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전(2006년)에 한 신문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세 살이 된 자신의 큰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걸 고민하다가 결국 중국인 유모를 고용했다.
"중국은 세계의 리더가 될 겁니다. (…) 세 살이라는 나이는 무엇이든지 빨리 흡수할 수 있는 나이에요. 세 살 때 중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저 방안에 중국어를 하는 사람과 함께 몰아넣기만 하면 돼요. (…) 나는 중국인 유모에게 '딸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 중국어만 사용하라'고 말했어요." (<조선일보> 2006년 11월 4일)
이 인터뷰를 하고 나서 얼마 후에 로저스는 아예 뉴욕 맨해튼 집을 처분하고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사해서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이 세계의 리더가 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나는 중국 관련 책에 관심을 두고 읽기 시작했다. 아마 어떤 사람은 책이 아니라 중국 증권을 샀을 텐데!)
그런데 로저스는 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토를 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달갑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G 2'로 꼽히지만 여전이 많은 사람들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중국을 바라본다. <로이터>, <가디언>, <인디펜던트> 기자로 일했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편집장을 지냈던 서방 최고의 중국 전문가 조너선 펜비가 그렇다.
중국의 삼중고, 물-식량-에너지
사실 이 책의 결론은 자크의 제목을 비튼 원제(Will China Dominate the 21st Century?)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결코 21세기를 지배하는 강대국이 되지는 못할 거라는 주장이다. 아주 짧은 팸플릿 분량이지만, 이 책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역사와 현실을 씨줄 날줄로 이어가면서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펜비의 관찰과 분석의 적실성을 따질 능력이 내게는 없다. 여기서는 인상 깊었던 대목 딱 세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경제'.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인정받게 된 데는 개혁 개방 이후 급성장한 경제 성적 탓이 크다. 하지만 이 책은 바로 그 경제적 성취가 지속 가능한지 묻는다. 중국 경제가 지속 가능하려면 물-식량-에너지의 공급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20세기 초강대국으로 등극할 무렵의 미국은 이 세 가지의 공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국은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중국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중국의 북부는 고질적인 물 부족 지역이다. 그런데 베이징과 톈진을 비롯한 대도시가 확장되는 바람에 도시의 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도시의 물 수요가 증가하면서, 북부의 밀 농사에 쓰일 물이 부족해지고 있다. 여기에 흉작이 겹치기라도 하면 중국은 물과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은 21세기 중반까지 남부의 물을 북부로 끌어들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토목 사업이 과연 애초 의도한 북부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지, 아니면 남북을 아우르는 새로운 문제를 낳을지 아무도 그 결과를 자신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젊은 층 탓에 중국 농촌에는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젊은 농민이 부족하다. 산업화가 빚어낸 오염물질과 조잡한 화학비료, 독성의 화학농약은 토양을 파괴한다. 여기에 자기 토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농민의 욕망과 토지를 쌈짓돈처럼 생각하는 지역 당국의 탐욕까지 부딪치면서 중국의 식량을 둘러싼 상황은 갈수록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고, 에너지의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석탄 화력 발전은 환경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셰일 석유나 셰일 가스를 캐내려면 (아껴 써야 할) 막대한 물을 낭비해야 한다. 중국은 일단 동부 해안을 따라 짓는 핵발전소를 통해서 단시간에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핵발전소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는 시한폭탄이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날 경우, 후쿠시마 사고 때 그토록 감사했던 편서풍을 타고서 한반도로 '핵사'가 수없이 날아올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동부 해안에 핵발전소가 집중되면, 중국 당국이 꾀하는 동서 균형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단 에너지가 있어야, 돈이 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철인 정치'는 없다
다음은 '정치'. 가끔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를 현대판 '철인 정치'처럼 이상화하는 글을 접하곤 한다. 그런데 펜비의 관찰은 다르다. "효율적인 장기 계획의 본거지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미지와는 극명하게 대비되지만, 1980년대 이후로 중국의 (…) 정책은 단기적 결과를 선호한 나머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사안들을 외면해왔다."
당장 중국의 경제적 성취가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식이다. 중국이 부유해질수록 수많은 중국인이 기회만 있으면 해외로 이주하려고 한다. 부유층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 대기오염과 안전을 자신하지 못하는 먹을거리에 환멸을 느낀 중산층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교육-의료-주거 등 모든 면에서 불이익을 받는 하류층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커져가는 파이와 그것이 부추기는 욕망이 구심력이 되었다. (이런 중국 민초의 욕망을 생생하게 그린 또 다른 외국 저널리스트의 관찰 기록이 바로 에반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펴냄)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식의 경제적 성취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그래서 그들의 욕망이 더 이상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의 공산당이 바로 이 시점에도 여전히 권위를 가지면서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더 나아가 대다수 중국 사람이 납득할 만한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온갖 영역의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그런 상황을 놓고서 과연 당과 소수의 지도자가 최선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답변은 비관적이다.
경제와 정치를 철저히 분리하고 나서, 한쪽(정치)의 참여를 억눌러온 지금까지의 방식은 어떤가? 물론 그렇다고 펜비가 서양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의 상식으로는 이런 중국 정치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것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중국몽'은 우리의 꿈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중국은 큰 나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가 강대국이라고 해서, 이웃 나라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무조건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수많은 죄악을 저질렀지만, '아메리칸 스타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전체가 선망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21세기에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까? 이 질문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아메리칸 스타일에 가장 열광하는 이들은 바로 돈 좀 만지게 된 중국 사람이다. 미국만큼이나 애플의 아이폰에 열광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옷, 머리 모양에서 패스트푸드, 탄산음료까지 중국이 미국화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짐 로저스처럼 중국을 '기회의 땅'이라 여기는 많은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운다. 하지만 더 많은 중국인이 영어를 배우고 있다. 심지어 2012년 퓨 리서치센터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 내부에서도 답변자의 절반 이상이 '미국식 민주주의 개념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응답자 가운데 중국을 동반자로 여기는 응답자는 전체의 39%에 불과했다. (미국은 59%다.)
이런 역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자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중국의 경제적 성취에 압도당한 나머지, 다른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국의 보통 사람은 과연 과거보다 더 행복해졌는가? 시진핑의 '중국몽'은 과연 중국 사람을 넘어서 전 세계인에게도 재앙 아닌 축복이 될까? '아메리칸 드림'보다 더 나은 '중국몽'이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중국이 지금까지 존재했던 강대국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참으로 좋겠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의 등쌀에 온갖 현대사의 상흔을 경험해온 한반도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바람이다. <버블 차이나>는 낙관보다는 비관 쪽에 손을 들게 하는 책이다. 중국과 한반도의 미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토론을 위한 일독을 권한다.
첨언 하나. 짐 로저스는 여전히 중국의 미래를 낙관한다. 다만 그도 대기오염 때문에 가족과 함께 중국에 들어갈 생각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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