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죄질?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모두 아니다. 법조계 안팎이나 재벌 그룹의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대체로 '삼성 법무실'의 존재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한국의 로펌이 '김&장'과 '그 외 다수'로 나뉘듯 한국 재벌의 법무조직도 '삼성 법무실'과 '기타 등등'으로 구분된다는 이야기다.
삼성 특검이 수사에 착수한 후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한 변호사들은 삼성 법무실 소속은 아니다. 삼성의 공식 법률 대리인은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김우중 전 대우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을 변호해 '회장님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조준형 변호사나 대검 검찰연구관, 감찰과장을 역임한 이완수 변호사 등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내 변호사는 직접 법정에 나갈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에 대한 삼성전자의 소송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린 변호사들이 삼성 소속이 아닌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삼성은 직접 써먹지도 못하는 법무실을 왜,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 것일까?
2004년에 법무실 체계 갖춰
통칭 삼성 법무실로 불리는 조직은 명단, 규모, 업무가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이렇게 베일에 싸인 이 조직의 정식 명칭은 '사장단협의회 산하 법무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에 재직할 때만 해도 '구조조정본부 산하 법무팀'이던 이 조직은 이종왕 전 실장이 영입된 2004년 법무실로 승격했다. 이종왕 전 실장이 김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이후 사표를 쓰고 변호사직까지 버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호남 태생의 특수부 검사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법무팀을 이끌던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 조직은 지속적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시동기인 '8인회'멤버로, 국정원장 물망에도 올랐던 이종왕 변호사 체제로 바뀌면서 재무팀, 경영진단팀, 기획팀 등 구조본 산하 기타 팀들과 달리 유일한 '실' 체계를 갖추게 된 것.
이종왕 전 실장이 사퇴한 이후 법무실을 이끌고 있는 서우정 실장대행도 이 때 삼성에 합류했다. 이 시기는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 문제, 시민단체와 일부 의원들이 '삼성 맞서기'가 본격화 되면서 삼성그룹이 법무 조직 강화에 주력하던 때다.
하지만 '구조본'은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법무실 변호사들의 법적 소속은 삼성전자나 삼성생명 등의 계열사로 나뉘어 있었다. 이종왕 전 실장의 경우도 삼성전자에서 파견 근무하는 형식을 취했다.
삼성의 구조본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증여와 X파일 사건 등이 불거진 이후인 2006년 전략기획실로 전환된다. '8000억원 사회 헌납' 등의 2·7 조치의 후속책으로 나온 3·8 조직개편에 따른 것.
당시 삼성은 세간에서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구조본의 명칭을 전략기획실로 바꾸면서 기존 인력 147명을 99명으로 줄이는 등 체제를 축소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때 법무실도 독립해 사장단협의회 산하로 이관됐다. 하지만 소속만 바뀌었을 뿐 기능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학수 구조본부장'이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으로 '김인주 구조본 차장'이 '김인주 전략기획실 차장'으로 명함만 바꾼 것이 같은 맥락이다.
소수정예의 면면…비법조인으로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 유일
삼성 법무실의 규모는 일반의 예상보다는 훨씬 단촐하다. 실제 법무실 소속 변호사는 10여 명 선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그룹 법무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서우정 부사장과 김상균 부사장이다. 두 사람은 이종왕 전 실장(사장대우)이 지난 해 11월 사퇴한 이후 '공동실장대행'을 맡고 있다. 현재 삼성은 정례 임원 인사를 특검 수사 종료 이후로 미뤄놓고 있어 4월 경이면 법무실의 '원 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서우정 부사장(사시 23회)은 서울지검 특수1부장, 서울고검 검사, 법무부 공보관 출신으로 '삼성법률봉사단' 단장을 겸하고 있다. 2005년 삼성에 몸을 담은 김상균 부사장은 판사(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으로 두 사람은 사시 동기다. 서 부사장은 법률서비스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김 부사장은 소송 관련 업무를 주로 맡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실 내 다른 변호사들도 모두 판사 또는 검사 출신의 '전관'이다. 전직 판·검사의 숫자는 엇비슷하지만 검찰 출신들은 거의 특수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엄대현 변호사는 서울지검 특수 1부, 유승엽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이기옥 변호사는 수원지검 특수부에서 일했다. 이가운데 이기옥 변호사는 자신이 맡았던 삼성전자 관련 사건이 종료되기도 전에 삼성 명함을 찍었다.
법무실 인원 가운데는 유일한 비법조인 출신 인사가 눈에 띈다. <동아일보> 사회부 차장 출신 이수형 상무보는 2004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2006년 삼성에 합류하기 전까지 동아일보 법조팀장을 지냈다.
기자생활 15년 동안 오로지 법조만 출입한 이 상무보는 수많은 법조 관련 특종과 이달의 기자상 8회 수상, 관훈언론상,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한 '법조기자'의 대명사였다. 이 상무보가 삼성법무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공개 채용이 아닌 스카웃 형식으로 충원되는 법무실 멤버의 과반 이상은 영남 출신이라는 점도 짚어둘 만하다.
직접 법정에 설 수 없는 법무실의 주요 기능은 소송을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로펌을 선정하고 승소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삼성중공업 태안 원유 유출 사건 송사 같은 경우가 대표적 예다.
특허 분쟁, M&A 쟁송, 해외 계약 등과 관련된 법률적 검토작업도 법무실의 주요 기능이지만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삼성 인사들은 그를 'JY'라고 부른다)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적 임무다.
이들의 연봉 등 대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1997년부터 2004년 까지 100억 원 정도 받았다"고 증언한 점을 미뤄볼 때 일반 로펌 이상일 것은 분명하다.
2004년 이종왕 전 실장의 삼성 합류 당시 '연봉 20억 원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법조계에서는 "'김&장'의 간판인 이 변호사가 20억에 움직이겠냐"는 이야기가 힘을 얻기도 했다.
지검 수준을 뛰어넘는 계열사 법률팀…이명박 대통령 사위도 한 몫
법무실이 '두뇌'라면 각 계열사에 포진한 변호사들은 손발의 기능을 수행한다.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인 이용철 변호사가 "삼성전자 소속 변호사인 이경훈 상무가 명절에 현찰 500만 원을 택배로 보내왔다"고 폭로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법무실이 계열사 법무팀의 업무를 지원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거꾸로 계열사 법무팀이 그룹 법무실 일을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삼성 출신 인사의 증언이다. 계열사 변호사들과 법무실 사이에 칸막이가 철저히 쳐져 있다는 것.
하지만 계열사 법무팀의 면면도 화려하다. 삼성그룹 내 변호사 총인원은 130여 명 선으로 일선 지방검찰청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지난 2005년 삼성은 '5년 내에 그룹 안 변호사 숫자를 300명 선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국내 최대의 로펌인 김&장 소속 변호사가 300명 선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뉴욕 변호사 자격을 가진 김광호 부사장(법무팀장), 한국과 미국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가진 권기섭 전무,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 출신 신명훈 상무, 뉴욕대 대학원 출신 김재현 상무, 서울지검 검사 경력의 양문식 부장 등이 있다.
삼성물산에는 서울지검 검사를 지낸 김영호 상무(법무팀장), 인천지검 검사 출신인 김대열 상무 등이 있다. 또 삼성중공업 법무팀에는 서울지검 검사 출신인 이명규 상무 등이 소속돼 있고, 삼성화재 법무팀엔 부산지검 검사를 지낸 이상주 상무 등이 포진해 있다.
이상주 상무는 이명박 대통령의 맏사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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