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이 결혼했다고, 아이 돌이라고 돌리는 떡은 축하하는 마음을 배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폭신하고 쫄깃한 떡을 베어 물 때마다 기분 좋았지만,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그런데 여기, 떡이 생각보다 만들기 쉬운 데다가 장점도 많다는 제보가 속속 들어왔다. 읽고 나면 쌀가루를 빻으러 가고 싶을 것이다.
채식하거나 밀가루를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면
떡은 '곡식 가루를 찌거나, 그 찐 것을 치거나 빚어서 만든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보통 쌀가루를 기본 재료로 하고 잡곡, 채소, 과일 등을 더해 만든다. 한살림요리학교의 강미애 요리연구가는 다양하게 응용해서 만들 수 있는 떡의 성질 때문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떡을 더 많이 해 먹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를 가든 거기서 나는 과일이나 채소로 만들 수 있거든요. 현지 친구들을 초대할 때 대접하면 반응도 좋았어요."
같은 학교의 채송미 요리연구가는 "우유나 버터의 냄새에 거부감이 있어 빵을 먹지 못해" 떡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동물성 재료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떡은 특히 채식할 때 유용하다. 글루텐(보리나 밀 등 곡물에 존재하는 단백질의 혼합물로, 밀가루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쫄깃쫄깃하게 만들어 준다)에 알레르기가 있거나 밀가루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좋다.
떡의 주재료인 쌀가루는 보통 방앗간에서 불린 쌀을 곱게 빻아 만든 것이다. "방앗간에서는 쌀가루를 낼 때 소금 간을 하기 때문에 소금의 질이 걱정되면 자기가 소금을 직접 가져가서 빻아 달라고 하는 게 좋아요." 집에서 하룻밤 동안 불린 쌀을 채반에 밭쳐 물기를 빼고 분쇄기로 갈아서 쌀가루를 직접 만들 수도 있다. 불리지 않은 쌀로 만든 건식 쌀가루는 물을 주고 섞어서 냉장고에 서너 시간 놔뒀다가 써야 하고, 기호에 따라 물 대신 우유나 두유를 주어도 좋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넉넉히 빻아 소분한 뒤 냉동실에 보관하면서 쓰는 것"이다.
"한번 해 보면 '왜 이렇게 쉽냐'고 놀라요"
사람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은 물 잡기이다. 밀가루와 달리 쌀가루는 수분량이 일정하지 않아 계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쌀가루 100g에 물 2큰술을 기준으로 하지만, 쌀의 종류나 불리고 물을 뺀 시간 등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물을 준 쌀가루를 손에 지그시 쥐고 반으로 톡 잘랐을 때 양면이 깔끔하게 잘리면 적당해요."
찹쌀가루를 치대어 만드는 떡은 멥쌀가루를 쓸 때보다 물을 적게 잡는다. "먼저 손바닥으로 쌀가루를 비벼 보면서 몸으로 느끼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한번 익숙해지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쉬우냐'고 놀라요." 집에 있는 조리도구만으로도 충분히 떡을 해 먹을 수 있다. 물을 팔팔 끓여 수증기를 올려 줘야 떡이 잘 쪄지기 때문에, 깊이 있는 냄비에 삼발이를 놓고 면포만 깔면 충분하다. 옹기로 된 시루는 바로 쓰면 안 되고, 물을 먹인 후 말려서 써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쌀가루의 수분을 시루가 다 먹어버려 떡이 설익는다. 시루에 찔 때는 김이 새지 않도록 주의한다. "떡 할 때는 '김샜다'는 말이 진짜 맞아요. 김새면 떡이 안 돼요."
떡은 기름기가 없기 때문에 설거지가 편하다. 떡 만들 때 쓴 조리도구들은 물에 불려 놓으면 세제 없이도 말끔히 씻어 뒷정리할 수 있다. 같은 양의 쌀로 밥과 떡을 한다고 할 때 떡의 부피가 더 작은 만큼, 적은 양을 먹어도 속이 든든한 것 역시 장점. "예전에는 위장에 탈이 난 사람은 찰떡을 먹었어요. 찹쌀이 위에 오래 머물기 때문에 위장병에 좋다는 거죠." 식혜나 동치미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좋다는 게 채송미 씨의 말이다.
