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혐의를 놓고서 공개적으로 "의도적 베껴쓰기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발언을 두고, 문학계와 독자들이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진보 문단의 상징과도 같은 원로의 이런 인식을 두고서 문학계의 여럿은 '한국 문학계가 자정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한탄했다.
백낙청 교수는 1966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창비와 '민족 문학'으로 불렸던 진보 문단의 상징이다. 그는 이번 사태의 핵심 출판사로 떠오른 출판사 창비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곰치 씨는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백 교수를 정면 비판했다.
김 씨는 "(백낙청 교수가) <외딴방>을 섬세하게 읽었던 것처럼 단편 '전설'과 '우국'도 섬세하게 읽었다면, 그의 페이스북 글(백 교수가 표절이 아니라고 밝힌 글)은 달라졌으리라"고 가정하며 현 상황을 "백낙청의 위기"로 규정했다.
김 씨는 "(이번 일은) 한국 문학 이론으로서 그(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의 파산"이라며 "백낙청은 '신경숙이 파렴치한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신 씨의 표절은) 작가의 정신상태가 일찌감치 이상했다는 것이고 (그런) 그를 옹호하는 백낙청과 창비의 지금 정신상태 (역시)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김 씨는 "어쩌면 이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며 "(백 교수가 민족문학론) 파산의 위기를 1990년대에 이미 느꼈기 때문에 (민족문학론과 무관한) 신경숙의 <외딴방>을 그렇게 고평한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김 씨는 "(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은) 문학 이론의 성채를 같이 구성하기는 하여도 창작 작품을 산출해내지 못"했다며 "이제는 백낙청이 펼쳐온 문학 이론이 문학이라는 것의 본성과 꽤나 떨어진 것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김명인 인하대학교 교수도 28일 "그는 이미 너무 멀리 가 버렸고 나는 너무 오래 이곳에 그대로 있었던 모양"이라며 "그에게로 뻗었던 팔이 너무 스사로워 이제 팔도 눈길도 거두고자 한다. 안녕, 잘 가시게"라고 대상을 명시하지 않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뒤이어 연달아 "백 선생님, 당신이 요구한 비판자의 성찰이 여기 있습니다"라는 글을 여럿 올려 해당 글이 백 교수를 향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오길영 충남대학교 교수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한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글을 되풀이 볼수록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손종업 선문대학교 교수는 29일 백 교수의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표현을 두고 "이건 정치적인 수식"이라며 "문학에는 오로지 표절이냐 아니냐만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경숙에 열광한 순간 한국 문학은 위기에 처했다며 백 교수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한국 사회를 전반적으로 돌아봐야 할 때라며 한국 문학에 대한 환멸감을 밝혔다. 이어 "창비도, 그리고 신경숙도 그 유폐된 과거와 결별했어야 했다"며 "표절에 대한 속죄가 아니라 무의미 속으로 한국 문학을 잘못 끌고 간 죄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