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과 2015년 여름, 두만강 지역의 국경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주 연구 지역인 단둥(丹東)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 지역에 삼국(중국, 북한, 한국)이 공존하고 있었다.
두만강 지척에 있는 한 공업 단지의 건물 창 너머로 북한 노동자의 봉제 작업을 볼 수 있었고, 바로 옆 다른 공장에서는 중국 노동자들이 한국의 휴롬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거리 상점의 "조선, 로씨야, 한국 상품 도매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이처럼 두만강의 국경 도시 역시, 북-중 혹은 북-중-러의 경제 교류만으로는 설명하기에는 부족하였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5년 옌지(延吉) 공항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에는 '평양'과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 두 편의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내용이 담겼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두 편의 비행기에 타고 있는 그들의 가방에는 어떤 물건이 있고, 귀국을 할 때는 어떤 제품으로 채워갈까? 그들은 옌지의 다양한 공간에서 만남과 교류가 직간접적으로 있을까?"
이러한 질문의 핵심에는 남북과 중국, 삼국 교류가 놓여 있다. 사실 이것은 단지 상상이 아니다. 두만강 국경 지역에서 지금 진행 중인 현실임을 나는 조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할 수 있는 곳은 10년 넘게 연구하고 있는 단둥이다.
한국과 북한의 물리적 거리가 2시간 단축되었다
단둥~선양을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2015년 8월 말 개통되었다. 이를 놓고 한국의 언론은 "북-중 관계" 예측 혹은 북-중 무역과 관련된 "단둥의 경제 분위기"를 보도하고 있다.
"북-중 접경 도시 단둥(丹東)이 중국 동북 3성의 중심 도시인 랴오닝 성 성도 선양(瀋陽)과 한 시간 생활권에 들어섰다." (<연합뉴스> 2015년 9월 15일자)
대부분의 기사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하나 더 있다.
"북한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맞댄 단둥은 철도·도로 등 육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반출입하는 화물량이 북·중 무역 총량의 80%에 달합니다."(<한국방송(KBS) 뉴스> 2015년 9월 2일자)
그 이외의 다른 진단과 해석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중국의 고속철도 개통은 북-중 무역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단둥-선양 고속철도는 베이징뿐만 아니라 한국의 인천공항과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단둥의 국경 무역 관계자의 눈은 다른 곳에도 가 있다. 바로 한국이 포함된 삼국 무역이다.
그렇다면, 고속철도 개통 이전 단둥은 한국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을까?
중조우의교가 북한과 중국의 국경만을 연결하고 양 국가만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님을 알려면, 이 다리가 어디와 이어져 있는지를 보면 된다. 이 다리는 북한 쪽으로는 신의주와 평양, 중국 쪽으로는 다롄(324킬로미터), 선양(240킬로미터)이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다롄(1시간 거리)과 선양(1시간40분 거리)은 인천공항과 연결되어 있다. (…) 또 이 다리는 단둥 시에 속한 중국의 국제 항구인 단둥 항까지 차로 40분이면 충분하다(약 40킬로미터). (…)이 항구와 인천항은 오후 다섯 시에 배를 타면,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노선(245해리)이 있다. 1998년부터 매주 두세 번씩 왕복하면서 최대 인원 600명과 화물 110톤을 실어 나르던 단둥페리는 2011년 약 800명이 넘는 사람이 탈 수 있는 배로 바뀌었다(매주 3회 출항, 월·수·금 한국 출항, 화·목·일 중국 출항 코스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80쪽)
단둥의 약 2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를 제외하고도, 한국어를 공유하면서 경제 활동을 하는 네 집단(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의 규모가 약 1만 여 명이다. 한국이 포함된 삼국 무역을 17년 넘게 하고 있는 조선족은 단둥-선양 고속철도 개통의 의미를 한 마디로 말한다.
"한국과 북한의 물리적 거리가 2시간 단축되었다."
조선족의 이 한마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둥의 국경 무역을 삼국 무역이 아닌 북-중 무역"으로만 해석하고,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단정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의 시각으로는 가슴에 와 닿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조선족의 식견은 단둥의 국경 무역 종사자들이 20년 넘게 실천하고 있는 삼국 무역의 경험들이 농축되어 나온 말이다. 아래의 참여 관찰한 내용은 단둥의 단순 한 사례가 아니다. 단둥의 네 집단 사람들은 삼국을 연결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한 한국 물건이 평양에 이틀이면 도착한다
2015년 8월 중순, 연을 맺은 지 10년이 넘은 단둥의 조선족 A씨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대북 사업을 본격적으로 한 지 약 3년이 넘었다. 어떻게 보면, 평균 15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단둥의 대북 사업 종사자 가운데는 신출내기이다.
