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돌연 '대표직 재신임 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진 배경은 뭘까. 문 대표는 9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저에 대한 재신임을 당원과 국민들께 묻겠다"면서 "당 안에서 공공연히 당을 흔들고 당을 깨려는 시도가 금도를 넘었다"고 했다. 문 대표가 회견문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흔들기' 공세의 배후에 △비노그룹 △안철수 △정세균계 등 범(汎)주류 일부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등 '뇌관'된 김상곤 혁신위의 공천 혁신안
지난 7일 김상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장이 공천 관련 혁신안을 발표했을 때(☞관련 기사 : 김상곤 "공천 경선, 국민 100%로…정치신인 가산점"), 민감한 내용이 상당히 포함돼 있었지만 예상됐던 당내 비주류의 반발이 즉각 터져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발이 표면화되는 데는 약간의 시차가 있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날 오전 11시경부터 2시간여 동안 열린 새정치연합 당무위원회에서 '김상곤 혁신안'은 통과되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당무위에 혁신안을 상정할 것인지를 놓고 이날 아침 최고위원회에서부터 격론이 오갔다. 비주류에 속한 이종걸 원내대표와 주승용 최고위원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주 최고위원은 최고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많은 논란이 있었고, 논란에 대해 일단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서 당무위에 상정됐다"고 최고위 결과에 불만을 표했다. 주 최고위원은 "(저는) '공천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당무위 상정을 보류하자'고 주장했지만 오늘 가급적 통과시키자는 의견이 많아서 당무위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상정했다"며 "반대 의견이 묵살된 기분"이라고 했다. 단 그는 자신이 최고위에서 표결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원내대표의 경우에는 "이 (혁신)안 자체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기보다, 의원들이 충분히 숙지가 안 돼 있는데 의결을 해 버리면 오히려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오늘 중이라도 시간을 더 갖고 의원들에게 설명하는 기회를 갖자"는 취지로 이날 오전 예정된 당무위 상정을 반대했다고 김성수 당 대변인이 전했다.
그러나 이 원내대표 역시 최고위 표결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당무위에서도 공천 관련 혁신안은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정치 신인 가산점'의 범위와, '공직자의 임기 중 선거 출마 감점'에 대해 일부 조정이 있었을 뿐 내용도 혁신위가 제안한 원안 그대로였다고 한다.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전원은 당연직 당무위원이다.
전날 의원총회에서도 이 원내대표와 주 최고위원은 혁신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고, 비주류에 속한 강창일·정성호 의원도 반대 발언을 했다. 의총장 밖에서도 원외 지역위원장들의 대표인 박정 파주을지역위원장이 "당원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혁신안 개정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원외 지역위원장 일동' 명의로 발표했다.
정세균도 사실상 대표직 사퇴 요구…번지는 갈등
문제는 '김상곤 혁신안'을 계기로 한 문재인 지도부에 대한 공세가 '비주류의 반발' 정도로 치부될 수 있는 선을 넘고 있다는 것. 전날 의원총회나 이날 최고위·당무위에서 혁신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이들 가운데는 범주류에 속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유승희 최고위원과 유인태·설훈 의원 등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수석을 지낸 경력이 있거나(유인태) 고 김근태 의원을 따르는 민평련계 출신으로(유승희·설훈) 성향상 문재인 지도부와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었다.
공격 범위 역시 혁신안에 대한 비판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전날 강창일 의원은 문 대표가 일상 당무만을 맡고, 총·대선 준비는 당내 모든 계파가 참여하는 비대위 성격의 선대위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실제로 이날 최고위와 당무위에서는 혁신안에 대해 비판과 성토가 이어졌음에도, 끝까지 반대하며 표결을 요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이날에는 지난 2.8 전당대회 당시 당권주자 '빅3'로 꼽혔다가 자진사퇴한 정세균 상임고문이 사실상 문 대표의 2선 후퇴를 요구하고 나서 범주류 내의 세력 균열을 시사하기도 했다. 현 지도부 내에서 전병헌·오영식 최고위원과 최재성 총무본부장, 안규백 전략홍보본부장은 정세균계로 분류된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역시 정세균계인 이원욱 의원이 "세월호 ·국정원 사건 때는 풍찬노숙 하며 당원을 부르더니 (총선) 경선에서 권리 행사를 막았다"며 "필요할 때만 당원을 쓰는 제도"라고 혁신안을 비판하기도 했고, 안규백 본부장도 "당원을 무시한 정당은 존재하기 어렵다"며 이에 동조한 바 있다. 강기정 의원도 "지역위원장은 6개월 전에 사퇴를 하는데, 신인에 가산점을 주면 2중 패널티를 받는 셈"이라는 지적을 의원총회에서 했었다.
