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다고요? 지금이 뭐 조선시대냐고요? 참 유별나다고요? 병원에서 분만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가정 출산을 선택한 다섯 여자와 자연 출산을 준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한 여자의 진솔하고 뜨거운 출산 경험담이 전라도 광주에서 펼쳐졌습니다. 그녀들은 왜 집에서 아이 낳을 생각을 했을까요?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 엄마와 아기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함께한 사람들(광주 <민들레> 독자모임)
곽근영 : 첫째는 병원에서, 7년 뒤 둘째는 집에서 낳으며 생생한 비교체험을 했다.
남옥인 : 첫째는 병원에서 낳고, 그로부터 9년 뒤 마흔 살에 둘째는 집에서 낳았다.
정미경 : 남편과 단둘이서 가정출산을 계획하고 실행했지만 실패했다.
정 선 : 첫째와 둘째는 조산원에서, 셋째는 안방에서 촛불 두 개 밝혀놓고 평화롭게 낳았다.
정진숙 : 병원에서 첫째를 낳으며 의료사고를 경험하고, 둘째는 남편도 없이 집에서 낳았다.
정현아 : "노산이라 위험하다"는 의사 말에 자신감 상실, 병원에서 첫째를 낳다가 핏줄이 터져 보랏빛 헐크가 된 아이를 만났다. 집에서 둘째를 낳은 날을 생각하면, '밝음'이 연상된다고.
우리가 경험한 병원 출산
정 선 : 어렸을 때 개를 키우면서 새끼 낳는 걸 몇 번 봤는데, 너무 멀쩡했다. '나는 엄마가 집에서 잘 낳았는데 왜 병원을 가야 하지? 개도 집에서 잘만 낳는데….'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동생들은 병원에서 낳았는데, 무조건 촉진제 주사를 놨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애 낳는데 주사를? 그리고 애를 받는 의사는 대부분 남자들인데, 애를 낳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잘할 수 있을까?' 계속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진숙 : 첫째를 병원에서 낳았다.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회음부 절개도 안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의사가 웃더라. 막상 출산일에는 담당의사가 없어서(요즘 병원의 문제는 진료한 사람이 출산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의사의 마지막 권유에 무통주사를 맞았다. 척추에 주사를 놓다가 마취사가 실수해서 척수가 흘렀다. 그때는 의학지식이 없어서 그 심각성을 몰랐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무통주사를 맞고 잠을 잤는지, 기절을 했는지, 구토를 하고 누웠다고 하더라.
남옥인 : 요즘 병원은 애 낳는 순간만 도와주고 진통 과정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정진숙 : 수술실로 데려가더니, 의사가 주먹만 한 솜을 몇십 개나 집어넣었다. '아프다'고 해도 '원래 그렇다'면서 그대로 누워 있게 했다.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다. 사람을 계속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의사가 "애 낳다가 죽은 사람 있다는 말, 못 들었어요? 지금 그 문 앞까지 갔다 왔어요"라고 하는데, 공포였다. 일어나 앉으면 머리가 눌리는 느낌이 들어서 화장실 가기도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척수가 흘러서 그랬던 건데 너무 아파서 우니까 그제야 의사와 간호사가 이유를 말해주더라. 분노심과 우울감 때문에 날마다 눈물로 보냈다. 누구 하나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장 선 : 임신하고 산부인과에 갔더니 "다음 달에 오시면 기형아 검사합니다"라고 해서 "안 할 건데요"라고 하니까, 의사가 "이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라고 하더라. 그 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다. 의사의 모멸감 어린 시선이 너무 불쾌했다. '너희들은 우리 도움 없이는 애를 낳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후 산부인과에서 진행하는 여러 검사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 돌아보면 그 의사가 커다란 동기부여를 해줬다.(웃음)
정미경 : 엄마가 자녀 다섯 명을 다 집에서 낳았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친정 부모도 가정출산 계획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초산인 우리 부부가 조산사 없이 둘이서 애를 낳겠다는 생각과 실행은 조금은 무모했다. 미리 준비하고 공부를 했지만, 책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졸음과 싸우며 48시간 동안 진통을 했는데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 걱정이 됐다. 결국 병원에 갔다. 힘을 빼며 연습했던 것과 정반대로 목에 핏대가 터지도록 힘을 주며 아이를 낳았다. 퇴원 후 회음부 통증으로 다시 병원에 갔더니 고름이 가득 차 있었고, 결국 항생제 치료를 받았다. 출산 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 들었고 나뿐만 아니라 아이와 남편까지 고통에 신음해야 했다. 아마 조사를 해보면 출산 후에 갖가지 의료사고와 후유증에 시달리는 산모들이 많을 것이다.