■ 제철 재료 듬뿍 넣어 건강 지켜요
서울에서 경기 광주까지 2시간 반 이상 걸려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떡집에서 콩가루인절미를 반 말이나 한 말씩 맞춰 놓고 먹었다. 남편은 이른 아침 밥맛은 없고 아침과 점심 사이가 길어 배가 고플 때, 찹쌀로 만든 떡이 속을 채워준다고 한다. 저녁에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인절미를 식탁에 내놓으면 아침에 먹기 좋게 말랑말랑해진다. 하지만 매일같이 인절미를 사러 다닐 수도 없고, 냉동실에 오래 두면 딱딱해지고 맛이 없어지며 잡내도 나는 단점이 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떡을 배운다고 했다. 마침 나도 떡 만드는 법을 한번 배워 보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강좌를 찾아봤지만 그곳의 재료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아 고민하던 참이었다. 남편 생일에 두텁떡을 해서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고 자랑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워 친구가 알려 준 한살림요리학교의 떡 강좌를 신청했다. 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떡을 배우기 시작했다. 백설기 만드는 법을 배운 후 백설기에 닭가슴살, 대추, 밤, 샐러리를 올려 떡 샌드위치를 만들어 딸에게 주니 매일 만들어 달라고 노래를 부른다. 가끔 딸들이 배앓이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쑥설기를 만들어 준다. 특히 여자한테 쑥이 좋다는 말을 듣고 쑥 나올 때 많이 사서 삶아 냉동실에 넣어 두고 쓴다. 요즘 많이 나는 상추로도 떡을 만드는데, 아삭한 식감이 색다르고 좋다.
가을에는 대추나 자색호박고구마를, 겨울에는 밤이나 유자 등을 넣고 떡을 하면 집안에 유자향과 대추향이 가득하다. 유자는 감기 예방에, 대추는 불면증에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유자는 곱게 다져서 떡에 넣고, 대추는 2~3시간 고아서 대추고를 만들어 물 대신 떡의 수분을 잡는 데 쓴다. 또 유자차나 대추차를 끓여 떡과 함께 먹은 이후로 거짓말처럼 불면증이 없어졌고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 제철 재료로 떡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챙겨 먹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곧 추석이다. 남들은 송편을 사려고 떡집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겠지만, 우리 집은 송편을 손수 만들려고 추석을 기다린다. 내가 만든 송편은 며칠 두어도 쉬지 않고 쫀득해 온 식구들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맛있게 먹을 것이다.
* 이환나 님은 한살림요리학교에서 떡을 배웠고, 현재는 수업을 보조하며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 간식으로 최고, 모여서 만드는 재미 쏠쏠해
친정식구들도 시집식구들도 떡을 좋아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떡집에 떡을 맡겼다. 빵도 좋아하고 떡도 좋아하는데, 빵을 먹으면 속에 가스도 많이 생기고 살도 더 많이 찌는 듯해 되도록 떡을 사 먹었다. 아이들한테도 방부제나 버터, 설탕 등이 많이 들어간 빵보다 떡이 좋은 것 같아 애용했다.
떡을 자주 사 먹던 중에 한살림성남용인생협 소식지에서 떡 강좌를 선착순으로 신청받는다고 해서 얼른 신청했다. 수업은 총 3회로 이루어졌는데, 재료를 조금씩 달리해서 만들 수 있게끔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만드는 법 또한 간단했다. 첫 번째 강좌를 듣고 집에 와서 아이들 간식으로 쌀가루에 코코아가루를 섞고 마스코바도를 넣어 코코아설기를 해 봤다. 코코아 향이 나면서도 달지 않아 아이들이 잘 먹었다.
강좌는 조별로 이루어졌는데 우리 조에선 떡 만드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 조원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었다. 지난 8월 10일 드디어 떡 동아리 '꿀떡꿀떡'이 첫 모임을 가졌다. 기존 레시피를 토대로 복분자설기와 단호박·당근 설기를 만들었는데, 방앗간에서 물을 많이 넣고 쌀가루를 빻아 줬는지 좀 질어 체에 거르기가 힘들었다. "여름에는 습도가 높아 봄에 배울 때랑 다르구나" 하면서 "이런 시행착오로 배우는구나"라고 서로 웃으며 고비를 넘기고 틀에 넣어 쪄냈다. 색깔과 향은 아주 최상. 하지만 역시 좀 질척하긴 했다.
