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아이유의 신곡 <제제>에 대해 음원과 이 곡이 담긴 앨범 자체를 폐기하라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곡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한국어판 출판사 동녘은 "아이유의 <제제>는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사가 은근히 선정적인 뉘앙스로도 해석이 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음원 폐기' 논란이 벌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아이유에 애증을 가진 사람들끼리 일으킨 또하나의 '연예계 소동'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란이 벌어지는 본질과 요구사항, 그리고 '해석권'을 가진 주체로 자처한 출판사의 등장 등 상황 구조가 우리 사회 전체를 흔드는 '국정 교과서 논란'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 이미 이런 연상을 공유하는 지적들이 제기가 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9일 역사학자 전우용 씨가 SNS에 글을 올렸다.
전 씨는 "70년대에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고, '미인'은 권력자의 여성 편력에 대한 풍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왜 불러'는 반항기를 조장한다고, 금지곡이 됐습니다"라며 "검열하고 금지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자기 해석이 '유일하게 올바르다'고 믿는 겁니다. 남이 지은 노랫말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해석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순간부터, 그는 국정체제와 검열체제의 동반자가 됩니다"라고 썼다.
그는 이어 "아이유의 노랫말은 <제제>를 왜곡한 것으로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출판사), '아이유의 노랫말은 교묘하게 아동성애를 부추긴다'(일부 네티즌). 이게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가능한 문화풍토일 겁니다. 나만의 올바른 제제, 나만의 올바른 대한민국"이라 꼬집었다.
정부가 역사 해석권 내세우니, 이제는 출판사도?
가사에 대한 해석에 따라 분노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곡이 수록된 <챗셔>라는 미니앨범 전체가 아이유가 대중의 시선에 소비되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은 '수다'라는 아이디어로 기획된 것이라고 한다. 기획 의도를 감안하면, <제제>는 오히려 성적으로 학대받는 다섯 살 남자아이를 대중의 시선에 의해 학대받는 자신과 동일시한 내용으로 해석이 됐다. <스물세살>이나 <레드퀸> 같은 다른 곡들도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떠받쳐졌다가 내동댕이쳐지는 '스물세살 아이유'의 경험이 녹아있다는 해석도 됐다.
그런데 '음원 폐기'에 서명한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은 <제제>의 해석을 "성적으로 학대받은 어린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석하며 분노하고 있다.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서명 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바른 해석권'을 누군가 독점하고, '올바른 해석권'을 관철시켜 음원과 앨범을 폐기시킬 수 있는 사회라면 도대체 이 사회는 어떤 체제일까?
많은 논란과 서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아이유의 앨범과 <제제>의 음원이 폐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제제>의 해석에 대해 출판사까지 가세한 것은 또다른 논란을 부르고 있다.
이미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는 지난 6일 트위터를 통해 "저자도 책을 썼으면 해석에 대해서는 입 닥치는 게 예의입니다. 저자도 아니고 책 팔아먹는 책 장사들이 뭔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지"라고 일갈하기는 했다.
또 진 교수는 "해석을 출판사가 독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에 웬만큼 무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망발"이라며 "문학에 대해 표준적 해석을 들이대는 것은 역사를 국정화하는 박근혜보다도 수준 떨어지는 행위"라고 특유의 독설을 날렸다.
보다 차분한 비판은 소설가 홍형진 씨가 지난 8일 쓴 '자꾸만 선을 넘는 출판사들'이라는 글에서 제시됐다. 홍 씨는 "출판사는 작가의 대리인이 아니다. 한데 마치 자신들이 작가의 대리인인양 구는 출판사들이 꽤 많고 심지어 소속사 행세를 하기도 한다. 몇 달 전 뜨거웠던 신경숙 표절 논란 때 비판에 대처한 주체가 어디였는지를 생각해보라. 바로 출판사 창비였다. 정작 대답해야 할 작가는 침묵 속으로 회피해버리고 출판사가 소위 '흑기사'로 나섰다"고 지적했다.
홍 씨는 "당시 창비 문학출판부가 내놓은 입장에 미시마 유키오보다 신경숙의 묘사가 우위에 있다고 평하는 문장이 있는데, 그건 내가 살면서 본 모든 문장을 통틀어 가장 기만적인 것이다. 어찌 출판사의 이름으로 작가의 묘사를, 그것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와 국내 온갖 문학상을 휩쓴 작가의 묘사를 '감히' 비교한단 말인가. 누구나 저와 같은 평가를 할 권리를 갖는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출판한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출판사의 이름으로 내놓을 내용은 결코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홍 씨는 "만약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원작자가 살아 있다면 이 사건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차라리 낄낄 비웃지 않을까? 어쩌면 자신들의 영역 밖에서 정의로운 듯이 '올바른' 해석을 강요하며 판매부수를 야금야금 늘리는 모습이야말로 원작자가 비판하고 비웃고 싶었던 바로 그 어른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또한 나라는 한낱 자연인의 해석일 뿐이다. '올바른' 해석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고 다시 아이유를 둘러싼 논란을 국정 교과서 사태와도 연결시켰다.
아닌 게 아니라, 출판사가 저자의 '해석권'까지 독점하고 나선 것에서 박근혜 정부가 '올바른 교과서'라면서 역사 해석권을 독점하는 행태가 연상됐다는 분들이 많은 모양이다. 출판사와 출판사의 해석에 동조하는 세력이 아이유의 음원 폐기를 관철시킬 수 있는 사회라면 역사 국정교과서쯤은 더욱 너끈히 관철되는 사회일 것이다. 아이유 <제제>를 둘러싼 '올바른 해석' 논란이 '연예계 뉴스' 같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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