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되게하라, 그것도 빠르게"
이명박 당선인의 'CEO식 국정운영'은 예정됐다. '노 홀리데이'로 대표되는 인수위의 이같은 '속도전'은 많은 부분 현대건설 CEO 시절부터 몸에 밴 이명박 당선인의 업무추진 방식에서 기인했다.
실제 인수위는 이 당선인의 지시로 간사단 회의 시간을 오전 7시30분으로 한 시간 앞당기기까지 했지만 이 당선인은 회의시간에 제공되는 샌드위치 등을 두고 "나는 아침을 먹고 왔는데 또 아침을 주네"라는 반응을 보여 인수위 관계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음 달 초", "분기 말"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진다. 시간을 분초 단위까지 나눠 써야 한다는 이 당선인의 지론 때문이다. 이 역시 공기를 하루라도 줄이면 이익이 늘어나는 건설회사 사장 경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성과에 집착하는 '결과 지상주의' 역시 대기업 최고경영자로서의 '습관'이다. 측근들이 현안과 관련해 당선인에게 "문제가 좀 있다",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는 식의 보고를 하면 "되게 만드는 방법을 찾으라"는 지시가 되돌아온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22일 인수위 해단식에서도 "인수위는 짧은 시간동안 효과를 내야 하는 전투"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부친상, 인척의 암 투병 등 각종 개인사를 감내하면서도 '전투'에 임해 온 인수위 관계자들을 "헌신적인 공직자로서의 모범사례"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일종의 '노력영웅'인 셈.
이 당선인의 밀어붙이기 스타일도 변하기 어려운 대목으로 꼽힌다. 정부조직법 개편을 둘러싼 정치권의 협상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내각 명단발표를 강행한 배경에도 이 당선인의 '고집'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일부 측근들은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으니 발표를 하루 정도 늦추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지만 이 당선인의 의지가 워낙 강경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건설회사 최고경영자형' 업무추진 방식은 되면 취임 이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책과 이념뿐 아니라 그 형식과 운용에 있어서도 명실상부한 '기업형 정부'의 탄생이다. 그 중심은 물론 청와대다. 청와대 조직을 대통령실로 일원화 한 대목 역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다.
제어할 사람은 없고…'허수아비 내각'될라
내각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예상이 나온다. 정부조직법 개편안 논란 속에서 전격 발표된 장관 내정자 15명 가운데 6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전현직 교수는 5명이었다.
이 당선인 측은 학계 인사들의 중용을 두고 "현장을 강조하는 이 당선인을 논리적, 이론적으로 보좌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거꾸로 "정부부처가 청와대의 집행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두고는 이 당선인 측 관계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주호 교육과학 수석 내정자-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후보자로 이어지는 교육정책 라인이다. 김도연 후보자는 교육정책과는 무관한 과학계(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인사다. 반면 이주호 수석 내정자는 지난 대선을 경과하면서 '이명박 교육정책'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도 그의 작품에 가깝다.
경제정책의 운용주체 역시 청와대다.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내정자와 김중수 경제수석 내정자가 '투톱'을 이루고 있다. 이 당선인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들을 통해 당선인의 의중이 각 경제부처로 전달되는 구조라는 얘기다.
"권력집중, 부메랑 될 수 있다는 것 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는 'CEO 대통령' 1인의 판단이 크게 작용하면서 수석들이 기업으로 따지면 일종의 '구조조정본부'로 기능하는 형식의 국정운영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 지난 인수위 활동을 보여 줬던 '기업가형 리더십'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당선인의 한 측근도 "권력의 지나친 집중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러나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조치라고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권력의 집중'은 역으로 '책임의 집중'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청와대를 제어할 마땅한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이명박 정부의 '약한고리'다. 이 당선인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 등 치열한 논란이 예상되는 각종 정책에 대한 강행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있는 대목도 그 위험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고 도덕성 논란 역시 차기 정부의 상시적 뇌관이다. 다행히 이 당선인 본인은 특검을 통해 '털고' 취임하게 됐지만 이른바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라인과 '강부자'(강남 땅부자)내각은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다.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 당선인의 논리가 아직까진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고 있지만 성과가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 모든 방파제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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