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지난 달 3일 "지난 10년 간 좌파정부의 큰 문제로 근로자나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이걸 해결하자는 것이 신용회복 문제의 본질이다"며 고 강조했다.
인수위는 이른바 '모럴 헤저드' 논란에 대해서는 "기업에 대해선 예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 8.3조치 같은 부채탕감이 있었고 농어촌에 대해서도 부채 탕감과 경감이 있었다"면서 "은행 등 금융기관에도 IMF 이후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들여서 구제한 바 있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같은 '호기'는 딱 하루 만에 사라졌다. 바로 다음 날인 1월 4일 강만수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재정투입 10조 원 이야기나 부채 원금탕감 이야기는 다 사실이 아니다"면서 "이자가 과도한 경우 환승론(대출 전환)이라고 해서 자산관리공사 등이 인수하는 방법 등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들의 공약과 전날 발언을 뒤집었다.
이후 이 정책은 통신비 인하, 비정규직 정책 등 다른 서민맞춤형 공약과 마찬가지로 신 정부의 핵심과제나 중점과제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물밑으로 가라 앉았다. 정책 발표 직후 경제신문과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탓도 있겠지만 혹여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을 중심으로 서민에 대한 금융 안전망과 금융소외자의 '금융 사다리' 마련 등 대안금융에 대한 논의가 오히려 더 활발해 지고 있다.
사금융 이용자의 85%가 1000만원 미만의 돈만 있으면 사채를 갚고 자활의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지난 해 금융감독원의 조사에 비춰봐도 제도권 은행과 대안금융기관이 자발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계, 정부의 제도적 환경을 조성이라는 3자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는 이야기다.
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양준호 인천대 교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일 대 일 채권 채무 관계가 전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현실 자체가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양 교수는 '쩐의 전쟁'같은 우리 현실 속에서 '신용회복제도를 악용해 돈을 떼먹는 채무자'는 상상 속의 인물일 뿐임을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신용회복제도가 도입되면서 은행권의 연체율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면서 '도적적 해이론'이야 말로 비실증적 주장임을 입증하며 "당장 실질적 구제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일본 교토대학에서 제도경제학·조절이론 등을 전공해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양 교수는 일본 계간지 <유물론 연구>에 글을 기고했었고 이번 겨울 방학 동안에는 학생들과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을 윤독하고 있는 '비주류 경제학' 전공자다.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했고 세계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 후' 등재 등의 경력도 지니고 있는 양 교수는 오는 3월부터 개편될 <프레시안>의 [밥&돈]의 필진에 합류해 금융소외, 일본 경제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견해를 개진하게 된다. <편집자>
A가게 외상 늦게 갚았다고 B가게도 못간다?
새 정부의 신용회복 지원을 위한 특별정책 공약이 보수언론과 이른바 '시대착오적 시장주의자' 들의 도마 위에 오른 지도 오래다. 총 금융거래자의 20%에 이르는 720만 명의 금융소외자들에 대한 채무재조정 및 연체기록 삭제, 그리고 소액대출기관 설립과 관련한 새 정부의 정책 구상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이러한 여론들에 의해 '중도보수주의자'들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내놓은 모처럼의 신용회복 특별정책이 꼬리를 감추게 되는 슬픈 가정을 하게 되면, '중도'와 '실용'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에 의해 탄생했다고 자부하는 새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 물론 새 정부에는 "차라리 잘 됐다"라고 내심 흐뭇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1000만 금융소외자들의 '보복'으로 집권 내내 고생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신용회복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몰이의 선봉에 서 있는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채무자가 채권자로부터 진 빚은 양자 간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지, 왜 사회가 개입하느냐 하는 외침으로 먼저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 입각해, 국가가 채무자들의 빚을 재조정해준다던지 연체기록을 삭제해준다던지 하게 되면 금융시장에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조장되어 결국 금융시장에 있어서의 그들이 경애하는 '시장적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 해 전체 금융시장의 질서를 교란시키게 된다고 걱정한다.
