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10월 축전은 다행스럽게 평화로이 끝났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기술적인 데서부터 정치적인 요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른다면 동결된 로켓의 발사 여부는 북한이 제안한 대미 평화협정론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 달려있다. 북한이 원하는 평화체제의 수위는 한미합동군사연습의 중단과 전략 핵무기 반입 금지에서부터 북미 평화협정 수립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과연 북한이 핵과 로켓 발사를 동결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축소하는 합의를 맺을 수 있을까? 이는 사실 2.29 합의를 파탄시킨 두 가지 악재 즉, 2012년 당시 미국의 한미합동군사연습 강행과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 이를 상호 동결시키자는 제안이다. 과연 북한과 미국은 2.29를 이런 식으로 보완하는 동결식 평화 체제에 합의할 수 있을까?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는 평가할 만하다. 현 정부가 유효 기간이 끝나가는 대북 이니셔티브를 발동하여 북한과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남북 또한 한 단계 진전된 협의 체제로 나아갈 수 있을지 마지막 기대를 해 보는 이유이다. (필자)
북한 당국은 올해 내내 "주체조선의 위성은 앞으로도 당중앙이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련이어 우주를 향하여 날아오를 것이다"(5월 8일 <조선신보>, "우주개발은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중대사")라며 로켓 발사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다. 그러나 막상 10월의 당 창건 행사가 다가오자 '눈 내리는 때'(10월 6일 대외용 주간지 <통일신보>, "눈 내리는 겨울철 등 악조건 속에서도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를 언급하며 발사 연기 가능성에 대해 여운을 남기더니 결국 10월 축전은 예상과 달리 ‘평화로운’행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10월은 원래부터 이런 류의 말 잔치로 기획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무슨 사정 변경이 있었던 것인가? 사정 변경이 있었다면 그것은 북한 로켓이나 인공위성의 기술적 문제나 능력의 한계인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외교나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었다면 그것은 중국발인가, 미국발인가 그것도 아니면 남북 관계를 의식했기 때문인가? 아무리 동아시아 외교가가 제도화 수준이 낮고 비공식 외교에 익숙하다지만, 여전히 북한발 외교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 중앙의 결심?
돌이켜보면 김정은이 10월 10월을 겨냥해 모종의 모험주의적 조치를 준비해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결정의 계기는 대체로 2월을 전후한 시점으로 보인다. 2월 4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날강도 미제가 우리의 사상을 말살하고 우리의 제도를 붕괴시키려고 발악하는 한 미국 것들과 더는 마주 앉을 필요도 상종할 용의도 없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이 내린 결단이다"라며 모든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북한의 2월 선언이 의례적인 강경론이 아니라는 것은 그 전년도에 이루어진 북한의 매력공세를 이해해야만 한다. 북한은 2014년 이산가족상봉에 이어 아시안 게임 외교 그리고 케네스 배 등 미국 민간인 석방 등 일련의 미소 외교를 펼쳐왔다. 급기야 11월 북한은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의 방북을 전후 해, '한미군사연습과 핵실험의 상호 중단' 안을 제안하였다. 동 제안은 북한식 매력공세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미국 측에게 이같은 북한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오바마 정부는 소니 해킹 사건을 계기로 북한 체제에 대해 모욕에 가까운 보복 공세를 전개했다. 심지어 북한이 1월 9일 '한미군사연습과 핵실험의 상호 중단' 제안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4일 유튜브와의 국정 간담회에서 북한 붕괴 불가피론으로 대응해 미국의 대북 강경론 기조를 재확인해주었다. 2015년 2월 4일 국방위원회 성명이 나오게 된 것은 이러한 미 측의 강경론에 대한 북한식 강경론이었다.
이어서 시작된 김정은의 행보는 강경일변도였다. 4월 18일 느닷없이 백두산을 오른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내핍형 캠페인인 '백두의 칼바람 정신'을 강조하며(백두의 칼바람 정신은 2014년 11월을 전후해 제기되기 시작하여 신년사에서도 언급되었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이 힘들고 생각이 많아질 때면 백두산에 와서 수령님에 대한 추억도 하고 수령님께서 백두밀림에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굳은 각오도 다지군 합니다"(2015년 9월 29일<로동신문>, "위대한 당을 따라 승리와 영광의 천만리")라는 <로동신문>의 기사처럼 북한 주민들에게 지도부의 백두산 등정은 장성택 숙청 시에 그러했듯이 뭔가 결단을 시사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역시 김정은은 백두산 등정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5월 3일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 지도하여, 보다 확장된 로켓 모형을 공개했다. 동 시찰에서 "우주개발사업은 그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포기할 사업이 아니며, 위성은 앞으로도 당 중앙이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연이어 우주를 향하여 날아오를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뒤이어 같은 달 9일 로동신문은 북한의 SLBM 수중 발사 소식을 공개하여 긴장도를 높였다.
