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촌구석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출세하고 싶었습니다. 군인이 잘나가던 시대였죠.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집안 형편 탓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일반 대학에 진학했다면 다른 형제들이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군복은 그와 맞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군 상부 비리를 눈감기엔 비위가 좋지 않았습니다. 미련 없이 5년 동안 입어온 군복을 벗었습니다. 군 말년병에서 사회 초년병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음 발 디딘 사회는 IMF를 겪고 있었습니다. 외국계 대형유통업체에 취직했습니다. 외국기업이라 잘릴 위험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여전히 출세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회사도 그를 키우려 했습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새로 온 매장 지점장이 그에게 부하직원을 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숫자가 협력업체 직원까지 15명이나 됐습니다. 쓸데없이 높은 연봉을 준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이를 거부했습니다. 군 시절 부하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지점장은 노골적으로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참다못해 노조에 덜컥 가입했습니다. 노조는 직원을 보호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는 그였습니다. 이후부터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좌충우돌'이 됐습니다. 드라마 <송곳> 이수인의 실제모델 김경욱 씨 이야기입니다.
이랜드 파업의 주인공인 <송곳> 실제모델 김경욱
이야기를 건너 뛰어보겠습니다. <송곳>의 배경이 되는 대형마트 까르푸가 이랜드 그룹 홈에버로 매각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송곳> 주인공 이수인은 여기서 또다시 싸웁니다.
이랜드 사태는 파업 당시만 해도 노동계만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된 사안입니다. 2007년 6월 30일 이랜드 계열사 홈에버 월드컵점을 800명의 홈에버 직원들이 점거하면서 논란이 됐죠. 이랜드 그룹에서 진행되는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주요이슈였습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법이 7월 1일자로 실행됐는데, 이와 맞물려 사회적 파장이 상당했숩나다.
점거는 21일 만에 경찰병력의 진압으로 해산됐지만, 이후에도 홈에버 직원들은 매장 재점거에 나서는 등 지속해서 파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사이 홈에버는 삼성테스코에 매각됐죠. 매각의 효과였을까요? 길거리에서 500일 넘게 싸워오던 직원들은 2008년 11월, 회사와 합의하고 노조 집행부 9명을 제외한 전원이 매장에 복직했습니다. 당시 파업을 이끌고 삼성과의 교섭을 타결한 인물이 김경욱 씨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랜드 파업이 일반적인 파업 중 하나로 생각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기존 노동자 파업과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파업이 벌어진 일은 일찍이 한국 노동역사에 없었습니다. 대부분 대공장이 있는 경남 울산, 창원 등에서만 있어왔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는 점도 여타 파업 사업장과 다릅니다. 이슈도 비정규직 대량해고였습니다. 대부분 파업은 정규직 중심의, 정규직 이슈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77일 옥쇄파업,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309일 크레인 고공농성 등은 모두 정규직 노동자의 구조조정이 이슈였습니다.
이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 주부였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여성이 파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전체 조합원의 90%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들이 500일 넘게 파업에 참여했죠. 이는 영화 <카트>가 개봉하면서 다시금 회자됐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조직인 군대 장교 출신이 노조 간부로
이 파업을 주도한 <송곳> 이수인의 실제인물 김경욱 씨의 이력은 무척 독특합니다. 대규모 파업을 진행한 노조 간부라고 하면 특정 노동계 정치 파벌(정파)에 소속돼 있거나, 학생 출신 위장취업자가 상당수입니다. 하지만 김경욱 씨는 어느 정파에도 소속돼 있지 않았습니다. '학출'도 아니었습니다. 되레 한국의 가장 보수적인 조직인 군대, 그것도 장교 출신이었습니다.
기자인 제가 그를 주목한 것은 이랜드 파업이 끝난 뒤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2008년 겨울이었습니다. 이랜드 파업 타결 뒤 가진 감사의 자리였습니다. 그간 이랜드 사태를 취재한 기자들을 불렀습니다. 장기 파업 사업장 노조가 파업을 타결하고 현업으로 복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타결한다 해도 기자까지 불러 감사를 표하는 예는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모인 기자들도 어리둥절해했죠.
신촌 허름한 지하 술집이었습니다. 소주 석 잔도 마시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날은 기분이 좋았나 봅니다. 기자들이 주는 축하주를 거부하지 않고 주는 족족 받아마셨죠. 새벽쯤 됐을까요? 파업 여독이 풀리지 않은 그의 얼굴은 이내 불콰해졌습니다. 이윽고 테이블 한 귀퉁이에 앉아 팔베개를 하고 누워버렸습니다. 그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을까
이랜드 사태 같은 대규모 파업을 벌인 노조위원장은 대부분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으로 가는 게 비일비재합니다. 70일 넘게 옥쇄파업을 진행한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의 경우, 2015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됐죠. 그러한 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또 다른 노동판에서 그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날 팔베개한 모습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파업 해고자를 받아줄 마땅한 곳도 없었습니다. 파업기간 동안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성공회대 인근 옥탑방에서 혼자 산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한 다리 건너 들려오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비루해야 하는가' 반문하게 했습니다.
그런 그를 만난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들어오던 이야기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평범한 '월급쟁이'였습니다. 그의 변신이 놀랍기도 하면서 궁금해졌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런 궁금증으로 시작됐습니다. 물론, 김경욱 씨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저와는 달랐죠. 노조운동을 시작하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는 드라마 <송곳>의 배경이 되는 시기, 즉 자신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생겨난 여러 이야기들이 주축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했을까요? 그리고 그는 부하직원들을 구조조정에서 구해낼 수 있었을까요? 관리자였던 그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뒤, 불이익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와 나눈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 참고로 이 인터뷰는 드라마 <송곳>이 제작되기 전에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기획은 현재 미디어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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