정현아 : 첫째 때는 생체실험 인간처럼 온갖 선에 연결돼 누운 채 2분마다 찾아오는 '고통의 쓰나미'를 부동자세로 견디는 형벌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몇십 분 간격으로 "상황이 별로 안 좋다. 조금만 더 지켜보고 정상이 되지 않으면 수술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 병원의 유명한 '삼신 할매'라는 간호사가 내 배 위에 올라가 힘껏 눌렀고, 간호사의 구령에 끌려다니다 결국 이마부터 가슴까지 실핏줄이 터져 보랏빛 헐크가 된 채로 첫 아이를 만났다.
곽근영 : 첫째를 낳을 때는 무통주사를 맞아서 아이가 나오는 느낌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힘을 못 준다고 구박하니, 스스로 무기력한 존재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출산하고 나서 출혈이 심해 두 번 실신했고, 한 달 동안 회음부 방석 없이는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신랑이 실신하는 날 보면서 '애 낳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한 달 동안 혼자 화장실도 못 가고 정말 고통스러웠다.
정현아 :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러 간 병원에서 심장 박동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는 '을'이 돼서 병원에서 안내하는 모든 검사와 주의사항과 만약의 사태에 결박돼 버린다. 또 출산교실에 가서도 '두려운 출산' 목록을 쓰지 않나. 만약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배웠다면, 첫 번째 출산도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했을 것이다. 두려움을 부추기는 출산 문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정진숙 : 조산사의 존재를 안 뒤, 신랑을 설득했다. 첫째를 낳으며 병원에서 겪었던 고통을 지켜봤기 때문에 쉽게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 혼자서 인터넷 검색도 하고 여기저기 물어보더니, 안전에 대한 확신이 들었는지 동의했다. 요즘에는 자연 출산에 대한 카페나 블로그도 많이 있어서 그런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애를 낳는 게 질병은 아니지 않은가. 출산은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애를 낳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연 출산의 두려움과 기쁨
곽근영 : 둘째를 임신하고 <민들레>를 보는데 가정출산을 한 엄마가 쓴 '아이 낳기, 어른 되기'가 있었다. "우리 아이가 스스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말이 마음에 닿았다. 그래서 둘째는 집에서 낳기로 했다. 16시간을 진통하면서 너무 힘들어 병원에 가고 싶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가정출산을 반대했던 신랑에게 창피해서 차마 그 소리는 못했다. 그런데 출산하고 나니, 평소 생활하던 안방에서 진통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고 목욕을 시키는 과정이 참 평화로웠다. 나도 아기도 이동할 일이 없으니까 심신의 안정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친정 엄마가 '애 낳은 사람 같지 않다'고 할 만큼 혈색도 좋고 붓기도 없었다. (☞바로 가기 : 아이 낳기, 어른 되기)
정진숙 : 맞다. 집에서 낳을 때는 진통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너무 편했다. 가정 분만 한 사람들 다큐멘터리를 다섯 번 이상 보면서 준비한 덕도 크다. 자고 있던 첫째가 깼는데, 조산사가 "엄마가 동생을 낳고 있다"고 설명하니까 다시 잠들기도 했다. 지금도 집에서 아기를 낳던 자리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첫아이 때의 의료사고 때문에 허리가 불편해서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드나든다.
