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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히틀러의 역사교육 따라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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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정부, 히틀러의 역사교육 따라가나"

[기고]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는 일'의 무모함

현재 한국의 집권당과 정부 당국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학교 제도 안에서 '하나의 역사'로 역사교육을 행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현재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본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가 보기에 비현실적이며 무모한 일이다. 대략 세 측면에서 그 일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 집권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는 구체적으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들에서는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가 실현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학생들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는 국정교과서로 역사교육을 하라고 집권당과 정부가 요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학에 대하여 학문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상 그것이 본래 불가능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역사교육을 받게 될 때 만약 담당 교수가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 정신에 입각해 '국정교과서' 중심의 역사교육에 찬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어느 대학의 한 교수가 '국정교과서'에 기초해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는 역사교육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가 독자적인 역사서술에 기초해 학생들이 그동안 배워 온 '하나의 역사'와는 다른 종류의 역사를 가르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현재 전국 대학의 역사학 관련 교수들 대다수가 '역사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 비교육적인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러한 사태는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에 집착하는 현 집권당과 정부로서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만약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다양한 역사로 가르치기를 용인한다면, 고등학교까지의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가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학에 대해 학문의 자유를 인정한 현행 헌법 조항을 바꾸어서라도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를 관철하려고 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히 무모한 일이다.

ⓒ연합뉴스

하나의 역사가 있을수 있을까

둘째,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자'라는 발상은 '하나의 역사'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가 무모하다고 보는 근본적인 이유다.

'단일한 역사'란 곧 '단일한 과거'를 의미할 텐데, 과연 인간들의 과거가 '단일'한 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한 개인의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그의 '일생사'라는 것이 단일한 것으로 성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 즉 역사서술(historiography)이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성립하는 과거에 관한 내러티브다. 한 사람의 전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일생(life) 그 자체와 그것을 문자로 서술한 전기(biography)가 결코 같을 수 없듯이, 과거 그 자체와 과거에 관한 역사서술은 본래 다른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매우 자명한 사실이다.

과거 한 사건에 관해서는 본래 다수의 내러티브들이 있게 마련이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에 관해서도, 그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과 설명과 가치판단이 있게 된다. 또한 어떤 사건에 관해 특정한 관점으로 해석하고 가치판단을 내린 그 사람 본인이, 시간이 경과한 후에 그 당시와는 다른 관점으로 그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고 가치를 내리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자. 이 단일한 사건에 관해서는 최소한 세 관점이 성립하게 된다. 즉 가해자의 관점(A), 피해자의 관점(B), 사건을 목격한 제삼자의 관점(C)이 그것이다. 이 세 관점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수사관이나 재판관은 A, B, C 세 관점을 모두 중시하고 그 각각을 조사하고 비교해 최종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그 최종 판결은 A, B, C 어느 하나에 가까울 수는 있지만, 그 어느 하나와도 완전히 같지 않다. 요컨대 최종 판결은 A, B, C 세 관점을 종합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이 경우 어느 한 관점을 우선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건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피해자 관점(B)을 진실의 '하나'로 보고 다른 관점을 애초부터 배제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수사와 재판 과정 전체는 무의미해 질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어떤 사건에 관한 '단일한 관점' 혹은 '단일한 진실'이라는 것이 본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의 작은 사건이나 한 사람의 전기에 관해서도 다양한 '관점들'과 '진실들'이 존재하는 법인데, 하물며 국가나 민족 단위의 과거에 관해서 '단일한 관점'과 '단일한 진실'이 있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단일한 역사'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그럼에도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하면, 독선적인 견강부회와 강압의 많은 무리수를 두어야만 한다. 과거 혹은 어떤 사건에 관한 '단일한 진실'이나 '단일한 관점'이 본래 불가능함에도 그것을 관철시키고자 하면, '단일한 관점/진실'에 대립하는 다양한 관점들/진실들은 결국 힘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자'는 발상은 종국적으로는 권력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 셈이다.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통치 권력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강행하고야 말겠다는 권력 사상은 실은 '과잉 권력'이자 '권력 남용'에 다름 아니다. 그에 대해서는 당연히 통치당하는 자들로부터의 저항이 따르는 법이다.

한국 관련 역사서술은 한국인만의 것인가

셋째, 현재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는 일' 그리고 '국정교과서'로 역사교육을 하는 문제는 물론 한국사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한국사라는 것이 한국인들만의 전유물일까. 만약 한국의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수많은 국제관계를 기초로 하여 발생한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관한 역사서술은 한국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사건을 놓고 보더라도, 이 사건은 결코 한국인들만의 사건은 아니었다. 그것은 최소한 중국, 일본, 미국, 구소련의 네 나라가 깊이 관여된 국제적 사건이었다.

한국 혹은 그 이전의 여러 나라들(조선, 고려, 신라 등등)의 수많은 사건들은 그 중요성이 올라갈수록 그만큼 더 국제적 사건들이었다. 다시 말해 근대 이전까지는 중국과 일본을 배제하고서 한국사는 성립할 수 없으며, 근대 이후에는 그에 더하여 미국과 구소련을 배제하고서는 한국사의 역사서술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러한 사건들의 경우 '한국의 관점'에 더하여 중국의 관점, 일본의 관점, 미국의 관점, 구소련의 관점도 당연히 있는 것이며, 또 그것들은 정당하게 인정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해방 후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사건을 '하나의 역사'로 가르친다고 가정할 때,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구소련)의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서는 만약 그것들이 한국의 현 집권세력이 바라는 '하나의 역사'와 상충한다면, 그것들을 '허위'로서 배척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에 관해서, 한국의 현 집권당과 정부가 바라는 관점만이 유일한 진실이며 그와 다른 모든 것들은 허위로 판정할 근거가 과연 무엇일까.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라는 사건은 결코 한국인들만의 사건이 아니며 주변 여러 국가의 인간들에게도 의미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현 집권당과 정부는 무슨 권리로, 타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바라는 '하나의 역사'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마치 한국을 모든 국제관계와는 무관하게, 마치 우주 안의 단독자로 독존하는 존재처럼 간주하는 실로 기괴한 태도가 아닐까.

히틀러, 스탈린의 역사교육을 따라 할 것인가

이상과 같은 이유로, 필자는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는 일'이 실로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그들 자신만의 관점을 유일하게 참된 관점으로서 내세우고, 타자들에게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폭력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는 일'은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을 침묵시켜야만 하며, 종국적으로는 통치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모한 일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다양한 '진실들'을 가르치도록 헌법에 의해 보장된 대학들에 대해서나, 대한민국의 통치 권력이 미치지 않는 주변 국가들의 관점들에 대해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자국민들을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고자 한 사례들을 익히 보아 왔다. 히틀러나 스탈린 치하의 일당독재국가들이 실행한 역사교육이 그에 해당하며, 해방 전 일본제국이 본국이나 식민지들에서 실행한 역사교육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지금도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하고 있는 역사교육 역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지금 그러한 나라들의 반열에 들고 싶어 하는 것인가.

이상과 같은 이유로 나는 현재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자'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슈를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의 중요 의제로 만들고 있는 집권당과 정부는 실로 무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실현하려고 하면 허다한 문제들과 분쟁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한 일을, 무모하게 추진하고 있다. 만약, 어떤 은폐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사기 싫다면, '하나의 역사로 가르치기'를 추진하고 있는 현 집권 세력은 지금이라도 냉철한 이성으로 사태를 바라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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