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 정치 쪽이 막혀 있으니, 그런 쪽으로 열정이 뻗는 거겠지."
한 삼성전자 간부에게 '샤오미의 성공 비결'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가 이야기한 "그런 쪽"이란, 1400만 명에 달하는 '미펀'(米粉)들의 활동이다. '미펀'은 샤오미의 팬을 가리키는 말인데, 확실히 유별나다. 예컨대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http://bbs.xiaomi.cn/)에는 '통청후이(同城會)'라는 게시판이 있다. 지역별 오프라인 모임이다. 1년에 300회, 사실상 매일 모임이 있다. 모임 참가자는 계속 불어난다. 지인들을 데리고 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함께 소풍을 가거나 봉사 활동을 한다. 이들을 위한 잡지도 있다. <빠오미화>라는 매체다.
애플 마니아와 미펀의 차이
특정 제품을 열렬히 좋아하는 이들은 어디든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있고, 가끔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별 조직을 꾸리고, 함께 봉사 활동까지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유별난 면모는 더 있다. '미펀'은 그저 소비자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의 기획 및 개발에 직접 참여한다. 샤오미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미유아이(MIUI)'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업데이트가 된다. '미펀'들의 지적을 일주일 단위로 반영하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에는 '미펀'들이 넘긴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주에 가장 사랑받았던 기능과 엉망이었던 기능을 각각 평가한다. 좋은 제안을 한 '미펀'에게는 상을 준다. '빠오미화상'이라는 상인데, 우리말로는 '팝콘 상'이다. 팝콘처럼 톡톡 튀는 아이디어라는 뜻.
- 샤오미 쇼크
이런 전략은 창업 초기부터 적용됐다. '미유아이(MIUI)'를 처음 개발할 당시인 지난 2010년, 고객 100명이 '알파 테스트'를 했다. '알파 테스트'는 원래 개발자들끼리 비공개로 진행한다.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기 때문. 그 단계를 거친 뒤 '베타 테스트' 단계에서 외부에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샤오미는 미완성 제품을 고객에게 공개했다. 당시 '알파 테스트'에 참여했던 고객들은 열혈 '미펀'이 됐다. 제품 개발에 참여한 경험 때문이다. 샤오미 역시 2010년 알파 테스트에 참가한 100명의 '미펀'들을 깍듯이 예우한다.
애플 마니아와 '미펀'이 갈라지는 게 이 대목이다. 아이폰 등을 만들어낸 애플 역시 광범위한 마니아가 있다. 이들은 애플 제품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기능에 열광한다. 그리고 애플 제품의 가치를 알아본 자신의 안목에 자부심을 갖는다. 애플 마니아는 딱 여기까지다.
'미펀'은 다르다.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매주 업데이트 되는 운영체제를 나름대로 평가하고 의견을 낸다. 이들이 모이는 온라인 게시판에는 A4용지 수십 매에 달하는 의견도 올라온다. 당연히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이런 열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구를 끌어들인다. 종교, 또는 정치 집단의 확장 방식을 떠올리게 된다.
"고객 서비스도 제품이다"
"정치 쪽이 막혀 있으니, 그런 쪽(기업 팬 클럽)으로 열정이 뻗는다"라는 평가는 그래서 일리가 있다. 중국에서 정치 논쟁은 아직 무리다. 정치적인 뜻을 같이하는 이들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도 없다.
대중의 정치 참여 통로가 막혀 있으니, 기업 팬 클럽이 정치 조직을 닮아간다. '미펀'들의 활동은 확실히 중국 공산당의 초기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2010년 알파테스트에 참가한 100명이 천 만이 넘는 '미펀'으로 불어난 것처럼, 중국 공산당 역시 소수의 열성 당원으로 시작했다. 공산당이 핵심 당원을 챙기듯, 샤오미도 소수의 열성 '미펀'들을 잘 관리한다.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샤오미도 명예를 통한 인센티브를 적극 활용한다. 매주 수상자를 발표하는 '빠오미화상'이 대표적이다.
샤오미의 슬로건 가운데 하나가 "미펀이 있기에 샤오미가 있다"이다. 실제로 샤오미는 직원 8000여 명 가운데 3000여 명을 고객센터에 배치했다. 본사 건물 1, 2층에 고객센터를 뒀다. 상당수 기업들이 고객센터 업무를 외주 업체에 맡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창업자 레이쥔은 "고객 서비스 역시 샤오미의 제품"이라고 말한다. 샤오미 개발자들의 핵심 업무 역시 '미펀'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미펀의 요구에 맞춰서 서비스를 개선한다. 개발자는 '미펀'을 위해 복무한다. 역시 공산당을 떠올리게 한다. "인민이 있기에 당이 있다." "당은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
공산당은 초기 당원들을 '혁명 원로'로 우대한다. 창업자 레이쥔도 비슷한 생각이다. 오래된 고객이 신규 고객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의 말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기존 고객들에겐 유료, 신규 고객에게는 무료 정책을 실시합니다. 왜 기존 고객들에게는 무료, 신규 고객들에게는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을 쓰지 않는 걸까요? 이렇게 하면 제품의 확장 속도는 둔화될지 몰라도, 기존 고객들을 잘 관리함으로써 브랜드의 생명력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을 텐데요."(<샤오미insight> 146p, 허옌 지음, 정호운·정세경 옮김, 예문 펴냄)
"젊은이들은 성취감을 소비한다…충성도가 먼저, 지명도는 그 다음"
공교롭게도, '샤오미'라는 회사 이름 역시 중국 공산당과 관계가 있다. '샤오미(小米)'는 '작은 쌀', 즉 '좁쌀'이란 뜻이다. 중국 공산당의 홍군이 혁명 과정에서 먹었던 좁쌀밥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이 창업 당시 동료들과 먹었던 좁쌀죽에서 따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어찌 됐건 레이쥔이 중국 공산당을 염두에 두고 회사 이름을 지었다는 건 분명하다. 레이쥔이 원래 생각했던 회사 이름은 '훙싱(紅星)'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 '붉은 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훙싱'이라는 이름을 쓰는 회사가 이미 있었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한 이름이 '샤오미'였다.
