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7일 회동을 통해 8일 정기국회 본회의를 열어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과 2014년 결산안을 처리키로 합의하면서 이런 내용을 합의문에 포함했다. 논란이 된 문구는 "여야의 중점 법안인 국제의료사업지원법, 관광진흥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상법, 대리점거래공정화법,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법 등은 논의해 합의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국제의료법)은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를 허용하고 유치 업자에게 각종 특혜를 주는 내용을, 관광진흥법은 학교 앞에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은 의료 산업 등을 '공공 정책'이 아닌 '산업 정책'으로 접근하게끔 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의료 등 규제 완화의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이다. 이른바 '의료 관련 규제 완화법'이다.
시민 단체는 국제의료법과 서비스법은 '의료 영리화법'이라고 규정하고 반대해왔고, 관광진흥법은 대한항공 등 특정 기업에 호텔 건립 규제를 풀어주는 이른바 '조현아법'이라고 반발해왔다. (☞관련 기사 : 박근혜 담화, 정진엽 내정자와 만나면?)
특히 해외 환자 유치 활동 등 영리 활동의 제약을 풀어주는 국제의료법과 의료 산업 규제와 관련해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시켜주는 서비스법이 만나면 정부의 의지에 따라 의료 민영화가 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들은 꾸준히 제기됐다.
새정치연합이 '경제 민주화 3법'을 논의할 계기를 얻는 대신, 새누리당 측에는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 등을 통해 "조속한 통과"를 강조해온 '경제 활성화 3법'을 합의할 기회를 내준 셈이다. (☞관련 기사 : [전문] 朴 대통령 "노동 개혁 강력 추진")
앞서 지난 3월 17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문재인 대표의 3자 회동에서 문 대표 측은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하고 서비스산업발전법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법은 '의료'라는 단어를 빼는 대신 서비스 산업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표가 합의해왔다는 '서비스법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빼고 처리한다'는 것도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은 "이 법안에는 의료, 영리화 등의 말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이 법이 처리된 후 서비스 산업 발전 계획 수립의 권한을 확보한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보건 의료 분야를 서비스 산업으로 분류하면 그만이다. 이러한 모호한 조항 때문에 서비스법은 "행정 입법에 대한 포괄적 위임 금지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당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야당이 관련 법안을 덜컥 내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비스법은 의료 분야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공공 부문을 '산업'으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공공 부문 민영화'의 우려도 제기된다. 야당이 '경제 활성화 3법' 처리를 대신 받아냈다고 하더라도, 서비스법은 맞바꿀 수 있는 성격의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야가 대표적인 법안 3개를 뽑았고, 야당은 '경제 민주화'법 3개를 뽑아서 합의되는 범위 내에 처리하자고 합의했기 때문에 당장 8일 본회의 처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야가 서로의 중점 법안에 이견이 큰 만큼 당장 합의하기는 어렵겠지만,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여당은 합의 직후 야당에 국제의료법, 서비스법 등의 처리를 압박하고 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4일 본회의 직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노동 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 법안, 그리고 관광진흥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이 야당에 계속 협조를 요청하는 경제 활성화법안인데, 이 법안도 합의문에 담겨서 이번 정기국회 때 처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정기 국회의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침에 여는 당 지도부 회의 이슈도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다. 지난주엔 '방송 장악'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꼼수'를 비판하더니, 전날에는 '돌고래호 이슈'를 쟁점화했다. 청와대와 한몸이 돼 한결같이 '노동 시장 개편'을 언급하고 있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전략'과도 극명히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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