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안심번호제 기반 국민 공천제'를 골자로 하는 김무성-문재인 양당 대표 간 합의에 대해 사실상 공개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내놨다. 이 문제를 논의할 새누리당 의원총회를 불과 3시간여 남겨 두고 나온 메시지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정오께 기자실을 찾아 "안심번호 공천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작심한 듯 다섯 가지 불가 이유를 내놨다.
이 관계자는 "첫째, 소위 '역(逆)선택'을 차단할 수 있느냐, 민심 왜곡을 막을 수 있겠나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안심번호가 있다고 하지만 지지 정당을 묻고 난 다음에 (투표를) 하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렇게 됐을 경우 역선택 또는 결과적 민심 왜곡을 막을 수 있겠나 하는 우려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둘째, 전화 여론 조사 응답률이 6%도 안 된다"며 "이럴 경우 조직력이 강한 후보가 유리하고, 인구 수가 적은 선거구는 안심번호가 노출되기 쉬워 조직 선거가 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셋째, 이런 것들을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한다고 하면 그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 것"이라며 "과연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민 공천제라는 대의명분에 공감하기보다는 '세금 공천'이랄까 이런 비난의 화살이 커지는 것 아닐까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넷째로 "전화 여론 조사 응답과 현장 투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점 역시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이어서 "다섯째, 이런 중요한 일들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등 내부 절차 없이 (결정)됐다. 그야말로 졸속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합의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가 새누리당 공천 문제를 놓고서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여권이긴 하지만, 정책 사안도 아닌 정당의 선거 대책 문제에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이다.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청와대는 답변이나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천은 당에서 알아서 할 문제인데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안심번호 국민 공천제는 바람직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우리도 좀 우려할 점(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기자들의 질문도 많았다"고 덧붙이듯 말했다.
지난 28일의 '김무성-문재인 부산 합의' 이후 새누리당은 내홍을 겪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 내홍의 구도를 △스스로 '정치 생명을 걸었다'고 공언까지 하며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밀어붙여 이를 대선 가도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김 대표 측과, △내년 총선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공천 지분 보장을 요구하는 청와대·친박계의 충돌로 보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의 입장 표명이 30일 오후 3시로 예정된 새누리당 의원총회 직전에 나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청와대가 김 대표 측에는 경고를, 당내 친박계에는 '부산 합의' 통과를 저지하라는 '사인'을 낸 것이라는 풀이가 나올 만한 상황인 것.
지난 28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만난 김무성·문재인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휴대전화를 활용한 공개 경선 방안을 양당이 함께 도입하자는 데 의견 접근을 이룬 바 있다. 휴대전화 번호를 암호화한 '안심번호'를 부여해, 정당의 당원이 아닌 유권자도 정당의 후보 선출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관련 기사 : 김무성·문재인 "안심번호 국민 공천제 의견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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