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지난 20일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다음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연임 문제가 지난 10년 넘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논란으로 다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 체계를 둘러싼 쟁점
국민연금 기금은 2014년 11월 기준으로 469조 원에 달한다. 이후 계속 성장해 2043년에 2561조(2010년 불변 가격으로 1084조) 원으로 최고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2.8%를 차지하고, 2035년에는 49.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의 운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있고, 실행 조직으로 국민연금공단 내 기금운용본부가 있다. 국민연금 기금이 거대하게 성장하고, 국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현재의 기금 운용 체계, 즉 비전문가인 가입자 대표 중심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와 국민연금공단 조직 안에 있는 기금운용본부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금 운용 체계 개편에 대한 방향은 크게 수익률 vs. 안정성·공공성, 전문성 vs. 대표성, 독립성 vs. 책임성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금 운용은 제도와 별도로 자산 운용의 문제이기에 수익률을 최대한 제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하며, 이해 당사자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전문가 중심으로 상설화하고,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고 있다. 여당과 정부(특히 경제부처), 금융 자본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제도와 기금은 분리될 수 없으며, 기금 운용의 안정성과 실질적인 가입자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단체가 기금 운용에 적극적인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이 주장은 기금의 공공적 투자 강화로 이어지는데, 야당과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낮다?
현재 정부·여당이 기금 운용 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주요 명분으로 최근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이 낮다는 점을 든다. 세계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 2009년 이후 계속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금은 장기적 투자라는 기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단순히 특정 기간만을 가지고 그 성과를 평가할 수 없다. 오히려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기간을 본다면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특정 기간 수익률만을 비교하는 것은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기금은 수익이 낮은 게 아니라 다른 연기금에 비해 변동성이 적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사실이다.
기금 운용 수익률로 재정 안정을 도모한다?
정부가 수익률을 연평균 1%포인트 높이는 것은 보험료율 2.5%포인트 인상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여 달성하는 것은 확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 향후 40년에 걸쳐 1% 초과 수익을 달성할 가능성은 5.7%에 불과하다(김우창, <투자의 관점에서 살펴본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2015.7.9.)
오히려 고위험 추구로 인해 기금 운용의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훨씬 높다. 1%포인트 초과 수익 추구 시 변동성은 약 3배(4.19%→12.69%), 손실 확률은 약 200배(0.05%→10.42%) 이상으로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고찰>, 2008).
실제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전문성과 위험 자산 비중이 높았던 세계 주요 연기금의 손실은 –20% 안팎에 달했다. 올해 국민연금 기금이 500조를 돌파했는데, 만일 국민연금 기금이 외국 연기금처럼 운용했다면 100조 원이 한 번에 날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제도에 대한 불신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전문가로 구성해야 수익률이 높아진다?
정부·여당은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여하는 가입자 대표의 전문성이 결여돼 수익률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들을 대체해 금융 전문가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 전문가로 구성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현재보다 더 높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운용위원 모두 금융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투자공사(KIC)의 사례를 보면 투자가 개시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누적 수익률이 4.02%로, 국민연금 6.33%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투자공사의 수익률은 –13.71%에 달했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전문성이 높다는 세계 주요 연기금도 금융 위기 당시 –20% 안팎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 금융 위기나, 세계 경제 불황에는 전문가라도 속수무책이며, 더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노후불안과 제도 불신으로 바로 직결된다.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국민연금 기금은 가입자의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이며, 따라서 기금 운용에서 가입자의 대표성과 책임성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금운용공사 설립하면 독립성 보장?
한편 정부·여당이 기금 운용 체계 개편의 주요한 명분으로 삼는 것 중의 하나가 기금 운용의 독립성이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위원회를 정부에서 독립시키고, 전문가로 구성하며,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해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독립성이라는 명분 이면에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서 가입자 대표 참여를 배제하여 국민연금 기금을 금융 자본에 종속시키고, 경제 부처가 국민연금 기금에 우회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는 법적·형식적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는 한국투자공사가 현실적으로는 금융 이해 관계자 집단과 경제 부처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면, 금융 전문가가 지배하는 기금운용공사가 역시 어떻게 운영될지 가늠할 수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서 고위험 자산 투자의 비중을 제어하고, 정부의 정치적 개입을 차단한 것은 가입자 대표의 역할이었다. 현행 가입자 대표와 복지부 주관의 기금 운용 체계는 일부 개선의 필요성은 있어도, 적어도 기금 운용에서 경제 부처와 금융 자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연금 제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정부·여당은 막연히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을 높여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기금 운용 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기금 운용 체계 개편에 앞서 먼저 사회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위험 한도와 적정한 목표 수익률이 나와야 한다. 수익률이야 무조건 높으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고위험이 동반되고, 애초 보험료 대비 급여가 높게 설계되어 있는 부분 적립 방식에서는 기금 수익률로 재정 안정을 도모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먼저 국민연금 재정 운영 방식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기금 소진에 따라 국민연금제도를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지, 국가 재정을 추가로 투입할지, 반복적인 제도 조정(보험료와 급여)을 통해 기금 소진을 연장할지, 또 특정 시점에 어느 정도 기금 적립금을 유지할지, 이런 제도 발전 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를 바탕으로 다시 제도가 감당해야 할 부분(보험료율과 급여율), 정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출산율, 경제활동 참가율, 소득 상승률 등), 기금 운용이 담당해야 할 부분(수익률)에 대한 책임을 적절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적정한 기금 운용 목표수익률이 나올 수 있고 그에 맞는 기금 운용 체계를 논의할 수 있다.
