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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일가 싸움, 롯데의 미래는 안중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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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일가 싸움, 롯데의 미래는 안중에 없다

[기자의 눈] 그들은 롯데 경영할 자격이 없다

"온전한 절반인가, 망가진 전부인가."

나라면 '온전한 절반'을 택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권력 맛을 본 사람들은 다르단다. 무조건 '망가진 전부'를 고른다고. 절반씩 나눠 가지면, 누가 대장인지가 불분명하다. 권력자들은 그걸 못 견딘다는 게다. 파이가 좀 적어도, 확실한 권력을 보장 받기를 원한다. 파이가 모자라면, 힘으로 사람들을 쥐어짜면 된다. 그럼 파이가 금방 커진다.

한 인권 운동가가 해준 이야기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 독재자의 행태에 대한 설명이다. 자기 권력을 떼어 주고 경제를 키우는 방식보다는, 나라 살림이 망해도 권력을 독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

그때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권력은 다 똑같다. 총수가 봉건영주처럼 군림하는 기업도 마찬가지. 재벌 총수들은 자신의 영향력이 커질 수만 있다면 기업이 망해도 개의치 않는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서 벌어지는 저질 드라마가 확인시켜줬다.

롯데호텔 34층에서 벌어지는 저질 드라마

▲신격호 총괄회장(왼쪽)이 19일 오후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을 나서고 있다. ⓒSDJ코퍼레이션
신격호 롯데 그룹 총괄회장이 최근 기자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을 매섭게 비난했다. 그러자 롯데 측은 신 총괄회장이 숙소 겸 집무실로 쓰는 롯데호텔 34층을 통제하겠다고 했다. 총수 전용 엘리베이터의 보안카드를 교체했다. 새로운 보안카드는 신동빈 회장 쪽 사람에게만 지급됐다.

신 총괄회장과 그의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가 반발하고 나섰다. 롯데호텔 34층을 통제한 데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결국 신동빈, 신동주 형제가 롯데호텔 34층을 공동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그게 지난 주말 상황이다.

사흘 뒤, 상황이 또 달라졌다. 롯데 그룹은 20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신동주 대표 쪽 사람들이 롯데호텔 34층에서 퇴거하라는 내용이다. "필요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하루 전인 지난 19일에는 신 총괄회장의 외출을 놓고서도 실랑이가 벌어졌다. 신동주 대표와 함께 서울대 병원에 다녀왔는데, 롯데 측은 날선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날, 신 총괄회장은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아울러 새 비서실장을 곧 임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롯데 그룹 측은 비서실장을 유임한다는 방침이다. 신 총괄회장의 해임 통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신격호, 신동주, 신동빈의 잘못

정리하면 이렇다. 신동빈 회장은 뚜렷한 명분과 근거 없이 아버지 숙소 출입을 통제했다. 숙소에 누구를 들일지, 외출을 할지 말지 등은 당사자가 결정할 일이다. 이건 신 회장의 잘못이다.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잘못했다. 그는 아무런 절차 없이 비서실장 해임을 통보했다. 전에도 그랬다. 지난 7월 27일, 그는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을 포함한 이사 6명에게 구두로 해임을 통보했다. 다음날 일본 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신 총괄회장이 오히려 해임됐다. 구두 해임 통보는 법적 효력이 없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모양이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걸 보면 말이다.

신동주 대표 역시 한심하다. 환갑 지난 그가 하는 일이라곤, 아버지 등 뒤에 숨는 것뿐이다. 재벌 문제의 권위자인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경영권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사회로부터 승인받는 것이다. 그걸 깨우쳐 주는 게 우리의 소중한 기업을 지키는 길이다."

지배구조 대안 못 찾으면, 성장도 없다

롯데호텔 34층으로 두 명의 비서실장이 출근해서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우기는 진풍경이 곧 펼쳐질 모양이다. 그 사이, 반(反)롯데 정서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롯데 면세점 특허 재허가 심사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운영 특허가 곧 만료되는 롯데 면세점 서울 소공점과 서울 롯데월드점의 연 매출은 2조6000억 원에 달한다. 재허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롯데 그룹은 자금 사정 악화가 필연이다. 더구나 한국 롯데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 상장을 약속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 꼬인다. 자금 수요는 늘어나는데, 돈줄이 마르게 됐다.

하지만 신동주, 신동빈 형제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 않는 듯하다. 기업이 쪼그라들어도, 그래서 숱한 일자리가 사라져도, 경영권만 장악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총수 일가가 전횡하는, 봉건적인 기업 지배구조에선 기업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 지배구조의 대안을 찾지 못하면 성장도 없다. 그게 지난 대선 당시 달아올랐던 '경제민주화' 논의였다. 하지만 겨우 3년 만에 다들 잊어버렸다. 아프리카 몇몇 나라 독재자의 행태가 신기하다고 여겼던 내가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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