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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남북 합의, 이대로라면 무조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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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남북 합의, 이대로라면 무조건 깨진다

[한반도 브리핑] 남북, '협력적 과정'에 대한 신심 키워야

8.25 합의 이후, 남북 간에 상당한 정도로 긴장이 해소되고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절차도 큰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올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이 약속대로 이뤄질까? 이산가족 상봉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타 합의들, 즉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 회담의 개최와 여러 분야에서의 대화와 협상의 진행,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 교류 활성화의 약속은 또 언제 이행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그러한 우려를 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그러한 우려를 해소하고 민족 화해, 평화 정착, 통일의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우리는 왜 8.25 합의 이행에 대해 우려하는가? 첫째, 8.25 합의는 남북한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룩한 합의라고는 볼 수 없다. 당시 상황은 남북 지도자들 간에 불신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박4일' 식의 협상을 통해 어떤 합의를 이뤄낸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서로 협상 중에 뛰쳐나가 협상이 중단되고, 설령 협상을 재개했다 하더라도 합의를 이룩하지 못하고 결렬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터였다.

▲ 지난 8월 22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렸다. 시작 전 악수하고 있는 양측 대표단. 오른쪽부터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북한 대남 담당 비서 및 통일전선부장, 황병서 총정치국장. ⓒ통일부

그렇다면, 8.25 합의 이후 한 달이 훨씬 더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그 동안 남북 지도자들 간의 불신의 크기와 폭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일이 잘못되어 8.25 합의의 이행이 불가능해지면, 양측의 향후 행동은 '기 싸움'의 형세에서 얼마든지 더 공격적이고 통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 지도자들 간의 신뢰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8.25 합의의 이행 실패가 몰고 올 남북관계의 악화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며칠 후인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인공위성 로켓 발사를 예고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에 인공위성통제센터를 건설하고, 언제 어느 곳에서도 발사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로켓 발사를 위한 관련 부품과 장비의 이동 상황을 보면, 10월 10일 이전이나 당일에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만약 10월 10일 이전이나 당일에 로켓 발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음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하나일 것이다. 첫째, 당 창건 70주년을 인공위성 로켓 발사가 초래할 극도의 대결 분위기 속에서 기념하는 것 보다는 가능한 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기념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 경우, 인공위성 로켓 발사는 당 창건 70주년 행사 이후로 연기될 것이다.

둘째, 인공위성 로켓 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어 불가피하게 로켓 발사가 지연되고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이 당 창건 70주년 기념이라는 정치적 명절을 망치지 않으려면 인공위성 로켓 발사가 완벽히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인공위성 로켓 발사와 관련된 정치적, 군사적 의도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위의 어느 경우든지 북한은 결국 인공위성 로켓 발사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북한의 그러한 행위는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 된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인 2013년 3월에 통과된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094호는 북한이 또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추가 핵실험을 할 경우, 안보리가 "더욱 중대한 조치"를 취할 결심을 이미 명문화시켜놓고 있다(expresses its determination to take further significant measures in the event of a further DPRK launch or nuclear test).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8.25 합의의 이행 실패와 그 이후의 사태악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8.25 합의 이전 상황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과 그에 대한 북한의 대응으로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이 비상히 고조됐다. 남북한이 포격을 주고받는 등 전쟁 위협이 가히 2013년 봄 이후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에 군사·안보적 이익을 갖고 있는 국제사회는 남북이 한반도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 적극 개입해 남북이 대화와 협상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러한 강대국들의 개입은 과거에 반복된 것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10월 들어 북한이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인공위성 로켓 발사를 예고해왔고, 그에 대해 미국은 강력한 대북 제재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에 반대하면서 한반도에서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했던 지난 8월과는 달리 북한과 직접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북-미 양국은 상대방에 대한 대결적인 정책이 특별히 변화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우려를 해소하고 민족 화해, 평화 정착, 통일의 진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8.25 합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새로 등장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최초로 남한과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 무박 4일의 협상 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뤄내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큰 교훈과 정책적 함의는 북한 지도자로 하여금 앞으로도 그러한 '협력적 과정'을 반복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여 그것을 김정은의 행위 패턴으로 굳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으로 하여금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협상-합의-이행'의 '협력적 과정'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북한과 민족 전체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향후 그의 정책과 행위에 대해 예측 가능한 '과정'적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실적으로 이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남한 정부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남한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서 남북한이 협력하지 않고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는 경험적 진실을 받아들이고, 북한 정부를 본격적으로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로 수용하고 대접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상호 윈-윈하는 방향으로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의제를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북한이 그러한 의제에 대해 대화하고 협상하여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 합의하고 이행하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서 대화-협상-합의-이행이라는 협력적 과정을 남북 간에 문제 해결의 행동양식으로 확립함으로써 민족 화해, 평화 정착, 통일을 진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남북 양측 정부의 태도를 보면,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8.25 합의의 이행 차원에서 현재 이산가족 상봉 건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북한은 인공위성 로켓 발사 문제는 남한과도, 8.25 합의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오면서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그러한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8.25 합의도 상대방이 있는 합의이기 때문에 그 이행의 전망을 잔뜩 어둡게 하고 있다.

▲ 지난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 3호-2호기의 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편, 박근혜 정부가 보인 태도도 북한을 협력적 과정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에게 금도를 넘는 인신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김정은을 공격하는 내용이 담긴 대북 전단 살포를 막지 않는 것은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과 민족 전체의 이익을 위해 우리가 원하는 협력적 과정에 김정은을 참여토록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김정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그를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한-중 정상 회담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발언이 국내외 정치용으로는 도움이 되는 일이겠으나, 김정은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오는 데는 역효과를 냈다. 북한은 바로 이산가족상봉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만일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거나 북한이 인공위성 로켓 발사를 하게 되면, 한반도 상황은 8.25 합의 이전보다 더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우리 정부가 힘써야 할 일은 북 한정부를 대화-협상-합의-이행의 협력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일이고, 그러한 '과정'에 대해 신심을 갖는 일이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면 모르되,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뜻이 있다면, '상대방이 있는 관계'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현실적으로 협력적 과정 외에 다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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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미국 University of Georgia를 거쳐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Harvard University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김대중평화회의(The Kim Dae-jung Peace Forum)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종연구소장을 지냈고,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및 자체평가위원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서울-워싱턴포럼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North Korea’s Foreign Palicy: The Kim Jong-un Regime in a Hostile World (공저, 근간), <박근혜정부의 대북·통일정책>(2018)을 포함하여 역대 남한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다룬 저서 5권, <김정은 시대의 북한정치 2012~2014>(2015), <제2기 오바마정부 시기의 북미관계 2013~2014>(2014), <북한 권력의 역사: 사상·정체성·구조>(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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