북한의 로켓 발사가 트리거 조항에 의해 추가적인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을 가져오게 되어있는 조건에서, 2015년 로켓 발사는 북한이 기존의 반미 전선에 더해 중국까지 적으로 돌아서는 최악의 상황마저 감내하겠다는 조치였다. 특히 2015년 상반기 들어 북중 교역이 정치적 이유로 하강 국면을 그리고 있던 악조건을 무릎 쓰고 김정은이 로켓 발사를 강행하기 위해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마저 북한을 압박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를 돌파해내겠다는 강력한 주민 의지의 동원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느닷없이 백두산을 오르고 백두의 칼바람 정신을 강조하는 등 결사항쟁형 캠페인을 제기한 것은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또 한 번 고난의 행군이란 최후의 카드를 쓸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후 8월 목함 지뢰 사건이 터지자 북한의 발 빠른 준전시상태 선포와 추가적인 대응 양태 역시 주목할 만한 조치였다. 다행스럽게 8.25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북한의 공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9월 14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의 "평화적우주개발은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세계는 앞으로 선군조선의 위성들이 우리 당 중앙이 결심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지를 박차고 창공높이 계속 날아오르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9월 14일 <조선신보>, 조선국가우주개발국 국장 인터뷰 기사)라는 인터뷰와 연이은 9월 15일자,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적대시정책 계속 매여달리면 언제든지 핵뢰성으로 대답할 준비가 있다"는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는 북한의 10월 로켓 발사설을 더욱 부추겼다. 이로서 8.25 합의까지 위기에 처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이산가족상봉도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하는 문제 제기들이 확산되어 나갔다.
북한의 강경론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9월 24일이었다. 조선국가우주개발국장이 CNN과의 기자회견을 자청해 "위성발사는 다가오고 있고 최종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우리가 위성을 특정한 축일이나 기념일에 쏘아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라고 했다. 10월 축전을 맞은 위성 발사설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날이었다. 15일과 24일 사이에 북한의 논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 때 이미 기술적 한계를 체감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10월 행사에 중국 측 방북 가능성이 현실화되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 시기에 북미 접촉의 가능성이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북미간 대화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9월 19일(미국 현지시간) 성김 동아태 부차관보가 9월 19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과 진정으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평양이든 다른 곳이든 장소는 중요치 않다"고 밝혀 방북 의사를 내비친 사실이다. 사실 올 초 2월 4월 국방위원회의 대화 단절 선언은 1월 30일 성김의 평양 초청 무산 직후의 일이었다. 당시 북한은 성김의 방북을 요구했으나 성김은 북경에 머무르면서 방북을 거절하고 오히려 북한 대표단의 방중을 요구하였다.
2월 1일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성김이 이번 아시아방문 기간 우리와 만날 의향을 표시한데 대하여 평양에 오라고 초청까지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그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마치도 우리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대화와 접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이 여론을 오도하면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다.”라고 밝혀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평양이라는 장소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불발되었음을 폭로하였다. 방북을 금기시했던 성김 부차관보가 평양 방북 용의를 밝힌 것은 작지만 미국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였다. 미국 측의 이런 유화적 표현이 24일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었을까?
류윈산 방북?
여러모로 김정은의 체면을 세워 준 것은 류윈산의 방북이었다. 중국은 방북 5일전 10월 10일 행사 참여를 발표하였다. 2010년 저우융캉 방북이 3일 전에 발표되었던 것에 비하면 2일이 빠른 것이었다. 류윈산은 당정군의 고위 인사들을 동행하여 10월 행사에 참석하였고 주석단에서 김정은에게 환한 미소를 만들어주었다.