남옥인 : 둘째를 집에서 낳을 때 자궁이 열리지 않아 유도분만을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조산사가 링거를 빼고 아이랑 함께 오롯이 진통을 느끼게 해줬다. 숨을 참고 힘을 강하게 주려고 하는데, "엄마는 숨만 쉬어요. 아이가 죽을 힘을 다해 세상으로 나오고 있으니 엄마는 산소만 공급해주면 돼요. 힘 안 줘도 아이가 다 알아서 나와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아, 내가 낳는 것이 아니고 아이 스스로 나오는 거구나!'라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첫째 출산 당시 병원에서 간호사가 내 배를 눌러 아이를 빼내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경험이었다.
정현아 : 둘째를 낳으면서 '나와 아이가 하나의 힘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꼈다. 남편도 자연 출산 과정에서 조산사가 보여준 따뜻함과 부드러움, 흔들림 없는 편안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첫 아이는 세상이 아기를 억지로 빼낸 것 같았는데, 둘째는 스스로의 힘으로 힘껏 밀어붙이고 다시 들어갔다가 더 큰 힘으로 밀어붙이며 세상으로 나오더라"고 말했다. 막 나온 아이를 품에 안고 "네가 그렇게 힘이 센 그 아이냐? 이 조그만 머리로 그렇게 밀어붙인 것이냐? 너 정말 대단하구나"하고 말해줬다. 그런 아이와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남옥인 : 출산은 두렵거나 무서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인데, 오늘날에는 두려움과 고통의 상징이 됐다. 배 속에 새 생명을 가진 후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출산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했고, 그 방법이 가정 출산이었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조산사가 아기를 배 위에 올려주고 한참 뒤에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남편이 받아온 따뜻한 물에 아기를 넣었을 때 큰애가 들어와서는 "맑음아(태명), 오빠야!"라고 하니까, 갓 태어난 아기가 소리 나는 쪽을 쳐다봤다. 그렇게 평화롭게 아이를 우리 가족으로 맞이한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이다. 둘째를 낳는 날, 남편은 19층 계단까지 스무 번을 같이 오르내리고, 내 손을 잡고 같이 호흡하면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오롯이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큰애 때는 조리원에 누워 야구 경기 보던 사람이었는데, 둘째 때는 뭐든 해주고 싶어 하고, 나를 더 조심스레 대해주는 게 느껴졌다. 둘째가 태어난 날, 둘이 가슴이 벅차 잠도 못 이룬 채 새벽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곽근영 : 안방에서 진통할 때 시어머니가 큰애와 거실에 계셨는데, 염불을 외우며 부들부들 떠셨다고 하더라. 마지막에 내가 소리를 하도 많이 질러서 그러셨을 거다. 나중에 시어머니가 "네가 그렇게 독한 애인지 몰랐다"고 하셨다.(웃음) 남편은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한다. 아기가 나오기 직전에야 조산사가 왔는데, 그때까지 혼자 내 옆에 있느라 무척 무섭고 떨렸을 거다. 좀 전에 두 아이를 남편한테 맡기고 나왔는데, 자연 출산 얘기를 하러 간다니까 남편이 "집에서 낳아서 살이 많이 빠졌다고 말해"라고 하면서 웃었다. 육아 1년 만에 10킬로그램(kg)이 빠졌다. 가정 분만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웃음)
정 선 : 물론, 정말 병원을 가야 할 산모도 있다. 나 역시 행여나 있을지 모를 사고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요즘엔 차를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병원이 주위에 많다. 노련한 산파라면 병원을 갈지 말지, 상황 판단도 금방 할 수 있다.
자연 출산에서 시작된 자연스러운 육아
곽근영 : 자연 출산을 하고 나니, 아이가 태어난 과정처럼 태어난 후에도 스스로 할 수 있게 기다리려고 노력하게 된다. 첫째 때는 많이 놀아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인 내가 놀이를 주도했다. 그런데 둘째는 아기가 스스로 세상을 탐색하고 모험할 수 있도록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가끔 조마조마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있는데, 놀랍게도 아기는 스스로의 힘으로 과제를 해결한다. 아이에게 놀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주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엄마의 역할 아닐까?
