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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철학 부재로 정치-경제 망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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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철학 부재로 정치-경제 망친 지도자"

안병욱 "박정희 정권과 싸운 공은 크지만 냉정한 평가 필요"

지난 22일 서거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군부 독재 정권을 상대로 했던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한 측면만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계 일각에선 김 전 대통령의 1990년 삼당합당과 대통령 재임 시절 외환위기를 막지 못했던 한계 등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과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기도 했던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2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재 한국의 정치와 삶을 틀지운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삼당합당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를,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의 편승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위태로운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기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날 팟캐스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와 한 인터뷰에서 "마침 최근 박근혜 정권이 반민주적이고 시대 역행적인 행보를 하는 중에 고인이 서거해 과거 박정희 군사 정권과 대립한 점을 더욱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면서도 김 전 대통령은 "해방 후 현대 정치사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지도자인 만큼 냉혹하게 평가해야 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형식은 민주적일지 모르나 선거를 보면 철저하게 지역 정서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면서 "이를 결정적으로 정착, 고착시킨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삼당합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삼당합당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후신인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제2야당이었던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민주당), 제3야당이었던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공화당)이 1990년 1월 전격 합당한 사건을 말한다.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 여소야대 국면이 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주당, 공화당과의 합당을 추진했고 이로써 현재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하게 됐다. 제1야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 등 민주화 세력에서 보면, 김영삼 총재의 당시 합당 선택은 대권 후보가 되고자 한 '야합'일 수밖에 없었다.
▲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무엇보다 삼당합당은 안 교수의 설명처럼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민주당과 민정당의 합당은 곧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의 연합, 그리고 그에 따른 호남의 고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현재까지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 구조와 영호남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 교수는 삼당합당 때까지만 해도 "지역감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사람들의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그런데 삼당합당으로 "20~30년간 구축되어 온 모순 구조(지역주의)가 아주 고질적인 병폐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런 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 마지막 붓글씨로 남긴 '통합과 화합' 정신이, 민주 정부 수립의 열기가 분출하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점에 안 교수는 아쉬움을 표했다. 안 교수는 "엄청난 공작이 있긴 했겠으나 두 분(김영삼·김대중)이 (1987년 13대 대선에) 각기 출마함으로써 군사정권(노태우 정부)의 연장을 가져왔다"면서 "박정희 정권에 맞섰던 투쟁의 의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대립하며 23일간 단식 투쟁을 했던 그 의지를 조금이라도 당시 내보였다면, 정말로 위대한 정치가 한 분을 우리 역사가 모실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누적된 사회 모순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거치며 외려 심각해진 것은 정치 영역뿐이 아니다. 한국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을 뒤흔들고 그 체질을 바꿔놓은 1997년 외환위기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안 교수는 "외환위기 가능성은 박정희 정부 때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는 3저 호황으로 어물쩍 넘어가다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게 김영삼 정부 시절"이라면서 따라서 그런 면에서 "김 전 대통령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YS의 역량으로 이를 예상하고 막을 수는 없었다"고 혹평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기 전 내내 걱정했던 것이 한국이 세계 4위의 외채국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외채 망국론'이란 것도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김영삼 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앞세운 것은 "우리가 국제 자본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하게 될 상황을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파악 못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식으로건 군사정권 시절의 쇄국 정책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와 흐름을 같이 해야 한다는 면에선 세계화 자체는 옳은 방향"이었으나, 그 내용이 '신자유주의로의 편승'이었던 것은 잘못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문제들은 곧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화 운동이나 대통령 재임 시절 한 금융실명제 도입·하나회 척결처럼 "목전에 놓인 일에 대한 즉자적 대응들은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치 발전과 경제 모순 해결 등에 필요했던 정치 철학은 부족했다는 평가다. 안 교수는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나라를 끌고 가려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미래 사회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게 있어야 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에겐 그런 것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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