샤오미의 성공 비결 한 가지를 방금 살펴봤다. 초기 공산당원처럼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미펀'들의 존재다. 샤오미 공동창업자이며 마케팅 책임자인 리완창은 '참여감'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는데,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의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기능이나 브랜드를 소비하는 게 아니다. 참여를 통한 성취감을 소비한다. (샤오미는) 그 흐름에 올라탔다."
'미펀'들이 '참여감'을 쏟아내는 통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입소문에 의지하는 샤오미의 마케팅은 초기부터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혁명 원로' 격인 초기 고객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전략은 SNS에서 더 잘 먹혔다. 영향력 있는 SNS 이용자는 어지간한 미디어보다 힘이 세다. 리완창은 "충성도가 먼저, 지명도는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소수의 열성 고객을 잘 챙기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 이게 잘 되면, 홍보는 저절로 된다.
"최고가 될 필요 없다. 기대보다 잘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설명이 더 필요하다. 대중의 '참여감'을 쏟을 대상은 다른 기업, 다른 분야가 될 수도 있었다. 열정적인 소수가 힘을 발휘하는 SNS 시대의 특징에 주목한 기업은, 샤오미 말고도 많았다. 왜 하필 샤오미가 성공한 걸까. 그들은 어떻게 '참여감'을 독점할 수 있었나. 창업자 레이쥔의 '계산'도 함께 고려해야 설명이 완성된다.
샤오미 제품 중에는 아직 독창적인 게 없다. 애플 등 선진 기업 제품을 거의 베끼다시피 했다. 품질도 떨어진다. 싼 가격치고는 좋다고 할 뿐이다. 창업자의 '스토리' 역시 재미가 없다. 스티브 잡스의 삶처럼 파란만장하지 않다. 구글 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처럼 '천재' 이미지를 풍기는 것도 아니다. 레이쥔은 그냥 모범생, 우등생 정도의 이미지였다.
팬클럽은커녕 입소문이 날만한 조건도 없다. 레이쥔도 그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입소문'에 의지해 판매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대체 무얼 믿고? 그는 평판 관리의 요령에 정통했다. 평판은 실력의 절대치와 관계가 없다. 중요한 건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이다. 가장 우수한 제품이 그만큼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는 건, 기대치가 그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설령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이라도, 기대치가 그보다 낮다면 평판은 오히려 좋아진다. 무조건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고 좋은 소문이 나는 게 아니다. 소비자의 기대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한다. 그러자면, 소비자의 기대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아울러 쓸데없이 기대치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과장 광고는 그래서 바보짓이다. 창업자의 경력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짓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기대치가 기업의 역량 바깥으로 벗어나면, 망한다.
레이쥔이 이런 생각을 굳힌 건 지난 2009년이었다. 샤오미 창업 한 해 전이다. 당시 미국 아마존이 '자포스'라는 신발 판매 사이트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자포스'는 대체 어떤 강점이 있기에 그토록 높은 값에 팔린 걸까. 레이쥔은 골똘히 궁리했다. 결론은, 고객이 끊임없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고객이 '자포스'에서 신발을 고르고 살 때, 마음에 품은 기대 수준이 있다. 모든 서비스가 그걸 살짝 넘어서게끔 설계돼 있다는 게다. 예정된 일자보다 늘 조금 일찍 배송한다. 반품해도 될까 싶었는데, 배송비도 안 받고 반품 처리 해준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고객은 탄성을 지르고, 결국 입소문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대로 샤오미의 정책이 됐다. 애플이나 삼성 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샤오미 고객의 기대치는 애플, 삼성보다 낮다. 기대치가 높은 고객은 애플이나 삼성 제품을 쓰면 된다. 샤오미의 목표는 고객의 기대치를 늘 조금 더 채워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품질이 낮은 제품으로도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샤오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성공했다. 기대치에 거품이 끼는 걸 막기 위해 창업 이후 1년 동안은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울러 창업자 레이쥔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전혀 이름이 나지 않았던 제품을 써본 소비자들은 기대를 뛰어넘는 품질에 깜짝 놀랐다. 초기 샤오미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금방 뜨거워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무명의 저가 제품인데도 의외로 괜찮다"라는 탄성 속에서 묻혀 버렸다.
'기술 성장은 계단, 기대치는 직선'…"그땐 어쩌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샤오미는 '낮은 기대치'를 지렛대 삼아 성공했다. 기대치를 늘 조금씩 뛰어넘으면서 평판을 쌓았다. 기술력 성장이 기대치 상승보다 늘 앞서갔다. 이런 상황이 영원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기술 대부분은 이미 첨단기술이 아니다. 그러니까 후발주자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는 순간, 한 차원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건 발 빠르게 습득할 수 없다. 기술 습득은 직선을 따르지 않는다. 군데군데 계단이 있다. 산수에서 수학으로 넘어갈 때 계단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샤오미의 성장에 열광했던 '미펀'들이 이런 사정까지 고려할 리는 없다. 그들의 기대치는 직선을 따라 올라간다.
기술이 계단에 부딪혔는데, 기대치는 계속 올라가는 순간이 곧 온다. 기대치가 실력을 추월하는 것이다. 샤오미의 성공 방정식은 그 순간부터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샤오미 쇼크' 세 번째 글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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