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켜지지 않은 목조건물 내부에서는 인부들이 한창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1층 아래 전시실과 그 아래 벙커 지하실에서도 공사가 한창 이어졌다. 먼지가 날리는 중에도 인부들은 도면을 확인하며 꼼꼼히 시공을 했다. 건물 입구 유리문에는 '개관 준비 중'이라는 글귀와 함께 '출입을 삼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대구경북 첫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개관 11일 전 모습이다.
대구경북지역 첫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사관이 시민들의 힘으로 7년만인 12월 5일 문을 연다. 역사관 공식 명칭은 희망을 꽃 피우다는 뜻의 '희움'을 따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으로 정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위안부 피해자 복지사업을 위해 활동하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내달 5일 오후 2시 '평화와 인권의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역사관 개관식을 갖는다고 24일 밝혔다.
다음 달 개관식에는 대구경북지역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 3~4명의 할머니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에게도 참석을 요청했으나 참석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시민모임(대표 안이정선)은 현재 아카이브·건축·컨텐츠팀 등 3개 팀을 꾸려 한창 개관식을 준비하고 있다. 두 달째 아침 일찍 출근해 새벽 3~4시까지 개관 준비를 하고 있는 시민모임 직원들은 이날도 작업을 이어갔다. 일부 직원들은 경상감영길 옆 기존 사무실에서 역사관 내 사무실로 옮겨왔다.
이날 시민모임이 일부 공개한 내부 모습을 보면, 리모델링은 완료됐고 소규모 공사만 남은 상태다. 전체 면적은 234.70㎡(71평)고 1층에는 2개의 전시실과 벙커 전시실, 2층에는 교육실과 옥상마당이 들어섰다. 1926년 지어진 목조 건물의 90년 역사가 철거되지 않은 채 대부분 역사관으로 남았다. 안뜰에도 건축 당시 심어진 90년이 넘은 라일락 나무가 그대로 심겨져 있었다.
전시실에는 위안부들이 당시 끌려간 징용 길을 입체화한 작품, 손을 대면 체온으로 위안부 역사를 설명하는 작품, 고(故) 심달연·김순악 할머니의 원예압화 작품 등이 설치된다. 또 할머니들의 위안부 피해 증언록과 일본제국주의 소속 군인의 위안부 관련 일지, 신문 기사 등 여러 사료들이 전시된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사료 검토를 거친 출처가 명확한 자료 가운데 일부는 전시되고, 일부는 아카이브화 해 수장고에 저장한다. 뿐만 아니라 시민모임은 위안부 역사관 사이트도 만들어 역사관에 직접 오지 않고도 인터넷상에서 시민들이 자료를 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인순 시민모임 사무처장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함과 동시에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평화를 향한 시민들의 염원이 희움 역사관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희움 역사관이 위안부 문제 해결뿐 아니라 여성인권, 평화를 추구하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며 "개관 당일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시민모임은 2009년 처음으로 대구에 위안부 역사관 설립 논의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대구지역 여러 시민단체로 구성된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같은 해 7월 대구시의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를 채택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기로 했다. 곧 추진위는 역사관 건립을 위해 대구시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구시와 대구시의회는 "중앙정부 사업"이라며 지원을 거부했다. 2012년 대구시의회 정순천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 지원과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안했지만 의회 서명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때문에 시민모임은 자력으로 역사관 건립운동을 펼쳐왔다. 전체 사업비 13억4천만원 중 대구시와 여가부가 각각 지원한 2억원을 빼면 나머지는 시민모금으로 마련했다. 당초 개관은 지난해 8월 15일에 할 예정이었으나 착공일이 늦어져 2번이나 연기됐다. 때문에 지난해 8월 착공 후 1년이 지나서 개관하게 됐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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