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가운데 '체계적 홍보' 개념을 처음 도입한 곳이 바로 삼성이다. 삼성은 1964년 동양방송(TBC), 1965년 중앙일보를 세운데 이어 1973년에는 최초의 광고 회사 제일기획을 설립했다. 두산의 오리콤이 1967년 설립됐다지만 이 회사는 1979년까지 합동통신사 내 광고기획실에 불과했다.
삼성의 홍보력은 두말 없이 '돈'으로 증명된다. 삼성그룹은 명실공히 신문과 방송을 아우르는 최대 광고주다.
삼성이 기자들 월급을 준다고?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달 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삼성그룹은 2006년 한해 동안 TV, 라디오, 신문, 잡지에 2634억 원, 하루 약 7억2000만 원 이상의 광고비를 지출했다.
이는 4대 매체 전체 광고비 총액 4조3242억 중 5.7%에 달하는 액수다. 그나마 이 액수에는 인터넷 광고나 전광판 같은 기타 직접 광고는 물론 각종 기사 및 행사 협찬 등 간접 광고비는 포함이 안 돼 있다.
예컨대 삼성 협찬 로고가 찍힌 신문기사, '2007 삼성 파브 한국프로야구' 같은 타이틀 광고에 들어가는 비용, 삼성언론재단이나 삼성사회봉사단 등을 통한 '사회 공헌 비용' 등을 다 빼고도 그 정도 규모라는 이야기다.
또 전체 광고 시장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GDP(국내총생산)에서 삼성그룹이 창출하는 부가가치 비율의 두 배 이상에 달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2002년 기준 삼성그룹 내 비금융계열사가 창출한 부가가치는 GDP 대비 3.1%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당시 삼성그룹의 광고비 시장 점유 비율은 5.9%로 이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삼성그룹이 실제 광고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유 비중을 훨씬 뛰어넘는다. 삼성 그룹 내 가장 큰 손인 '삼성전자'와 삼성 이미지 광고 금액을 합치면 30대 광고주를 다 합친 것의 13.5%에 달한다.
또 단일 브랜드로서도 삼성은 수위를 다툰다. 가장 많은 광고비를 지출하는 국내 30대 브랜드 가운데 삼성 브랜드는 단연 1위인 '삼성 디지털 익사이팅 애니콜'을 비롯해 삼성그룹 이미지 광고, 삼성전자 이미지 광고, 삼성파브TV, 삼성생명보험 등 무려 5개가 포함된다.
이러한 삼성그룹의 막대한 광고비 지출은 각 언론사의 열악한 재정구조와 겹쳐 각 언론사의 대삼성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로 직결된다.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신문과방송>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종합일간지의 삼성광고 의존도는 최고 1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이 17%(59억8500만 원)로 1위, 경향신문이 16.7%(63억2900만 원)으로 2위, 문화일보가 15.1%(40억8300만 원)으로 3위, 한겨레가 14.6%(61억3400만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물론 액수만 놓고 보면, 동아일보(117억 원), 중앙일보(124억 원), 조선일보(119억 원)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이 세 신문은 광고 총액 가운데 삼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4~5%에 불과하다. '마이너' 혹은 '진보' 언론의 삼성 의존도가 이른바 조·중·동의 3배에 달하는 것.
인터넷 언론은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다. 그러나 <프레시안>의 경우 '평상 기준'으로 따질 때 삼성 광고 비중이 8~9%에 달한다. 일년 열두 달 가운데 한 달은 삼성 덕에 먹고 산다는 이야기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이라는 격언이 저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홍보맨' 이순동
이같은 삼성의 대언론 파워를 상징하는 인물은 이순동 전략기획실 사장이다. 지난 1월 22일 특검에 소환되기도 했던 이 사장은 <중앙일보>에서 10여 년간 기자생활을 한 이후 1981년 삼성전자 판촉부 과장에 입사해 26년간 '홍보맨'의 길을 걸었다.
1991년 회장비서실 홍보담당 이사, 1996년 삼성전자 홍보팀장(상무), 1997년 삼성 회장비서실 기획홍보팀 상무, 1998년 회장비서실 기획홍보팀 전무, 1999년 구조본 기획홍보팀장 전무, 2001년 구조본 기획홍보팀장 부사장, 2006년 1월 전략기획실 사장이라는 이력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이 사장의 손끝에서 삼성그룹의 광고 집행, 언론인 해외 연수 등 각종 지원 사업이 좌지우지되는 까닭에 언론계에선 "이건희보다 이순동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 사장은 2006년 <시사저널> 사태 때 자신의 <중앙일보> 동료였던 금창태 당시 시사저널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학수 부회장과 관계된 삼성 관련 기사를 빼달라고 요구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런 비중으로 인해 이 사장은 전경련 경제홍보협의회장, 한국PR협회장 등을 지냈고 지난 2006년 말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 사장이 2006년 1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이학수 전략기획실 보좌역 보직을 받고 윤순봉 당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이 전략기획실 기획홍보팀장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천하의 이순동도 뒷방 늙은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그룹 내에선 '이순동식 홍보'에 대해 "구태의연할뿐더러 위기 관리 능력도 떨어진다"는 쓴 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삼성 그룹 내에는 제2, 제3의 이순동이 줄을 서 있다.
'반핵반김한미동맹강화' 집회에도 1억 원 선뜻
삼성은 언론 광고나 홍보로 직접 챙기지 못하는 일반 여론도 관리한다. '민주화' 이후 영향력이 커진 시민단체들에 삼성이 찬조금 등의 명목으로 만만찮은 액수를 지원해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삼성의 관리 대상에는 이른바 '극우단체'까지 포함된다.
지난 2003년 6월 한 보수단체의 재정위원장은 이학수 부회장 앞으로 편지를 한 통 보냈다.
"'반핵, 반김 한미동맹강화 6·25국민대회'는 나름대로 잘 끝냈습니다. (…) 보시다시피 적자 대회올시다. 재향군인 회장 등 군원로들 말씀이 이런 때 위원장이 나서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권고도 있고, 또 이런 때 우리 이 회장님이 한번 큰 도움을 주신다면 보수진영 여러 어르신들이 기뻐할 것 같아 감히 일금 1억 원의 협찬을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보수진영의 참 뜻을 잘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를 받은 삼성은 한푼도 깍지 않고 1억 원을 선뜻 지원했다. 이런 까닭인지 보수진영의 이데올로그인 소설가 복거일 씨는 지난해 말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개인적 신의 때문에라도 삼성 비판을 못 한다. 삼성이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비판을 못한다는 거 인정한다"고 털어놓았다.
"삼성을 욕하는 건 배신이다"고 주장한 복 씨는 "삼성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아득하다. 저에게는 지난 20년 동안 그래도 삼성이 기댈 언덕이 됐다. 물론 직접 (돈을) 받은 건 없다. 그러나 내가 도움 받은 걸 추적해보면 그 도움은 다 삼성에서 나온 거였다"고 토로했다.
합리적인 수준의 삼성 비판에 대해서도 '너희들이 나라를 먹여 살릴 거냐'는 악다구니가 뒤따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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