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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 '내 얼굴에 침 뱉기'로?

[기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유감

지난 14일 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 정부시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가 광화문 일대에서 열려 자정까지 도심 교통이 마비되는 등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혼란을 야기시켰다.

문제는 2008년 광우병 사태이후 최대 규모라는 집회가 일부 시위대의 폭력과 진압과정의 경찰 과잉대응 논란으로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데 있다.

국내외적으로 경제도 어렵고 서민생활은 더욱 곤고해지는 판국에 때 아닌 과거 회귀성 역사교과서 논쟁으로 국론이 좌우로 분열돼, 하나로 결집해도 모자랄 국력을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낭비해야 하는 건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때에, 잘못된 적(상대)과 싸우는 잘못된 전쟁(The wrong war, at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and with the wrong enemy)"라는 미국 합참의장이던 오마 브래들리 장군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브래들리 장군이 미 상원 군사위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제안한 중국으로의 한국전쟁 확대 주장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나온 말인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를 사령관직에서 물러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였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시책 추진이 위의 네 가지 '잘못'에 추가하여 잘못된 '판단'이 가미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위에서 적을 '상대'로 바꾸고 전쟁을 '싸움'으로 바꾸면 이는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첫째, 시기적으로 이러한 국론분열을 야기하는 정책을 들고 나올 때가 아니다. 최근의 수출부진, 서민경제와 직결되는 지표들인 10%대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률, 민간 소비증가율의 저조,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더불어 증세 없는 복지 논란 등의 정책 혼선으로 민심은 악화돼 있는 상황에 민생경제에 올인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둘째, '장소'(곳)는 당연히 한국이다. 가격과 기술을 앞세운 중국의 강력한 추격으로 한국경제는 이제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가는 형국이고 남북한관계는 물론이고 대미, 중, 일 외교도 친미냐 친중이냐의 논란, 과거사로 불거진 대일관계 등 어느 하나 쉬운 국면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셋째, 국민의 과반수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니 잘못된 상대(적)를 택한 것이다. 갤럽이나 리어미터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이 찬성을 웃돌고 있고, 정부가 국민의견 수렴을 위해 지난 달 3주간 행정예고 기간을 통해 접수된 의견 중 반대 의견을 낸 인원이 전체의 68%에 달하는 32만명으로 국정화 찬성 의견을 제출한 인원(15만명)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총연합회 회원도 절반 이상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상의 브래들리 장군의 명언에 빗대어 거론한 필요.충분 조건과는 별도로 필자가 보는 관점에서 '잘못된 판단'의 근거는 또 있다.

넷째, '친일.독재 미화는 없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대통령은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우리 옛말에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고 “오이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있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시책을 굳이 추진할 이유가 없다.

다섯째, 북한체제를 찬양하고 김일성을 영웅시하는 좌편향 역사교과서가 너무 많아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자가모순'이고 철저한 '자기부정'에 다름 아니다. 왜 그런가?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검인정교과서 제도가 언제 생겼나부터 알아 볼 필요가 있다. 1997년 12월에 제정된 '초·중등교육법'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 1항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국정교과서)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 장관이 검정하거나 (국정 또는 검정 도서가 없을 때) 교육부가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동 2항에서는 “교과용 도서의 범위·저작·검정·인정·발행·공급·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하여, 교과서 검인정은 국가 관여의 제도적 장치 안에서 그 운영이 지속되었다. 특히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안이다.

검정 도서는 교육부 장관이 최초 사용 학년도 개시 1년 6월 이전에 공고한 교과목의 교과서를 대상으로 민간이 제출한 심사본을 일정한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심사한다. 이렇게 하여 교과용 도서로서 사용이 적합하다고 인정된 도서를 합격본이라 하는데, 내용 중 수정 사항이 있으면 교육부 장관이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 이러한 검인정제도 자체도 현 집권당(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김영삼정부 시절 만들었고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는 더 나아가 '교과서 선진화 방안'(2010. 1. 12.)이란 걸 만들어 구미 선진국의 '자유발행제'로 나가기 직전 단계인 '인정 중심의 교과서체제'로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사정이 그렇다면 좌파 정권이라는 김대중, 노무현정부는 차치하고, 사실상 같은 당인 김영삼, 이명박정부를 거쳐 오늘의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검인정 교과서의 관리.감독을 손 놓고 있다가 왜 하필 이제 와서 갑자기 문제를 삼느냐 하는 것이다.

북한체제 찬양과 이적표현물 소지죄(단순소지 제외)는 현행 국가보안법상의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명백한 범법행위인데 주무 당국인 교육부는 어떻게 검인정을 해주고 검찰.경찰은 뭐하고 있었느냐는 말이다. 그런 역사책(교과서)이 버젓이 나돈다면 역대 대통령은 물론이고 교육부장관, 검찰.경찰 총수의 직무유기이자 직무해태가 아닌가. 속된 표현으로 '내 얼굴에 침뱉기' 아닌가. 안타까운 사실은 신문.방송 등 언론이나 어느 누구도 이런 책임소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곳은 한군데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대의 박정희대통령이 취중에 기자들에게 자주 말했다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말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내 갈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유신 개발독재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이제 반세기가 지나는 시점에서 '내 얼굴에 침뱉기'식 정치나 정책은 국민경제적으로 엄청난 비용이나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날로그 시대인 그 시절에 통용됐던 논리가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더 이상 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19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는 박정희대통령 스타일의 1인 '통치'가 가능했다면 그 후 대통령, 여.야당, 국회 중심의 '정치'의 시대를 거쳐 지금은 종교.시민단체 등 각종 경제.사회.문화 단체까지를 아우르는, 말 그대로 '협치'(協治, Governance)의 시대에 와있는데 다시 50여 년 전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게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드는 것이 비단 필자만의 느낌일까...

결론적으로 최선의 대안은 집필진이 좌편향으로 치우쳐 있다면 1차적으로 적정선으로 물갈이를 해서 보수 성향의 필진으로 교체하면 되고 거기서 나온 역사 교과서가 그래도 교과용 도서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정되면 만족할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교육부장관 고유의 권한인 수정명령권을 발동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국정화 방침은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보수.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즉 5년 또는 10년 마다 바뀐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데 전국의 대입 수험생들에 주는 혼란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전혀 대책이 없는 졸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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