남옥인 : 집에서 낳았어도 당연히 아기니까 울고 보채고 하는데,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그런 과정을 겪는 내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롭다는 것이다. 아이가 한 번에 두세 시간씩 젖을 물고 있어도 그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정 선 : 세 아이 모두 태어나서 한두 번 '응애' 거리고는 이내 젖을 물고 편안하게 지상 생활에 스며들었다. 아플 때 어지간해서 약을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겨낸 면역력 때문인지, 아이 내면의 힘이 있어서인지, 세 아이 모두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뭔가를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 태어날 때부터 외부의 간섭 없이 제때 자기 힘으로 태어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나도 집에서 태어났는데,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태어났다는 것에, 마음 깊숙이 자부심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정진숙 : 새 식구를 다른 사람(신생아실)에 맡겼다가 데려오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서로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졌다는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 태어난 첫날부터 온 가족이 아이의 움직임이나 눈 깜빡임, 울음소리를 같이 지켜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함께 찾는다. 이제 5개월이 됐는데, 아기의 움직임을 보고 엄마, 아빠, 형이 의견을 하나씩 모으면 그 안에 답이 있다. 이젠 누가 먼저 알아채는지 시합을 할 정도다.
정미경 : 자연 출산이 자연스러운 육아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초보 엄마라서 모든 게 서툴지만, 이 역시 자연스러움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가 자라는 과정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요즘 아이가 자주 넘어져 머리를 '꽝'하고 부딪치지만, 바닥에 매트를 깔지 않는다. 매트가 없기 때문에 아이는 더 조심하고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정 선 : 자연 출산을 통해서 의술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만남이란 걸 배우게 됐다. 출산은 아기의 긴 인생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다. 태어나는 건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엄마와 아이의 삶과 건강을 평생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곽근영 : 가정 출산을 하면서 내가 마음먹은 것을 실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 용기를 얻어서 기뻤다. 주변에서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냐? 돈이 없느냐? 뭘 그렇게 유별스럽게 구느냐? 네 나이가 마흔 살 아니냐?"라며 별별 말을 다 들었다. 그러나 가정 출산은 내 40대 인생의 첫 도전이었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생기고 삶에 용기를 부여해준 사건이다.
정 선 : 우리 사회는 '고통이나 갈등은 나쁜 것'이라는 관념이 은연중에 강요되는 것 같다. 고통을 겪어야 성숙해지고, 출산처럼 소중하고 의미 있는 고통도 있는데 '아프면 안 돼, 상처 입으면 안 돼!'라고 사전에 차단하는 분위기가 있다. 출산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이득을 보는 집단이 어디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곽근영 : 조산소에서 첫째를 낳다가 2박 3일 동안 너무 고생해서 둘째는 병원을 선택한 언니가 있다. 가정 출산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병원 출산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병원 말고도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첫째 아이가 발도르프 학교에 다니는데, 주변 반응이 가정 출산을 선택할 때와 매우 흡사했다. '평범하고 편안한 길이 있는데, 왜 남다르게 좁은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거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관습적으로 따라 하면서, 암묵적으로 강요된 사회적 시선에 맞춰 사는 게 과연 행복할까? 나와 내 아이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 출산에 도움이 되는 책들
- <평화로운출산, 히프노버딩> 메리 몽간 지음, 정환욱·심정섭 옮김, 샨티 펴냄.
- <폭력 없는 탄생> 프레드릭 르봐이예 지음, 하윤기 옮김, 예영커뮤니케이션 펴냄.
- <자연주의 출산 보고서>, SBS스페셜 제작팀·신정현 지음, 마더북스 펴냄.
- <황홀한 출산>, 엘리자베스 데이비스 외 지음, 김우종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 <두려움 없이 엄마되기>, 신순화 지음, 민들레 펴냄.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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