어쨌든 이번 방북은 2013년 이래 계속되어 왔다고 전해져 온 북중관계 악화론에 대해 다시 한 번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2013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3원칙의 순서를 바꿔 비핵화를 가장 앞에 제시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이 북중관계 악화론의 가장 큰 근거였다. 이런 해석이 맞다면 이번 류윈산이 성명에서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안정 실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정책의 3원칙을 견지…"한다고 하여 비핵화를 두 번째에 두는 2012년 이전의 순서로 돌아간 것은 북중관계가 2012년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형식 논리이긴 하지만 전자를 북중관계 악화론의 근거로 사용했다면, 논리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후자 역시 북중관계 개선론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단동 호시 무역구 개장 등 일부 긍정적 요인들이 북중 경제 관계를 본격적으로 회복시키고 중국의 대북 지원 확대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은 이같은 형식 논리 외에 추가의 관찰과 분석이 필요한 지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중국 최고의 외교정책결정 단위인 외사영도소조의 일원이자 상무위원 서열 5위인 류윈산의 방북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중관계 회복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중요하다는 판단의 결과인지, 그것이 아니면 북한의 로켓 발사 중단을 '조건으로' 한 방북인지 여부에 대한 분석일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강태호, 2015, "북중관계 진단: 류윈산 중국 당 정치국 상무위원 방북을 중심으로", 코리아연구원 2015년 10월 7일 <현안진단>)은 류윈산의 방북이 "북한의 위성발사와 핵실험에 영향을 못 미칠"것이라며 '불구하고'라는 전자의 견해를 주장하고 있기도 하지만, 역시 다수는 ‘조건부 방북’이라는 후자의 해석에 기울어 있는 인상이다.(물론 그 절충안으로 중국이 로켓 발사는 용인하나 핵실험까지 나아가지는 않게 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적 목표라고 보는 견해도 가능할 것이다. 이는 굳이 분류한다면 전자에 가까운 해석이다) 전자의 해석론자들이 대체로 북중러 3각과 한미일 3각이라는 기본 대결의 프레임이 한반도 정세의 근저에 있다고 본다면, 후자의 논자들은 국제 사회에서의 규범 제정자로서의 중국론 혹은 신패권국가로서의 중국론을 주장하거나 이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미중 협조체제나 미중 콘도미니엄 체제에 근거를 둔 논법들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냉랭한 분위기를 전제로 한다면 미중협조체제나 콘도미니엄체제의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신냉전론 역시 그 실질에서는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8.25의 교훈
사실 한국은 동북아의 신냉전체제나 미중콘도미니엄체제 모두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역내에서 자기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방법은 허망한 북한 붕괴론을 내세워 대화를 거부하고 제재에나 기대는 한국식 전략적 인내보다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신냉전이나 미중의 패권적 관할 체제를 거부함으로써 한국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통일 대박론은 허망한 대결론이거나 황당한 종속론으로 귀결될 따름이다.
8.25 합의는 사실상 한국 정부가 통일대박론이라는 말뿐인 국민적 부흥회로 북한 붕괴를 준비하는 소위 한국식 전략적 인내를 포기한 계기로 자리 잡아야 한다. 안보-안보부재 패러독스(stability instability paradox)에서 드러나듯이(이는 특정국가가 핵 억지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하지만, 동시에 그 안정성은 주변 소국들에 대한 재래식 분쟁과 같은 소규모 지역 갈등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비용 증대를 수반한다는 패러독스를 의미한다) 북한이 자신의 핵능력을 과시하면서 재래식 긴장을 강화하여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경우, 한국의 선택지는 북한과의 협상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음이 드러났다. 주한미군의 자동 개입을 통해 대북 핵 우산을 확보하는 확장억지를 위해 전작권 반환 연기와 인계철선의 유지라는 극약 처방을 사용하였지만, 결국 그것이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을 높여주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목함 지뢰 사건 이후의 에스컬레이션 상황에서 보듯이 한국 정부의 선택지는 협상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이 확인되었다. 시간 싸움을 목표로 한 냉전형 대결주의가 열전으로의 에스컬레이션을 막지 못한다면 이는 억지에 실패한다는 의미이므로, 차라리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협상에 의한 평화가 대북 억지를 보강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8.25를 경험한 한국이 10월 북한발 위기를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10월의 긴장은 결국 8.25 이전의 위기로 되돌아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이나 미국 모두에게 대북 정책에서 협상에 의한 평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utmost urgency and determination)'라는 표현이 들어간 대북 공동성명을 작성하여 미국과 한국의 '전략적 인내'를 스스로 폐기하는 등 정책 실패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이상한 선례를 남긴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평가할만하다. 현 상황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사자는 중국도 아니요, 미국도 아니요, 북한도 아니요 결국은 한국이다. 외교적 중급 국가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한국이 미중일 강국의 교차 압박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높이는 방도는 결국 남북관계의 관할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뿐이다.