그래도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이 이야기하면서 떡을 만드니 재미있다. 서로 배울 게 많아 떡을 배우러 왔다가 인생을 배우는 것 같다.
난 주로 간식으로 떡을 먹는다. 복잡한 건 자신이 없고 주로 설기를 만드는데 재료도 집에 있는 것으로, 설탕 대신 꿀이나 청을 넣는다. 쌀가루만 빻아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빵보다 만드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간편하다. 떡 만드는 도구는 따로 없이 둥근 빵틀에 맞춰 쌀가루를 계량해 떡을 만든다. 일반 찜통에 면포를 깔고 쪄도 훌륭한 설기가 나오기 때문에 눈으로, 코로, 입으로 맛있는 떡을 내가 직접 만들어 아이들에게 준다. 제일 중요한 점은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는 것이다.
어제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서 집에 있던 쌀가루로 복분자설기를 한 판 쪄 갔다. 달지 않고 촉촉하니 너무 맛있다고 순식간에 한 판이 다 사라졌다. 간단히 만든 떡이 인기가 좋아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다음 주면 큰아들 생일이다. 큰아들이 자기가 직접 떡케이크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같이 만들기로 했다. 떡 만들기 자체가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이기도 하고, 우리 쌀로 자기가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면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정수연 님은 경기 성남에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아들들을 키우는 주부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귀찮을 때도 있지만 얻는 것이 많기에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쌀 다양하게 활용, 아이들도 만들 수 있어
남편이 아토피 질환으로 불편을 겪고 있던 터에 첫 아이도 아토피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건강한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나는 워낙 먹는 것도 좋아하고 음식 만드는 것도 좋아해서 기왕이면 우리 몸을 튼튼하게 하는 음식을 더 맛나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떡을 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니 바로 했을 때의 신선함이 좋고, 사서 먹을 때와는 다른 쌀의 풍미와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도 사 먹는 떡보다 달지 않고 속도 편하다며 내가 만들어 주는 떡을 더 좋아한다. 내가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는 것은 고구마떡, 콩찰편, 견과류찹쌀떡, 팥시루떡, 쑥절편 등으로 백미보다는 오분도미나 현미를 주로 이용한다. 부모님의 생신 케이크도 떡으로 만드는데, 재료들의 맛과 식감이 살아있는 데다가 정성이 들어가서 다들 좋아하니 내가 더 만족하게 된다. 격식을 갖춘 떡보다는 편안하게 손으로 툭툭 잘라서 나눠 먹는 떡이 왠지 더 좋다.
올해 한살림경기동부생협에서 쌀 소비 촉진을 조합원 주요 활동으로 계획했다. 떡이야말로 쌀을 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조합원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이를 위해 내가 떡 강의를 맡게 됐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신청을 할까 싶었는데 의외의 관심으로 두 달 과정의 떡 만들기 수업을 2기까지 진행했다. 특히 2기 때는 한살림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이 주변에서 전해 들었다며 수업에 참가했다가 조합원이 되기도 해 보람을 느꼈다.
떡을 처음 만들어 보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과연 내가 떡을 만들 수 있을까?' 하다가, "떡 만들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방법을 아니 생각보다 쉽네요", "빵보다 재료도 구하기 쉽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족들에게 수업에서 만든 떡을 가져다주니 아이들은 "맛있으니 계속 만들어 달라"고 하고, 남편은 "부모님 찾아뵐 때 만들어 가자"고 해 "맨날 만들어 달라고 해서 일이 늘었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얻는 가장 좋은 복이 아닐까? 떡은 오랜 세월 우리와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활용되어 왔기에,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떡에 배어 있는 정서와 정겨운 맛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또 많든 적든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어느 장소에나 어울린다. 자연에서 온 맛과 모양을 살려서 만든 떡을 나누어 먹는 뿌듯함과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 박희정 님은 한살림경기동부생협 이사로서, 식생활위원회와 어린이요리교실 등에서 맛있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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