 어우러져 협력하고 음악 페스티벌을 조직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잘 돼 있는 것 같아요."
쿠바 여행 중에 저도 쿠바의 뮤직 페스티벌을 즐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원 씨가 추천한 '레오 브라우어(Leo Brouwer) 페스티벌'의 한 프로그램을 택했어요. 마침 레오 브라우어 페스티벌 기간이었거든요. 레오 브라우어는 쿠바에서 국민들로부터도 그렇고, 정부로부터도 그렇고, 매우 신임을 받는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라고 합니다. 음악 뿐 아니라 각종 문화 행사 기획에 있어서 거장이기도 합니다. 레오 브라우어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이 페스티벌은 지난 2009년에 시작됐다고 하네요. 올해가 7번째입니다. 초원 씨 말을 다시 들어보죠.
"레오는 자신의 꿈이 있다고 설명해요. 모든 사람들에게 문화, 교육, 복지의 기회가 동등하게 돌아갔으면 하는 꿈이 있고, 문화적 다양성이 널리 존중받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뮤지션으로도 일가를 이룬 분이고, 기획자로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죠. 레오 브라우어 페스티벌을 보면 그야말로 다양성을 굉장히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플라멩코, 일렉트로닉, 재즈, 클래식, 힙합, 영화, 뮤지컬, 오페라, 아이들을 위한 공연,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을 넘나들죠. 쿠바는 음악에 있어서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어떤 음악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나라같아요."
이 공연은 10월 5일, 올드 아바나에 있는 쿠바 국립 미술관 소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최근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요? 공원 후원자 명단에 미국 정부가 당당히 들어 있습니다. 격세지감이죠. 7시 공연인데, 6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집니다. 쿠바에서 이 정도는 익숙해 져야 합니다. 지루함을 여유로 바꾸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초원 씨에게 누군가 인사를 던집니다. 레오 브라우어 페스티벌은 아바나 곳곳에서 23일에 걸쳐 약 이틀 간격으로 공연들이 열리는데요, 알고보니 이틀 전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칼 막스 테아트로(Tearo Karl Marx)에서 열린 공연이었던 시나트라 밋츠 베니 모레(Sinatra meets Benny More)에서 만난 쿠바 음악 팬입니다. 스페인 출신인데, 쿠바 사람과 결혼을 해 쿠바에 살고 있다고 하네요 레오 브라우어 페스티벌의 모든 프로그램을 섭렵할 목표를 세우고 벌써 열흘째 공연을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공연은 한 편당 단 돈 10세우페!(CUP) 즉 우리 돈으로 400원 정도입니다. 쿠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계 최고의 뮤지션을 눈 앞에서 보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초원 씨가 쿠바 음악이 왜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설명해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음악은 대중과 함께 해야 발전합니다. 음악의 본질은 대중과 소통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름 때 묻은 노동자도, 펜을 잡은 공무원도, 말레콘을 달리는 택시 운전수도, 운치 있는 호텔의 벨보이도, 의사도, 선생님도, 장관도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나라, 상상이 가시나요? 초원 씨는 "쿠바 사람들 자체가 문화에 대한 자부심, 관심들이 대단한 거 같다. 한국에서는 이런 공연은 초대권을 줘도 잘 안 가게 된다. 워낙 여유 없이 사는 삶이라 그럴 거 같은데, 이 곳에서는 다들 문화 이벤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합니다. 혹시 오해하실 까봐 하는 말인데, 저와 같은 외국인 관광객은 10세우세(CUC), 즉 1만 1000원 가량을 내야 합니다. 초원 씨는 문화 비자를 제시하고 400원에 들어갔는데 말이죠.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자리가 모자랍니다. 계단을 가득 채우고도, 객석 뒤편에 사람들이 서서 공연을 관람할 채비를 마칩니다. 오늘 공연은 멕시코와 세네갈 뮤지션의 콜라보레이션입니다. 라틴 음악과 아프리카의 음계, 그리고 아프리카 전통 악기 코라(Kora)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궁금하시다고요? 코라는 손으로 튕겨 소리를 내는 게 우리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느낌인데, 서양 음악과도 아주 잘 맞습니다. 함성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쿠바의 음악 페스티벌이 궁금하시다고요? 그렇다면 12월에 있을 추초 발데스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해보시죠. 백문불여일견입니다.
"쿠바 음악의 매력이요? 서양음계와,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과, 미국식 흑인 음악을 연상할 수 있는데, 이 음악들의 장점들만 뽑아서 믹스했습니다. 슬픈 멜로디와 화려한 테크닉, 특유의 탄력 있는 리듬, 세련된 흑인 음악의 감각, 이것이 아프로쿠반재즈를 설명해줍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것만 뽑아서 넣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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