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문제 대책 마련을 위한 정부와 여당 간의 정책 협의에서, 새누리당이 '초·중·고교 및 대학 교육과정을 1년씩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박근혜 정부에 주문했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 중 하나가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보고, 학제 개편을 통해 청년층의 사회 진입 연령 자체를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21일 당 지도부 회의에서 "정부에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보고했다"며 "당 측에서는 10년 간 약 100조 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도 저출산에 대해 효과가 미흡한 점 등을 지적하며 저출산 극복을 위한 발상의 전환과 획기적 대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어 "만혼 추세와 소모적 '스펙' 쌓기로 청년들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입직(入職) 연령이 계속 높아지는 것도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이므로, 입직 연령을 낮출 수 있는 초·중등 학제 개편과 대학 전공 구조조정 등 종합적 방안을 제안했다"며 "정부 측에서는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명수 새누리당 제5정책조정위원장(보건복지 등 분야 담당)도 "당정에서 (새누리당은) 저출산에 대해 획기적 개선안을 가져오라며 학제 개편 방안을 예로 들었다"면서 "당에서 '교육도 쇄신하고 저출산 방안도 되는지 검토해 보라'고 (정부에) 제안·주문한 것"이라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밝혔다. 이 의장은 '교육 쇄신' 부분에 대해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시켜야 할 부담이 너무 많다"는 교육비 문제도 언급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당정협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입직 연령을 낮출 수 있도록 초등학교 6년제를 5년제로 개편하는 것과, 대학 전공 구조조정으로 필요한 경우 3년(만에 졸업할 수 있게 하는) 종합적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새누리당의 정책 제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평을 내놨다. '결혼 연령 낮추기'가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느냐는 둘째치고, 설사 만혼이 문제라 해도 청년 일자리 창출이나 임금 체계 개선, 전셋값 대책 등의 '정도(正道)'가 아닌 '엉뚱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늦은 것은 (취업 때문에) 졸업을 연기하기 때문이지, 학제 때문이 아니다"라며 "엉뚱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출산율 저하는 우리 사회가 비상사태를 선언해야 할 만큼 심대한 문제인데, 기껏 내놓는 대책이 이런 것이라면 크게 비난받을 일"이라며 "태도 자체가 틀렸다. 원인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청년 세대 문제를 다룬 <88만원 세대> 공저자인 칼럼니스트 박권일 씨는 "너무 황당한 얘기라 할 말을 잃을 지경"이라며 "청년층의 사회 진출이 늦는 것은 질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인데, 그러면 일자리를 늘리거나 청년들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거나 해야 노동시장 진출도 빨라지고 결혼도 빨리 할 것 아닌가. 그런 본질적 부분에는 접근하지 않고 대증적 요법만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교육 기간을 줄여 사회로 내보낸다고 고용 불안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라며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빨리 내보내기만 하면, 그 기간만큼 (빨리 진출하게 된) 더 많은 청년들이 취업 준비 인구가 돼 문제를 악화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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