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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 찍는 쉼표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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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 찍는 쉼표의 중요성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여백 있는 삶이 건강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만남을 경험합니다. 공기나 밥처럼 중요하지만 일상적인 만남이 있는가 하면, 상처를 입거나 후회가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때론 존재를 뒤흔들 만큼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사소하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만남은 그 무게만큼 삶의 궤도를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그 결과물로 현재의 내가 존재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몸과 마음의 건강상태 또한 포함되지요.

십수 년 전 우연히 읽은 한 신문기사가(아마도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저에 의해 각색이 되었을 겁니다) 저의 의사로 사는 삶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은 이랬습니다. 앞으로는 독일의 흑림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붉은 지붕의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 한 동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앞 너른 잔디밭에는 저마다의 편안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의자 위나 땅바닥에 담요를 펴고 누워서 마당 가득 떨어지는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눕거나 먼 산을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주치의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진단을 하면, 휴양병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단한 진료를 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물론 독일의 사회 상황은 우리와 다르고 의료제도도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건강과 삶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솔직히 참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도 이런 의료가(물론 이것은 단순히 의료의 영역에서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일상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후로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사회가 변화한 만큼 의료 추세도 변화했습니다. 두드러지는 변화 중 하나가 전국에 많이 들어선 요양병원입니다. 인구의 노령화가 빨리 진행되면서 오랫동안 돌봄이 필요한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의 환자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대가족이나 마을공동체가 해체되어 이런 분들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각 가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요양병원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향은 우리보다 앞서 노령화 사회에 진입한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더라도 앞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영역은 요양이 가진 본래의 의미(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편안한 장소에서 쉬면서 심신을 보살피는 것)에 맞게 잘 만들어 가야겠지요.

정작 아쉬운 부분은 '더 잘살게 되었다'고 하는데도 잘 쉬지 못해서 아픈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정말 며칠 푹 쉬고, 잘 먹고 나면 훨씬 나아질 것 같은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한 시간 정도라도 더 자고 대충 먹지 말고 좋은 음식을 드시라"고 합니다. 정말 지친 분에게는 "2~3일 정도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쉬다 오시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점검해 보면 몸에 변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런 분의 대답은 같습니다. "그러고는 싶은데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분들의 하루 생활을 듣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쉴 만한 여유가 없다고 강요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삶은 저마다의 쳇바퀴를 돌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열심히, 그리고 너무나 충실하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심지어 휴식조차도 너무나 열심히 쉬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이 틀을 조금 벗어나거나 좀 게으르게 돌려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쉴 수 있는 여백과 같은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지금처럼 정말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해서 생기는 병은 많이 줄어 들 것입니다. 그런 병이 줄어들면 당연히 중한 병에 걸릴 확률도 조금은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제 기억 속 독일 휴양병원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휴양의 사전적 의미는 편안히 쉬면서, 지치거나 병든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활력을 되찾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요양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강조하는 바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 사회가 드러난 것을 치료하기 바쁜 수준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치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각자의 몸과 마음에서 건강이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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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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