북미 간 잠정적 평화체제: 군사연습축소와 로켓 동결?
북한의 공세와 그 목표는 분명하다. 10월 7일 축전 3일전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미 공식경로를 통하여 미국 측에 평화협정체결에 진정으로 응해 나올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미국이 평화협정체결과 관련한 우리의 제안을 심중히 연구하고 긍정적으로 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대미 평화협정 공세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미정상회담 직후인 10월 18일 한 급 높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먼저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며 조미사이에 우선 원칙적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이다. 유엔도 평화협정체결을 적극 지지 고무해 나섬으로써 조선반도에서 한 성원국과 '유엔군사령부'가 교전관계에 있는 비정상적인 사태를 끝장내는데 자기 몫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미국이 평화협정체결문제를 외면하거나 그에 조건부를 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세상에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될 것"이라며, 대북 적대시 정책(사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은“대북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으며, 비핵화라는 우리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라는 문구를 통해 북한이 사용해 온 대북 적대시 정책(hostile policy)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을 요구하였다.
동 성명은 "그 기본표현인 대규모 합동군사연습강행과 핵타격 수단들의 남조선에로의 반입 등 군사적 도발행위들이 주기적으로 모든 협상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조선반도정세의 긴장만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있다"며 적대시 정책의 폐기 여부는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중단과 3대 핵타격 수단의 한반도 반입 금지에 관한 미국의 결정에 달린 것임을 강조하였다. 결국 북한이 원하는 대북 적대시정책 폐기라는 것은 최소 수준이 합동군사연습의 중단 혹은 축소이고 그 최대치는 평화협정을 통한 정전체제의 대체로 추정된다.
반면, 성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0일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비핵화 단계를 뛰어 넘는 평화협정 체결에는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전략적 인내는 실패고 최고의 긴급성으로 북핵 문제를 다룬다면서도 평화협정은 안된다면, 북미가 만나서 논의할 수 있는 잠정적 합의안의 수준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을 전망된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말대 말의 수준에서 교환하되, 행동대 행동 수준에서는 '합동군사연습의 축소'와 '로켓과 핵의 동결 및 검증'을 교환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이는 사실 핵동결과 경제 지원을 논의한 2.29 합의의 실패를 교훈삼아 2.29 합의에 합동군사연습의 축소와 로켓 동결의 교환을 추가로 합의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즉 2.29 합의를 실패로 이끈 군사연습실행과 로켓 발사 강행이라는 두 악재를 서로 동결시키는 동결식 평화 체제인 셈이다. 북한이 내비친 평화협정과 적대시 정책 중단의 최소 요구 수준을 미국이 수용한다면 그리고 미국과 한국이 요구한 로켓 발사와 핵실험의 동결과 검증, 그것을 북한이 수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이런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정전체제를 대체할 잠정적 평화체제 논의와 비핵화 논의는 장기간이겠지만 자체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담론의 유효 기간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악재가 있다. 전직 대통령에서 시작해 현직 기관장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안팎에서 통일 대박론에 대한 보수 본당 내부의 반대론은 사라질 줄 모른다. 그러나 정책결정론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물론 이런 류의 관료정치의 저항은 민주 체제의 본류로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 지도자가 정말 이런 류의 예측 가능한 관료 정치나 보수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이행할 만한 집행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불신의 벽은 매우 높다. 측근 위주, 밀실 위주 정책 결정 나아가 남북 간 비공개 라인에 대한 장기 의존 등 시스템으로 정책을 결정하기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용단에 따르는 정책 결정 과정이 심화되어왔다. 비공개 의사 결정은 상황 관리, 관료 통제 그리고 극적 효과에는 즉효약일 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급격한 피로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제 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의 유효기간이 다되어간다는 뜻이다. 한편 이 정부가 내거는 레토릭과 실제 정책 간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점도 불신의 근거이다. 선거 유세용 정책의 현실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디스카운트가 상식 수준을 넘어 도덕적 해이에 이르고 있다. 통일이 왜 대박인지 손에 잡히는 답이 없다.
다행히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북핵 문제나 남북문제에 관한 한 계기를 살릴 여지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에 대한 낮은 기대치가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빛바래게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백악관의 대북 불신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대북 이니셔티브를 가동할 공간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성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간만에 열린 이런 공간을 우리 내부의 관료 정치가 망쳐버리게 방치한다면 이 또한 직무유기일 것이다. 통일 담론의 마지막 유효 기간이 다가 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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