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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오너 일가 위해 금융실명제법 사문화?

이명희 회장 차명주식, 국세청 추징으로 끝낼 일 아니다

결국 예상대로다.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은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827억 원어치 주식을 남의 이름으로 보유했는데도 그렇다. 자산의 차명 보유는 불법이다. 관련 혐의에 대해 국세청이 형사 고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국세청은 이 회장에게서 추징금을 받는다. 국세청 관계자가 17일 설명한 내용이다. 이 회장 입장에선 형사 처벌보다 추징금이 낫다. 검찰이 따로 수사에 나설 가능성 역시 지금은 없어 보인다. 재벌의 불법 행위는 쉽사리 처벌 받지 않는다는 통념이 더 견고해졌다.


허술했던 금융실명법, 처벌 조항 신설했지만

이 회장은 그간 신세계 9만1296주(0.92%), 이마트 25만8499주(0.93%), 신세계푸드 2만9938주(0.77%) 등 총 37만9733주(약 827억 원어치)를 전·현직 신세계 임직원 명의로 보유했다.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최근 갑작스레 실명 전환했다.

재벌 총수 일가가 자산을 차명으로 관리한 사례는 흔하다. 다른 말로 하면, 비자금이다. 앞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비자금이 10조 원대"라고 주장했었다. 재벌 총수 일가가 비자금을 운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부분 탈세, 불법 로비 등 범죄 목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돈을 굳이 남의 이름으로 관리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재벌 가 주변에선 비자금을 떼이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이름을 빌려준 측이 차명 자산을 가로채는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지 22년이 지났음에도, 재벌 총수 일가의 비자금이 사라지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과거 금융실명법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 위반에 따른 처벌 조항이 없다시피 했다. 과태료 등 행정처분만 부과할 수 있었다.

금융실명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건 그래서였다. 지난 2012년 경제민주화 논의를 통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렸고, 결국 지난해 금융실명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금융실명법은 자산을 차명으로 보유한 경우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형사 처벌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불법재산의 은닉, 자금세탁 행위, 공중 협박 자금 조달 행위 및 강제 집행의 면탈, 그 밖의 탈법 행위"를 목적으로 차명 거래를 한 경우가 처벌 대상이다. "그 밖의 탈법 행위"라는 표현의 범위가 넓다. 조세 포탈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명희 회장은 조세 포탈범 아니다", 과연?

앞서 금융위원회는 이 회장 사건에 대한 유권 해석을 통해 "신세계 그룹의 차명 주식이 조세 포탈에 사용되었는가 여부"에 따라 이 회장이 금융실명법을 어겼는지에 대해 판단한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이 회장에게 조세 포탈 명목으로 과세하면, 이 회장은 처벌 대상이라는 뜻이다. 칼자루를 쥔 국세청은 이 회장을 봐주는 방향으로 휘둘렀다. 조세 포탈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던 것. 대신 추징금만 걷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이 회장은 조세를 포탈하지 않았을까. 세금을 떼먹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국세청의 논리는 이렇다.

"신세계 그룹의 경우 차명 주식이 거래되지 않았다. 따라서 양도소득세 탈루에 해당하지 않는다. 구학서 전 신세계 회장(현 고문), 이경상 전 이마트 사장, 석강 전 신세계백화점 사장 등 차명 주주들은 모두 실소유자인 이명희 회장과 동일한 종합과세 세율을 적용받아 세금을 납부했다. 따라서 고의로 배당 소득을 탈루한 것은 아니다. 다만, 차명 주식을 최근 실명 전환하는 과정에서 세금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선 국세청이 이 회장에게 증여세를 걷기로 했다."

또 드러난 차명 주식

그러나 국세청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신세계 그룹의 차명 주식이 드러난 건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06년 당시, 신세계 그룹 총수 일가는 약 3500억 원 규모의 신세계 주식 66만여 주를 증여세로 현물 납부했다. 당시 국세청은 차명 주식이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상속 재산이라는 신세계 그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형사 고발 없이 넘어갔다.

이명희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딸이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동생이다. 이 회장은 남편 정재은 신세계 및 웨스틴조선호텔 명예회장과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각각 한 명씩 뒀다. 아들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실질적인 후계자다. 2006년 증여세 현물 납부로, 상속을 둘러싼 세금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됐다는 게 흔한 해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차명 주식이 드러났다. 2006년 드러난 차명 주식이 상속 재산이라면, 이번에 드러난 건 뭔가.

▲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 ⓒ연합뉴스

국세청은 왜 신세계의 거짓말을 받아들였나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2006년 밝혀내지 못한 상속 재산이 새로 드러났다는 것. 신세계 그룹이 지금 이렇게 주장한다. 신세계 그룹의 주장대로라면, 신세계 측은 지난 2006년 당시 거짓말을 한 셈이다. 당시 드러난 차명 주식이 숨겨진 상속 재산의 '전부'라는 게 신세계 측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드러난 차명 주식 역시 상속 재산이라는 게 신세계 측의 주장이므로, 이는 신세계 측이 2006년에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다.

결국 국세청의 잘못이다. 국세청은 2006년 당시 신세계 그룹 총수 일가의 자산 현황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상속 자산을 그 때 왜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나. 신세계 그룹의 거짓말을 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나.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없다.

'(2006년에는 거짓말을 했고,) 2006년 당시에는 감춰져 있었던 상속 재산이 이번에 드러났다'는 게 신세계 측이 지금 하는 주장이다. 이를 그대로 인정해도, 이 회장은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융실명법 상 '금융거래'는 금융자산의 매매·환매·중개 외에도 할인액 또는 배당을 지급하는 것 등으로 폭넓게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신세계 그룹이 의도적으로 차명주식을 보유⋅관리하여 왔다면 조세범처벌법에서 정하고 있는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적극적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당연히 조세 포탈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해석대로라면, 이명희 회장은 형사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국세청은 이런 해석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 버렸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국세청이 갖고 있는 '전속고발권' 때문이다. 조세범처벌법 제21조는 "국세청장, 지방국세청장 또는 세무서장의 고발이 없으면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다. 국세청이 고발을 해야만, 형사 처벌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 이른바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국세청의 전속고발권'이다. 국세청이 조세 포탈 혐의가 없다고 단정해버리면, 형사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국세청의 고발이 없다고 해서, 검찰이 수사조차 못하는 건 아니다. 수사를 먼저 시작하고, 검찰의 요청에 따라 국세청이 고발하는 경우도 있다.

국세청의 '전속고발권'을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나온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같은 성격의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 법 개정이 이뤄졌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검찰총장, 감사원장, 중소기업청장, 조달청장 등도 고발할 수 있다.

차명 자산, 계열사 통한 불법 조성 가능성은 없나?


두 번째는, 이번에 드러난 차명 자산이 계열사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조성한 비자금일 가능성이다.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이 부당 내부거래 등을 통해 불법적인 비자금을 조성한 경우는 흔하다. 이런 비자금이 드러났을 때, "선대 회장의 상속 자산"이라는 거짓말로 둘러대는 경우 역시 흔하다. 이 경우는 명백한 범죄다. 공정거래법 등 다양한 법을 어긴 게 된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선 검찰이 수사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의지인데, 기미가 안 보인다.

경제개혁연대는 17일 논평을 통해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작년 금융실명법 개정의 취지는 완전히 사문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처벌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하고 형사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조세 포탈 행위'에 대해서만 금융실명법 위반의 제재를 할 수 있는 게 지금의 구조다. 경제개혁연대는 "조세법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국세청의 전속고발권 역시 재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이 아닌 다른 기관도 조세 범죄 혐의에 대해 형사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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