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것은 제 코가 먼저 알아요.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비염증상이 있네요."
"몇 년 전에 병원에서 알레르기 테스트를 했을 때는 꽃가루랑 집먼지진드기만 문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곰팡이랑 개, 그리고 고양이가 추가되었네요. 산에 들어가서 살 수도 없고(하지만 소월의 시처럼 산에도 꽃은 피지요) 어떡하죠?"
"면을 좋아해서 즐겨 먹었어요. 그런데 올해 들면서부터 갑자기 면만 먹으면 속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속은 괜찮고 글루텐 때문일 수도 있다고 글루텐이 제거된 밀가루를 먹으라고 하는데, 잘한다는 식당 중에 그런 밀가루를 쓰는 곳은 없고, 사는 재미가 하나 없어졌어요."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가벼운 경우는 심할 때만 항히스타민제 같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넘기지만, 증상이 심하거나 반복되기도 하고, 개중에는 만성화되어 몸이 좀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어김없이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다고 하지요. 이렇게 되면 알레르기로 인한 증상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생활의 질이 떨어지고, 이 틈을 타서 또 다른 질병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알레르기 반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겁니다(득은 없고 실만 있다면 아마도 진화의 과정에서 특정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었겠지요). 그 현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겠지만, 저는 면역계의 과잉 혹은 과민반응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증상이 있는 분을 살펴보면 보통은 몸이 좀 지친 경우가 대부분인데, 증상이 심하거나 반복되는 분에게는 쇠약함과 과민함이 함께 나타납니다. 비유하면 잔뜩 지치고 예민해져 있어서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화가 나 짜증을 낼 것 같은 상태와 같습니다.
이런 분의 면역계 또한 비슷한 상황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가거나 가볍게 반응하고 말 상황에 대해서 '버럭!' 하고 폭발적인 반응(실제 비만 세포가 히스타민이나 세로토닌과 같은 화학물질을 방출하는 현상은 가히 폭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화학물질이 우리 몸을 자극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는 것이고요)을 일으킵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봐!" 하고 바짝 독이 선 면역계는 가벼운 자극에도 온 힘을 다해 반응하지요.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렇게 과민해진 면역계의 실상은 강력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약해졌거나 혼란에 빠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환자들에게 "면역세포들이 오버하고 있다"고 말하곤 하지요.
한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치료의 원칙은 '부정거사(扶正袪邪)'입니다. 우리 몸이 스스로 병을 이겨낼 힘을 기르고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없앤다는 뜻이지요. 이 원리는 과도한 알레르기 반응을 다스릴 때도 적용됩니다. 지치고 예민해진 몸과 마음의 상태는 달래면서 회복시켜 주고, 과도한 반응은 진정시키는 것이지요. 그 증상이 중하면 드러난 증상을 진정시키는 것을 위주로 하고,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 약해진 부분을 강화하고 과민해진 부분은 편하게 해주는 식으로 치료합니다.
그렇게 해서 심신의 상태가 균형을 잡고 여유가 생기면 작은 자극 정도는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수용할 수 있게 되지요. 아마도 겉으로 드러난 상태가 이렇게 되면 면역계 또한 그 포용력이 향상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살얼음이 얼었을 때는 살짝만 밟아도 깨지지만, 얼음이 단단해지면 꽝꽝 굴러도 괜찮은 것처럼 말이지요.
이러한 현상과 관련해서 최근에 발표된 연구 결과 중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좀 길지만 소개합니다.
"요즘 들어 글루텐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글루텐 반대론자들은 '현대의 밀 품종은 과거의 품종보다 글루텐 함유량이 많아 독성이 더욱 강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최근 미 농무부의 도널드 카사다 박사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1세기 동안 수확된 밀의 단백질 성분을 비교 검토해 본 결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오늘날의 밀 소비량이 옛날보다 많을까? 그런 것도 아니다. 글루텐 반대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인체가 기본적으로 글루텐을 무해한 단백질로 취급하도록(즉, 글루텐에 반응하지 않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10년간 셀리악병이 증가세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첫째, 셀리악병뿐만 아니라 다른 자가면역질환도 역시 증가했다. 현대인은 꽃가루(알레르기성 비염), 장내 미생물(염증성 장 질환), 자신의 조직(다발성 경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둘째, 서구식 식단에 포함된 당과 기름기도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항생제와 각종 위생 조치로 인해 장내 미생물이 변화한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근본적인 문제점은 '현대인의 면역계가 교란된 것 같다'는 것이다.
문제는 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몸속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애꿎은 글루텐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의 면역계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글로벌 동향 브리핑>)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것 하나하나를 피할 수도 없고, 드러날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막다 보면 점점 더 심해지거나 만성화될 수도 있습니다. 또 전 인류적 각성이 없는 한 우리가 살아갈 환경도 조금씩 더 나빠지겠지요. 상황이 복잡하고 암울할수록 특별한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가장 기본이 되는데 눈을 돌려야 합니다. 과도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고생한다면 건강한 면역계의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겠지요. 내 생활의 어떤 것들이 쌓여서 이렇게 내 속이 엉망이 되었는가를 살피고 이를 고쳐가면서 드러난 증상에 적절히 대처하다 보면 우리 몸은 자신을 복구해 나갈 것입니다. 물꼬를 트고 물길을 막고 있는 것들을 청소해주면 물이 제 길로 흐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올가을 과민한 알레르기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면 지치고 까칠해진 몸과 마음을 살살 달래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몸속 면역세포들도 조금은 말랑말랑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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