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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이재현 살려준 대법원, 다시 '고무줄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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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이재현 살려준 대법원, 다시 '고무줄 잣대'

[분석] '엄격한 배임액 확정' 요구는 '면죄부'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심상치 않다. "'관대'→'엄격'→'관대'". 법원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는 신호라는 말이 나온다.

법원은 그간 재벌 총수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최저 형량인 징역 3년과 함께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풀어주는 '3년-5년 공식'이 주로 통했다.

하지만 '경제 민주화' 요구과 함께 분위기가 바뀌었다. 경제 범죄로 실형을 선고 받은 재벌 총수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 2012년 초,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계기였다. 이 회장의 어머니인 고(故) 이선애 씨도 실형을 선고받고 아들과 함께 수감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자원 LIG 회장 등이 줄줄이 구속됐다. 특히 구 회장은 78세 고령이라는 점, 아들인 구본산 전 LIG 대표 이사가 이미 구속 수감돼 있었다는 점 때문에 특히 눈길을 끌었다. 또 허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징역 1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재벌 총수 사건에선 이례적으로 높은 형량이다.

김승연, 이재현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재벌 사건에 다시 관대해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10일 이재현 회장의 일부 유죄 혐의를 파기했다. 법원이 다시 재벌 총수에게 관대해졌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싣는 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김 회장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김 회장에게 적용된 배임죄에 대한 해석에서 대법원은 2심과 다른 입장을 취했던 것. 결국 김 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배임액이 대폭 줄어들었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회장 사건 역시 거의 같은 얼개다. '1·2심 실형→대법원 파기환송'까지는 같다. 대법원이 파기한 대목 역시 일부 '배임죄'로 같다. 대법원이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 건 아니다. 다만 배임죄를 협소하게 적용했다. 이 점 역시 김 회장, 이 회장 모두 마찬가지다.

특경법상 배임 인정하지 않은 이유

배임이란, 누군가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의무를 위반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이익이 넘어가게끔 하는 것이다. 예컨대 회사 경영진이 총수 친척에게 일감을 몰아줬다면, 배임이 될 수 있다. 경영진은 주주의 돈을 대신 관리하는 사람이다. 주주 및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데, 제3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했다. 총수 친척이 아닌 쪽과 거래했다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회사는 손해를 본 셈이고, 결국 주주도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배임이다.


이재현 회장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한 대목은 '일본 부동산 매입' 관련 배임 혐의다. 이 회장은 차명회사인 '팬 재팬(Pan Japan)'을 통해 2007년 일본 도쿄에 빌딩 2곳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CJ일본법인(CJ Japan㈜)은 건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연대보증을 서면서 569억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1심과 2심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특경법) 배임액이 각각 363억 원과 309억 원이 인정된다며, 이 부분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본 부동산 매입 배임에 대해 특경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특경법을 적용하려면 배임금액이 5억 원 이상 돼야 하는데, 이 경우는 배임금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대법원은 '팬 재팬이 50억 엔 상당의 이익을 취득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이익 가액 산정이 구체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결국 대법원은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배임이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이후 열릴 파기환송심에서 이 회장은 배임 혐의에 대해 특경법이 아닌, 형법 기준으로 다시 심리를 받게 됐다. 이렇게 되면, 이 회장은 형량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형법상 배임죄는 특경법상 배임죄보다 처벌이 가볍기 때문이다. 특경법 제3조(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는 최소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지만, 형법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수준으로 형량이 줄어든다. 김승연 회장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회장 역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연합뉴스


"황제 경영 당연한 한국에서 배임죄 처벌 무뎌지면…"

배임죄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앞으로 경제 범죄에 대한 형량을 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이 회장 사건에서 대법원이 배임금액 산정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경영진의 배임으로 인한 회사의 손해 및 제3자의 이익을 완벽하게 계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추정만 가능한데, 이 대목에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특경법상 배임죄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배임죄에 대한 형량이 가벼워진다.

재계에선 오랫동안 배임죄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배임 행위는 윤리적 문제일 뿐이며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재계에서 종종 나왔었다. 재벌 총수 및 경영진 배임 관련 재판에서도 이런 주장은 흔히 나온다. 실제로 배임죄 자체가 없는 나라도 많다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재계 밖에선 지지받지 않는 분위기다. 배임죄가 꼭 필요하며, 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재벌 총수의 황제경영이 당연시 되는 한국 기업 풍토에서 배임죄가 사라진다면, 경영 투명성은 더 악화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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