유럽의 의류 주문을 평양에서 생산하고 있는 그는 때로는 북한 사람과 사업을 할 때 필요한 물건을 한국의 지인에게 국제전화로 주문한다. 그가 오전에 주문을 하면, 오후에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단둥페리를 통해서 그 다음날 10시에 단둥 항에서 물건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그의 여권 한 면에 "대한민국"과 "조선" 출입국 도장이 함께 찍혀 있는 페이지를 사진으로 남겼다. 대북 사업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가 핸드폰으로 단둥의 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을 접하였다. 핵심은 단둥에서 한국 홈쇼핑 TV 광고를 보던 북한 사람이 한국 물건의 구입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국제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호텔 TV로 제품을 확인한 조선족 A씨는 다음날 출국인 관계로 대형마트에 가서 제품을 구입하였다. 그는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강 박사도 알다시피, 내일 오전 인천에서 선양행 비행기를 타고 가서 내린 뒤, 단둥행 리무진 버스를 타면 3시간 정도 걸리니까, 늦은 점심때쯤 북한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네. 그 사람이 모레 오전에 단둥역에서 평양행 국제열차를 타니까 아마도 오후 늦게 평양 사람이 이 물건을 받겠군! 보름 뒤에 고속열차가 개통을 하면, 더 빨라지겠지!"
그의 마지막 말 한마디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중국 사람이다. 때문에 5.24 조치 이후에도 한국 사람을 통해서, 아니면 내가 직접 한국 물건을 사서 북한 평양으로 물건을 여전히 보내고 있다. 중간에 조선족이 있으면 일없다(문제없다). 내 주변의 한국 사람, 북한 화교가 나처럼 살고 있는 것은 강 박사도 알잖아!"
문재인의 "한반도 신경제 지도", 완성은 서울(인천)-단둥-평양(신의주)
그가 단둥으로 돌아간 며칠 후, 2015년 8월 16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문재인은 "한반도 신경제 지도"를 배경으로 한 채 의미 있는 발표를 하였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는 "우리의 경제 활동 영역을 북한과 대륙으로 확장해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 지도를 그려야 한다"며 "5. 24 조치 해제"를 요구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환동해권과 환황해권의 양 날개 발전 전략"이 "한반도 신경제 지도"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도에는 막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진·선봉-블라디보스토크-부산"을 연결하는 선이 보인다. 그런데 이 연결고리를 중시 여기다면, 당연히 함께 있어야 될 단둥이 빠져 있다. "한반도 신경제 지도"에는 서울(인천)-단둥-평양(신의주)을 연결하는 선이 없다. 이는 약 20년 넘게 단둥에서 축적된 남북 교류 그리고 북중 무역이자 삼국 무역의 메카인 단둥의 역사와 현재를 간과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가 "신(新)"에 주목을 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미래의 물류에만 주목한 모양새다.
단둥은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남북의 "경제 통일"의 씨앗이 발현된 곳이다. 1998년부터 인천-단둥의 바닷길이 열리면서 남북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경제 통로가 만들어졌고 2000년대 남북 교류의 무대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2010년 5.24 조치 이후에도 공식적인 통계와 교류는 당연히 없지만, 비공식적이고 간접적인 남북 경제 교류는 유지되고 있는 곳이 단둥이다.
"5.24 조치" 해제 후에도, 휴전선을 통과해서 남북을 이어주는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길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데는 상당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전에 현실적으로 남북 교류의 핵심 현장의 역할을 할 곳은 단둥이다. "5.24 조치"가 해제되는 순간부터 바로 공식적인 남북 교류와 경제 통일이 실천될 수 있는 곳이 단둥이다. 2015년 단둥의 네 집단의 삶과 한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단둥의 다양한 길과 물류 그리고 교통수단들이 이를 말하고 있다.
"한반도 신경제 지도"를 고민하는 사이에, 단둥-선양의 고속철도는 개통되었고, 9월 말부터 인천-단둥 비행기가 시범 운항을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저녁을 먹고 밤늦게 단둥에 비행기로 도착을 하면, 네 집단의 사람들이 대북 사업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술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나는 희망한다. 문재인 대표의 "한반도 신경제 지도"에 단둥이 포함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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