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우리나라 전체 예산에서 근 30% 가까운 예산이 복지에 들어가니…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평했었는데 정말 그럴까? 2016년 보건복지부 예산을 통해 그 실상을 살펴보자.
내년 복지 분야 지출 중 중 보건복지부 소관은 55조 5653억 원으로 올해 54조 5946억 원(추경 포함)보다 9707억 원(1.8%) 많다. 하지만 기금을 제외한 일반 회계 예산은 지난해보다 1조 230억 원(3.0%) 감소했다. 기초생활 보장 급여, 기초 연금이나 장애인 연금, 영유아 보육료 지원 등 의무 지출 예산의 자연 증가분까지 감안하면 보건복지부 재량 지출에서 상당한 삭감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생계 급여 수급자가 올해와 같다니…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전 재산인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하여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 사건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논란과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2014년 12월 30일 송파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과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 관련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으로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모든 급여를 주지 않고, 필요한 급여만 주는 '맞춤형 개별 급여'로 제도가 변경되었다. 그런데 시행 2년차가 되는 2016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2015년 예산(9조 2649억 원)보다 5525억 원 감액된 8조 7124억 원이다. 기존의 보건복지부 소관이었던 주거 급여와 교육 급여가 각각 국토교통부와 교육부 사업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맞춤형 급여 체계 개편에 따라 생계 급여액은 기존보다 조금 높게 설정되었다. 그런데 수급자는 증가하지 않을 것을 전제했다. 수급자 수를 2015년과 동일한 수준인 135만 명으로 고정한 채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맞춤형 급여가 도입되며 부양 의무자 기준도 완화되었다. 이로 인해 당연히 신규 수급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년과 동일한 수준의 생계 급여 수급자를 가정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수급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의지도 없고, 부양 의무제 완화에 따른 수급자 확대 현실도 무시하겠다는 메시지다.
전업모 차별하는 맞춤형 보육
2016년 보육 예산은 5조 798억원이다. 2015년 5조 1863억 원에서 1065억 원, 2.1% 감소했다. 여기서도 '맞춤형'이 등장한다. 내년부터 취업모와 전업모를 차별하는 '맞춤형 보육' 제도를 도입하는데, 그 결과 영유아 보육료 지원 예산이 1759억 원 감소한다.
'맞춤형 보육'의 내용은 이렇다. 취업모 등 어린이집을 종일(12시간) 이용해야 하는 아동의 경우 부모의 4대 보험 가입 확인증 등 서류를 통해 자신이 종일반 대상임을 증명한 경우에만 종일 보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러한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전업주부 등에게는 반일(7시간) 보육만 지원하겠다는 제도이다.
종일반은 현재와 같은 금액의 보육료가 지원되지만, 반일반은 종일반의 80% 수준의 보육료만 지원한다. 대신 긴급 보육 바우처를 이용하여 한 달에 15시간까지 해당 어린이집에서 추가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무상 보육은 보편적 복지의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이제 정부는 '맞춤형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전업모와 취업모를 나누고 갈등하게 만든다. 이뿐만 아니라 맞춤형 보육이 시행될 경우, 보험료 지원 전체 예산이 줄어 가뜩이나 낮은 보육교사의 처우가 더욱 낮아질 것이 우려된다.
한편 올해 1월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으로 전 국민이 공분한 후, 영유아보육법 개정으로 어린이집에 보조 교사 및 대체 교사가 의무화되었다. 이에 내년에 보조 교사(1만2344명) 예산 약 557억 원이 신규 편성되었으며, 대체 교사 지원 예산 43억 원의 2배 수준인 102억 원이 편성되었다. 하지만 전체 어린이집에 보조교사 및 대체 교사를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보조 교사 예산 1133억 원과 대체 교사 예산 265억 원의 추가 증액이 필요하다.
국공립 어린이집 예산도 문제이다.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선 국공립 어린이집이 크게 늘어나야 하는데, 확충 규모가 올해 150개소에서 10% 감소한 135개소로 축소되었다. 부모 모니터링단 운영 지원 예산도 전년 대비 10%, 공익 제보자 신고 포상금도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보육의 공공성 강화는 요원한 일이 돼가고 있다.
노인 복지, 장애인 복지 사업 다변화 필요
2016년 노인 복지 예산은 9조 1826억 원으로 올해 대비 3370억 원, 3.8% 증가하였다. 노인 복지 예산 중 기초 연금 예산이 7조 8691억 원으로 노인 복지 예산의 85.7%를 차지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예산이 6342억 원으로 6.9%, 노인 일자리 및 사회 활동 지원 예산이 3907억 원으로 4.3%, 노인 돌봄 서비스 예산이 1534억 원 1.7%이다.
노인 복지 예산을 영역별로 보면 기초 연금을 제외한 사업은 1조 3134억 원에 불과하다. 2016년 노인 1인당 예산은 134만 원으로 올해 132만 원보다 1.4% 증가하였으나,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다른 노인 복지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특히 노인들이 경로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 정부가 그동안 경로당 냉·난방비를 지원해왔는데, 내년도 예산안에는 경로당 냉·난방비가 편성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경로당 냉·난방비 지원이 절실하다.
장애인 복지 예산은 더욱 심각하다. 2016년 장애인 복지 예산은 1조 901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6억 원, 고작 1.0% 증가한다. 보건복지부 소관 총지출 예산 1.8% 보다 낮은 증가율이다.
장애인 복지 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장애인 연금과 장애 수당(7020억 원, 36.9%) 장애인 사회 활동 지원(5,748억 원, 30.2%), 장애인 거주 시설 운영 지원(4370억 원, 23.0%)이다. 이들 세 사업의 예산이 장애인 복지 예산의 90.1%를 차지한다.
과거에는 장애 복지 예산 중 장애인 연금 등 장애인 소득 보장 예산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다가 바우처와 시설 서비스 등 세 가지 영역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럼에도 세 가지 사업 외에 장애인 복지 사업은 훨씬 다변화되어야 한다.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자립생활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발달 장애인 지원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달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발달 장애인 관련 예산도 증액해야 한다.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 한국 복지
최근 박근혜 정부는 보건복지부의 복지 사업과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사업이 중복된다며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 보장 사업 정비 추진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사회 보장 사업 중 1조 원 규모의 1496개 사업이 통·폐합될 처지에 내몰려 있다.
우리나라는 지자체 유사·중복 사회복지사업 통·폐합을 통한 '복지 재정 효율화'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지자체의 복지 사업 확대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내년 보건복지부 예산도 재량 지출 영역에서 오히려 줄어드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맞춤형 개별 급여', '맞춤형 보육' 등 '맞춤형'을 빙자하여 선별 복지 추구도 시도된다.
지난 대선에서 그토록 복지를 강조하더니, 이제 집권 4년차 접어드니 효율화, 맞춤형 등의 이름으로 복지 지출 통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이 아우성인 지금, 복지를 줄여나갈 때인가? 2014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 복지 비중이 1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1.6%의 절반에 불과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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