이런 가운데 정 상임고문이 이날 자신의 입장을 기자회견문 방식으로 밝힌 것. 정 고문은 "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나 절박하고 시간이 없다"며 "문 대표 등 지도부가 야권 전체의 단결과 통합, 혁신의 대전환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대결단을 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촉구했다. 또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연석회의를 제안한다. 우리 당 원로, 3선 이상 중진, 전·현직 지도부, 혁신위가 모두 참여하는 원탁회의를 즉시 소집해 당의 혁신과 통합을 마무리하는 끝장토론으로 당의 진로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그러면서 "천정배·정동영 전 대표 등 당 외에서 우리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주요 인사들도 함께 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우리 당의 귀중한 자산이고 희망인 시도지사들도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며 자신이 직접 이들 인사들과 손학규 전 대표를 만나 '연석회의' 참여를 설득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정 고문은 "2001년 말 우리당이 보여줬던 위기극복과 전화위복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며 "지리멸렬의 순간에 우리는 단결과 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2002년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는 2001년 10.25 보궐선거 패배 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것에 대한 언급이다. 사실상 문 대표의 사퇴를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대표직 재신임, 위기감 느낀 文의 승부수?
정 고문의 '연석회의' 제안은 앞서 강창일 의원 등 당내 비주류 일각에서 제기한 바 있는 '문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한 이후 조기 선대위 체제로 계파연합적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시절 안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문병호 의원도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나와 "혁신위가 혁신위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실패했다"며 "야권 대통합의 최대 걸림돌이 문 대표 체제라고 많이 판단한다. 전체 야권이 통합되기 위해서는 문 대표께서 사퇴하시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고, 비주류 그룹에 속한 몇몇 의원들도 익명 인터뷰에서 이런 주장을 펴왔다.
최근 안철수 전 대표도 연일 문 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낡은 진보의 청산", "육참골단"을 주장한 데 이어, 이날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대로 가면 총선, 대선에서 진다"며 "문 대표 본인이 육참골단이라고 표현했는데,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문 대표를 압박했다. 신당 창당을 내세우며 탈당한 천정배 의원을 만나 "지금의 새정치연합 혁신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낡은 진보 청산 못하면 혁신 안돼" / 안철수 "문재인, 이대로 가면 총·대선 진다" / 안철수·천정배 "새정치 혁신안 가망 없어")
문 대표 입장에서 상황을 종합해 보면, △공천 혁신안이 뇌관이 되어 지도부에 대한 비주류 의원들의 공세가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당내 대권 경쟁자이기도 한 안 전 대표가 직접 자신과 혁신위에 대한 비판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범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정 상임고문까지 자신에 대해 칼을 빼든 상황이 되자 위기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문 대표의 대표직 재신임 투표 선언에는, 이날 이상으로 큰 진통이 예상되는 오는 16일의 당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중앙위원들에게 혁신안 통과를 압박하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무위는 대표가 임명하는 임명직 당직자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날 만장일치 통과가 이뤄질 수 있었지만, 중앙위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새정치연합 당헌에 따르면, 당 소속 국회의원·지역위원장·기초단체장 전원과 상임고문·고문 전원이 당연직 중앙위원이다.
이날 당무위에서 문 대표가 공천 혁신안에 대해 "대표의 공천권을 내려놓는 공천 혁신안"이라고 강조하며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축소하고 여성·청년·정치신인들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는 점을 부각한 것도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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