안정성이 기금 운용의 주요 원칙이어야
정부·여당의 기금 운용 체계 개편 논리는 수익률을 앞세우고, 이를 위해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하고, 기금운용공사 설립을 통해 적극적인 투자 집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앞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주식 및 대체 투자 등 위험 자산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래 표를 보면, 현재 국민연금의 주식 등 위험 자산 비중은 2013년 기준으로 약 40%이고, 이에 비해 세계 주요 연기금에서 위험 자산 비중은 60~80%에 이른다.
그러나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납부한 보험료로 조성된 국민연금 기금의 경우에 위험 자산 비중을 세계 주요 연기금 수준으로 확대해 가는 것이 맞는지는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 연기금의 경우 소득 비례의 직역 연금을 가지고 있으며, 자산 시장의 발달과 그에 맞는 위험 자산 투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반면 국민연금 기금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미국 연기금(OASDI)은 국채에 전액을 투자하고 있고, 일본 연기금(GPIF)은 안정 자산이 채권에 약 66%를 투자하고 있다. 특히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크고, 국내 자산 시장이 취약한 국민연금의 경우 안정적인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
가입자 대표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현행 기금 운용 체계에서 가입자 위원의 실질적 대표성 및 의사 개입 결정력 부족에 대한 문제점은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다. 현재 기금 운용위원 20인 중 5명이 기재부 등 정부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입자 단체 대표가 12인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지역가입자 대표로 농협, 수협 등 금융기관이 참여해 대표성이 부족하다. 또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는 기본적으로 분기별 회의체(연 4회 이상)로 되어 있고, 1회당 소요 시간은 평균 2~3시간에 지나지 않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내실 있는 기금운용 심의가 어렵고 기금운용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파악이나 감독도 불가능하다.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정당성이 없는 정부위원의 축소, 대표성을 결여한 일부 가입자 대표의 조정, 가입자 대표의 의사결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실무적이고 제도적인 지원 등을 통해 가입자 대표의 책임성 역시 높여야 한다.
한편 가입자 단체 대표의 기금 운용에 대한 개입력이 발전되는 과정에 맞추어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행 비상설 시스템에서는 기금운용 정책에 대한 주도권 행사나 기금운용본부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도 운영과 기금 운용은 통합 관리해야
국민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기금을 모으고(가입·징수), 운용하고(기금 운용), 지급하는(연금 급여) 유기적인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기금은 가입자에게 연금 급여 지급을 위해 조성되는 것이며 기금 운용은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국민연금 기금은 국민연금제도의 일부분이다. 국민연금 기금을 단순히 여유 자산으로 이해하고 수익률 제고를 위해 기금 운용을 제도에서 분리하겠다는 발상은 국민연금 기금의 특성 및 제도와의 연관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도로부터 기금을 분리하는 것은 결국 고수익 추구에 따른 고위험을 야기하고, 기금 운용을 통해 급여를 받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기금 고갈론'을 확산시켜 세대 간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본질 훼손 및 불신을 강화할 것이다.
기금 운용 체계 개편에 대한 사회적 논의 시작하자
국민연금 기금 운용은 국민의 노후와 국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금 운용 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기금 운용 체계 개편은 수익률을 전면에 내세워 기금 운용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전문성이라는 이유로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배제하며, 독립성이라는 명분으로 제도로부터 기금 운용을 분리(공사 설립)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이 과연 국민 노후와 국민경제에 바람직한 것일까?
국민연금 기금의 주인은 바로 가입자인, 국민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기금 운용체계 개편 방향이 무엇인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