올 해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적으로도 굵직한 '시장주의자'들조차 부정해버린 '시장에 대한 우상숭배'를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는 꼴이다. 결국 한국의 이 열성 신앙인들은 금융소외의 문제는 채무자와 채권자 두 사람만의 일이니 이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함으로써 모든 조정은 '시장(市場)님'에게 위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복음으로 모시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장(市場)님'의 현실은 어떠한가? A은행으로부터 진 빚을 못 갚아 한때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가 지금은 빚을 다 청산한 사람이 B은행이나 C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범죄인' 취급을 받고 있지 않는가? 이는 한 사람의 채권자와 한 사람의 채무자 간의 사적 거래가 수많은 채권자와 한 사람의 채무자 간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사회 특유의 '이상한(?) 시장'에 의한 조정으로 결국 금융소외로 귀결되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시장이 작동되고 있다면, A가게의 외상을 갚지 못 해 한때 미움을 당한 사람이 이 가게에 값을 다 치루고 난 뒤 A가게는 아니더라도 B가게와 C가게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의 금융소외 문제가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금융소외의 발생 자체가 극히 구조적이고 또 사회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나도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신용회복제도를 실행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판단만으로 장기연체 채무자에 대한 지원을 도외시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절박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시장'이니 '구조'니 하는 문제는 이 정도로 정리해두고, 새 정부의 신용회복지원 제도 시행에 따른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①연체채무자에 대한 관리의 고도화, ②채무자의 역선택 가능성, ③과거 사례, ④기존 타제도와의 비교 라는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도덕적해이론'은 결국 거짓말에 불과!
첫째, 연체채무자에 대한 관리의 고도화의 측면에서 '도덕적 해이론'을 반박해보자. 우리 국내 금융시스템에서 금융기관의 연체채권 관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대출 실행 전 심사 → 상환기간 중 관리 → 연체이후 밀착관리 및 추심 → 채권 (전액)회수 또는 파산· 면책.
채권관리 과정에서 연체채무자 관리는 더욱 강화되어 전문화된 인력이 거의 1:1 수준으로 밀착 관리하여 채무자 상환능력 정보를 상당 부분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자체 전문 인력 또는 외부 전문 인력과 과거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구축된 전문 시스템을 활용하여 연체채권을 관리하고 있다. 심지어 연체 이후에는 채권자에 의해 정부 행정전산망을 이용한 주소지 확인, 주소지에 대한 재산 소유여부 확인, 대출심사자료 및 연체이후 면담을 통한 소득원(직장, 장사하는 곳 등) 파악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연체채무자에 대한 관리의 고도화로 이들에 대한 정보는 다른 경제활동 분야에 비해 많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출실행 시부터 단계적이고, 밀착 관리되는 연체 채권은 과도할 수도 있는 정보수집에 의해 다른 경제활동 분야에 비해 오히려 정보가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연체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관리강화로 인해 정보 수집량이 오히려 많아지게 되어 신용회복지원제도의 대상자가 채무상환을 회피하는 등의 문제점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이다.
둘째, 채무자의 역선택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보자. 연체가 발생하게 되면 채무자는 채권자의 밀착관리의 결과로서 독촉에 대한 심리적 압박, 신용등급 하락, 주변 평판의 하락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은 굳이 드라마 '쩐의 전쟁'을 다시 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신용회복지원제도가 연체 즉시 지원하거나 연체 예상 채무자까지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체발생 이후 상당기간 불이익을 받은 이후에 지원되는 점을 감안하면, 채무자의 역선택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론자'들은 제발 연체 채무자가 상당 기간 높은 강도의 경제적 · 사회적 · 정신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셋째,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과거사례를 약간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한번 살펴보자. 이전 정부 하에서의 신용회복위원회 설치, 상록수·한마음금융·희망모아프로그램 운영, 통합도산법 제정 등 그동안의 다양한 신용회복지원 관련 정책이 시행됐다. 그런데 그래서 그 결과 금융기관이 위험해질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던가? 신용회복지원제도가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등의 금융기관 부실채권비율은 오히려 하락했지 않은가!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07년 0.8% 이하로 축소되어 선진 외국은행 보다 월등히 낮은 수준이다.
