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대 명분은, 공정한 경쟁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를 실현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은 경쟁 때문에 심각한 불평등이 생겨도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궤변까지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자본주의적 성장이 초래하는 불평등의 위험성을 경고한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국내 한 경제신문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고 불평등을 옹호한 학자로 둔갑해 소개되기도 했다. 디턴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을 멋대로 왜곡해 번역해 출간한 한국경제신문사 출판부는 공식 사과하고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엉터리 서문도 삭제해 재출판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디턴 왜곡 사태'와 국정 교과서)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이 초래되는 부작용은 차지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시간이 갈수록 인수 합병으로 독과점 시장이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31일자 사설에서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진단해 주목된다. 사모펀드에 의한 인수합병이 '자본주의의 꽃'처럼 홍보되는 요즘 한국의 시장경제와도 무관치 않은 내용이다. 다음은 이 사설의 주요 내용(원문보기)이다.
합병은 합병을 부르고, 독과점들은 초과 수익 누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항공, 통신, 의료, 맥주 등 많은 산업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커져왔다. 이런 변화는 소비자들의 권익을 침해하고,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두 명의 이코노미스트(제이슨 퍼먼과 피터 오재그)가 쓴 이 논문에 따르면, 일부 산업에서 대기업들의 수익은 합병을 통해 1990년대 초반에 비해 3배에서 최대 10배까지 늘었다. 대기업이 이처럼 적정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이윤을 가져가면서 경영진과 주주들의 소득도 늘어나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두 명의 금융학 교수(시어 프랜시스와 라이언 너슨,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산업 중 독과점 시장 비율은 1996년 4분의 1에서 2013년 3분의 1로 증가했다.
이런 변화는 정부가 합병을 너무 많이 승인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 정권과 보수 성향의 판사들이 합병 승인을 많이 해주었다. 그들은 합병이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자유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조지 W.부시 정부는 일부 가전제품 시장의 4분의 3분을 차지하게 되는 양대 기업 월풀과 메이텍의 합병안을 승인했다. 또한 부시 정부는 미국의 휴대폰 가입자 70%를 차지하게 되는 버라이존과 AT&T의 합병도 승인했다.
자유시장 이념을 교조적으로 따르지는 않는다는 버락 오바마정부에서도 거대 합병안들이 통과됐다. 유나이티드와 컨티넨털 항공, 아메리칸과 US항공 합병을 잇따라 승인해주면서 미국의 항공시장은 6개에서 4개의 국적 항공사가 국내 여객 수송의 대부분을 맡게 되었다.
이런 독과점 시장에서는 가격 인상으로 고객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가격 결정이나 생산량 조절을 위해 다른 업체들과 담합할 가능성도 크다. 당장 미국 법무부는 미국의 대형 항공사들이 항공기 증편을 억제하고 운임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담합했다는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합병은 추가 합병을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건강보험산업에서는 이미 합병으로 덩치가 커진 대형 보험사 앤섬과 애트나가, 역시 합병으로 힘이 세진 병원과 의사들을 상대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추가 합병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 주 미국의 최대 약국체인 월그린은 업계 3위인 라이트에이드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월그린이 합병으로 제약회사 등과의 협상력이 커질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을 줄이고, 가격 인상이 따를 가능성이 있다.
독과점, 여론 다양성 위축 등 광범위한 공익 침해 경고
어떤 산업에서 몇 개의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면, 새로운 기업이 들어서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미국 센서스뷰로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창업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1977년 17.1%에서 2013년 현재 10.2%로 줄어든 것이다.
미국 의회는 반독점법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과도하게 집중된 산업에서 이뤄지는 합병이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공공이익을 침해할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미디어의 여론 다양성이 합병으로 제약되는 문제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미디어와 통신업체들의 합병안을 평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미국 의회는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어서 강화된 반독점법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시장은 건전한 경쟁이 존재할 때 효율적이다. 하지만 많은 산업분야에서 그런 경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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