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이른바 '4대 개혁(노동·금융·교육·공공부문 개혁)'의 하나인 '교육 개혁'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 지도부도 연일 색깔론까지 펴면서 지원에 나섰다. 이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공식 석상에서 "북한에서 먼저 정부를 구성했다"고 틀린 발언을 해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현재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출판사별로 일관되게 반(反)대한민국 사관, 좌파적 세계관에 입각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부정하다 보니 스탈린의 지령을 받아 북한에서 먼저 정부를 구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뒤집어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분단의 책임이 있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은 1948년 8월 15일, 북한 정부 수립은 같은해 9월 9일이다. 북한 정부 수립일은 통칭 '9.9절'이라고도 불리며, 북한 연구자들은 물론 정치권 고위급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상식으로 통한다.
김 대표는 최근 부친인 고(故)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전력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지난달 17일 민족문제연구소는 1943년 김 전 회장이 일본 <아사히신문>에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라는 광고를 실은 사실을 새로 밝히는 등 그의 친일 행적을 정리해 발표했다. (☞관련 기사 :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 적극적 친일파!")
'교육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관동군·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는 친일 전력과 유신 선포 등 독재정치를 했다는 비판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다. 때마침 야당은 "박근혜 정부는 친일 미화, 독재 찬양 (방향으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모든 망동을 중단하라"(7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 결의문)라는 성명을 냈다.
부친의 '친일·독재' 논란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당·정 지도부가, 야당으로부터 '친일·독재 미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야당 지도부 회의에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던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친일·독재 미화, 역사 왜곡을 넘어 이젠 친일·독재 후손들이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려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교과서 국정화, 청와대 및 여야 입장은?
정치권 안팎에서는 다음주 13일 국무회의를 전후해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박근혜 정부 차원의 입장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교육 개혁'으로 중고등학교 역사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발표가 조만간 있을 것 같다"고 이날 최고중진회의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아침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은 한국사 교육의 전반적인 일반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한 바 있다"며 "지난해 2월 13일 교육·문화분야 (신년 업무계획) 보고 당시 모두 발언을 참고해 달라"고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통해서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많은 사실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있는 내용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부는 이같은 문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실에 근거한 균형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것이) 대통령의 최종 입장이고 청와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여당 지도부는 일제히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적이고, 종북적 내용을 담고 있다며 분위기 몰이에 나섰다. 김 대표는 "산업화의 성공을 자본가의 착취로 가르쳐서 기업가 정신이 거세된 학생들을 만들고 있다"며 "현행 역사교과서들은 학생들이 배우면 배울수록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모든 문제에 사회 탓, 국가 탓만 하는 시민으로 만들고 있다"고 이념 공세를 폈다.
김 대표는 "북한은 완전히 실패한 국가인데도 현재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보면 마치 북한 체제가 매우 정상적인 것처럼 서술된 부분이 많이 있다"면서 "분단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안의 중요도를 감안하지 않은 채 주관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쓴 표현들이 매우 많다"거나 "위험한 독재정권을 옆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을 통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그런 차원에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한국사 교과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 등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것보다 분단 현실과 안보 상황에 맞는 교육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학생들 마음속에 올바른 역사관·국가관을 심어주는 일은 하얀 종이 위에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똑같다"며 "젊은이들이 정말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고, 김을동 최고위원은 "현 세대는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건강한 '민족 혼'을 심어줘야 할 거룩한 사명이 있다"고 했다.
특히 이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이정현 최고위원도 나서 "편향된, 북한에서 우상화하고 있는 내용을 전파하는 내용으로 교과서가 집필된다면 정말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거들었다.
국정화 반대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 온 야당은 강하게 반대 뜻을 밝혔다. 문재인 대표는 정부·여당을 향해 "친일·독재 후손들"이라고 일갈한 데 이어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민 역사 인식을 길들이고 통제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을 그만두라. 감춘다고 역사 안 달라진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국정교과서는 독일의 나치 시대, 일본 군국주의 시대, 우리나라 유신 때 (도입)했고, 지금 북한이 하고 있다"며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했거나 하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주승용 최고위원도 "역사 교과서 '왜곡 국정화'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닮은꼴"이라며 "학생들에게 권력의 입맛에 따라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왜곡된 역사를 가르친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친일·독재 미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국사학계의 90%가 좌익'이라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극우적 인식이 자라나는 토양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역사 뒤집기 시도'에 있는 것"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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