밑의 그래프를 보면 잘 알겠지만, 특히 기업채권과 가계채권, 주택담보대출채권과 신용카드채권의 부실채권비율 추세가 모두 유사한 점은 신용회복정책 도입과 도덕적 해이의 상관성이 낮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지 않은가! 좋다. 과거 도입한 신용회복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키지 않는 수준에 불과했다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채무를 전액 탕감해 주는 파산제도가 급격히 활성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논의가 의미 없을까? 나는 최근 한 심포지움에서 '시장숭배자'들이 "신용회복 특별정책이 갖는 '따뜻한 가슴'은 이해하겠는데, 금융구제의 결과에 대해서는 보다 '차가운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고하고 싶다. "사실 당신들이 속으로 그토록 혐오하는 '따뜻한 가슴'은 거론도 안 하겠다. 제발 당신들이 지향하는 '차가운 머리'로 확인해주길 바란다. 도대체 지금까지 시행된 신용회복 지원이 무슨 도덕적 해이를 얼마나 초래했단 말인가!" 나는 과거 신용회복정책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 징후를 찾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은행권의 연체율 지수. 신용회복 제도 도입 이후 개인 연체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기존의 파산제도와 비교해보자
넷째, 새 정부의 신용회복 특별정책을 기존 타 제도와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기존의 개인회생 및 파산제도에서는 이론적으로 채무의 전액 탕감이 가능하다. 실제 파산제도의 경우 면책제도를 통한 전액 탕감도 적지 않으며, 개인회생의 경우 대부분 원금의 60% ~70% 이상 탕감해주는 실정이다. 이런 혜택에도 불구하고 제도이용자가 받는 불이익은 없거나 낮은 수준이다. 파산자의 경우 피선거권 제한 등 일부 불이익이 있으나 면책이 결정되면 대부분 불이익이 회복되고, 개인회생제도는 이마저도 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제도 이용을 위해 채무자는 1~200 만원의 비용과 약간의 시간만을 부담할 뿐이다. 그러나 향후 새 정부에서 시행이 예상되는 신용회복지원제도는 채무면제는 더 낮은 수준으로 예상되어 채무자가 새로운 제도이용을 위해 도덕적 해이에 빠져 되어 금융기관을 악용할 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따라서 현재 법제화된 파산 및 개인회생제도를 감안하면 향후 시행이 예상되는 신용회복지원제도의 도덕적 해이를 논하는 것은 지극히 관념적인 작업임을 지적해두고 싶다.
결과적으로 시장숭배자들이, 아니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없는 사람 구제·지원해주는 것이 배가 아픈 이들이 제기하고 있는 신용회복지원제도에 대한 도덕적 해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이므로, 오히려 채무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방안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국면이다.
도덕적 해이 가능성에 대한 추상적 논의보다는 관리를 더욱 강화하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수 있는 채무자에 대한 유인제도(Incentive design) 도입을 검토하여 채권자와 채무자가 윈윈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논의가 '실용적 인'것이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에 요즘 유행하는 말이 '실용'이라 나도 이 단어를 한 번 써봤다. 더욱 많은 정보 공유를 위해 신용회복지원자에 대한 국민연금 납입정도, 의료보험납입정보 및 기타 납세 정보 등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단! 채무자 정보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채권자를 공적기관으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지원대상자를 대책발표 이전의 과거 연체채무자로 한정시켜야 할 것이며 자발적 정보제공자 채무자에 대한 지원확대(예를 들어 원금 1% 추가 탕감), 지원이후 은닉재산 보유 채무자에 대한 지원 철회 등의 다양한 유인제도(Incentive design)도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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