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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북한 인권의 파수꾼이나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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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북한 인권의 파수꾼이나 되라고?

"사회경제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 존재하는 게 옳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정권인수위가 왜 조직개편하는지에 대한 의도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서한을 보내왔다" (1월 21일 한나라당 부대변인 박태우)
  
  한나라당이 말하는 그 '의도'의 숨은 뜻은 이렇다. 인권위가 "정권의 시녀 노릇"을 충실하게 해왔고, "친북노선을 성실하게 따라온 죄과가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꿈꾸는 인권위는 "더 크게는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이라 한다. 그러니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서한이야말로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내용'밖에 담지 못하고 만 것이다.
  
  '정치적 균형'을 맞춰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라고?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색깔론이 횡횡한다. 아직도 지난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몰아세운다. 좌파정권이 대연정을 얘기하고, 한미FTA를 추진했단다. 도대체 좌와 우의 기준이 무엇인지 여전히 국가보안법 식의 흑백논리가 판을 친다. 당선자가 말하는 '실용'은 어디로 갔나? 우리 사회가 87년 이전 체제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다.
  
  냉전적 극우적 세계관을 숨긴 채로 홍보만은 '실용'이다. 인수위의 박형준 위원은 인권위가 대통령 직속기구가 되더라도 "업무나 기능면에서는 어떠한 간섭이나 규제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치적 균형'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독립을 얘기하면서도 '정치적 균형'을 얘기하는 것은 완벽한 모순이다. 우리의 인권위가 북한 인권의 주무부서가 돼야 한다는 한나라당 대변인실의 논평 또한 모순이다.
  
  우리의 경제관련 부서가 북한 경제의 주무부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인권이라는 보편적 관점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요구는 어이없는 주장이다. 북한의 변화를 인권에 대한 비판과 지적만으로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권과 시장경제와 개혁개방과 정치체제에 대한 전략적 변화를 끌어내는 길만이 북한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고 통일의 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통일부 폐지와 인권위의 위상 변화에서 드러나듯 차기 정부의 국정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더 이상 숨기기 어렵다.
  
  인권위에게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을 주문해왔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필자도 국정감사에서 차분한 관심과 대응을 주문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인권위는 2004년에는 '북한인권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고, 2005년에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탈북자 인권 의식 조사 연구를 한적도 있다. 나아가 우리 정부는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서는 2006년 11월 17일, 이미 찬성표까지 던졌다. 그런데 한나라당 성명은 인권위가 "유엔에 상정된 대북인권결의안에 우리 정부가 기권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도록 방관"했다는 것이다.
  
  더이상 북한인권에 대한 '창피주기식 접근(naming and shaming strategy)'은 옳지 않다(서보혁,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판단기준과 한국의 선택 참조). 북한정부가 인권개선에 나설 수 있는 국제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고, 인권개선 방법을 알려주고, 필요한 협력에 나서는 것이 적당하다.
  
  물론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와 조화를 이루며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군사적 적대적 지속관계와 핵개발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북한인권 개선을 어렵게 하는 것쯤은 누구나 알지 않는가?
  
  오로지 기준은 '인권감수성'이어야
  
  소유의 자유에서 정치적 자유로, 다시 사회경제적 자유로라는 인권의 역사적 변천과정은 인권위의 독립성과 임무에 대한 중요한 시사다. 그래서 인권위의 업무는 갈수록 막중해지고 시대에 따라 변화될 수밖에 없다. 좀 더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국가의 존재 목적은 기본적 인권보장에 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이어지는 통치구조 또한 오로지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침해의 최전방에서, 오로지 '인권감수성'을 기준으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내기 위해서는 인권위의 독립성은 생명이다. 임무의 독자성, 기구의 독립성은 인권위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인권위를 스스로 신뢰하지 않는다. 스스로 정치적 균형이라는 인권과는 도저히 거리가 먼 목표달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북한 인권을 지적하는 스피커 노릇을 주문한다.
  
  통치로 표현되는 거버먼트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정부권력은 이미 사회 각 분야로 다운사이징되고 있고 시민사회와 거버넌스, 이른바 협치의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다. 지금 인수위가 생각하는 권력의 운용방식은 역순이다. 다시 권력의 집중을 요구한다. 그래서 인권위마저도 그 독립성을 침해한 채 대통령 직속으로 가져다 놓으려 한다.
  
  시장경제를 얘기하면서도, 탈규제를 얘기하면서도 국가가 금융정책과 산업정책과 인권정책마저도 독점하려 든다. 국가만능주의 사상, 국가기획경제 사상, 국가 유일주의 사상으로의 회귀이다. 시장의 강화와 국가의 강화는 분명 모순된다. 국가의 강화는 복지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도리어 대통령의 권한 집중과 강화를 통해 국가의 강화를 꾀하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회경제적 차별을 상기해보자. 그 차별에 대한 반발이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인권위에 대한 새로운 임무조정은 독립성을 기반으로 실용적 입장에서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기본권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옳았다.
  
  출산 걱정, 보육 걱정, 사교육 걱정, 일자리 걱정, 내집 마련 걱정, 의료비 걱정, 노후 걱정으로 대표되는 삶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는 데 인권위의 기능을 자리매김하고 위상을 강화시켜야 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임무를 '북한인권 감시기관'으로 재조정하려는 인수위와 한나라당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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