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가 신경숙 씨의 표절 의혹을 사실상 반박하는 공식 입장을 다시 밝힘에 따라 문학계가 극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창비는 백영서 편집주간이 쓴 <창작과비평>(2015년 가을호)의 머리글에서 신 씨의 글이 "'문자적 유사성'은 있으나 베껴 쓰기는 아니"라고 밝혔다. 또 윤지관 덕성여자대학교의 글을 통해서 표절 혐의를 받고 있는 '전설'을 놓고서 "작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사례로 치켜세웠다. (☞관련 기사 : 창비 묵언 끝에 신경숙 편들기…"베껴쓰기 아니다")
오길영 교수 "창비 '이 정도 표절은 봐주세요' 뜻 보인 것"
문학평론가 오길영 충남대학교 교수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한마디로 최초 발표된 창비 문학편집부 해명의 반복"이라며 큰 실망감을 표시했다.
오 교수는 "신 씨의 작품은 단지 '문자적 유사성'에 그친 게 아니다. '베껴 쓰기'고 표절"이라며 "(신 씨가) 의도했든 안했든 표절은 표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작품이 독자에게 읽히는 것, 말하는 것, 표현하는 것의 객관적 결과만이 중요하다"며 "창비 정도의 문학 계간지가 문학 비평의 상식조차 모르쇠 하면서 치졸한 변명을 되풀이하는 게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오 교수는 창비가 스스로를 지나치게 중요하고 선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입장까지 제기했다. 그는 "창비는 여전히 자신이 '창조와 저항의 거점'이라고 자임한다. (…) 자임한다고 거점이 되는 게 아니다. 언제부턴가 창비는 자화자찬의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의 태도도 그렇다"고 비판했다. 이어 "섣부른 자임, 더 강하게 표현하면 '자뻑'의 모습은 창비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군사 독재 시절 창비의 역할을 인정한다면서도 "과거의 그런 업적을 인정하는 것과 어느 시점 이후부터, 그리고 지금 창비가 보이는 행태에 대한 비판은 별개 문제"라며 "뼈아픈 자기성찰이 없을 때 그 개인이나 조직은 굳어지고, 생명력을 잃는다. 변명과 해명으로 일관된 권두언을 보며 창비에게 그런 자기 성찰력이 실종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창작과비평>이 '문학 권력' 논란에 대해 밝힌 방어적 태도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창작과비평>은 "공공성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며 '문학 권력' 논쟁에 답했다.
오 교수는 이에 대해 "창비에 대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실망감은 물적 기반과 '상업주의' 사이의 줄타기에서 창비가 후자로 기울었다는 의심에서 나온다"며 "신 씨에 대한 창비의 이해할 수 없는 옹호도 그로부터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입장은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렇게 번 돈으로 좋은 일도 하니까, 이 정도 표절은 좀 봐주세요'라는 뜻으로 읽힌다"고 비꼬았다.
오 교수는 "창비는 변할 뜻이 없어 보인다"며 "창비의 실망스러운 입장 표명을 보며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새로운 실험을 하는' 모색이 필요하다는 느낌은 명확히 든다. 한때는 한국 문학의 '창조와 저항의 거점' 역할을 했던 창비의 일그러진 모습을 확인"했다고 개탄했다.
김명인 "나라면 <창작과비평> 폐간했을 것"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학교 교수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입장 발표를 통해 창비가 '버티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밝혔다.
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이번 <창작과비평> 머리글을 두고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강일우 사장 명의의 두 번째 발언보다 오히려 퇴보한 입장"이라고 촌평하고 "결국 창비는 시간 벌기 혹은 버티기를 기본 전술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교수는 창비가 '긴급 기획'으로 게재한 3편의 글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창비는 신 씨의 표절 논란 이후 문화연대가 두 차례 실시한 토론회에 나온 문학평론가 정은경, 김대성 씨의 글을 실었다. 그에 더해 작가회의 등의 게시판에 연달아 신 씨 옹호 입장을 밝힌 윤지관 교수의 글을 옹호론으로 추가했다. 창비는 그간 외부 토론회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에 거부 의사를 밝혔었다.
김 교수는 "(3편의 글을 실은) 이번 창비의 대응은 불성실하기 짝이 없다. 지난 6월 중순 이후 두 달이 넘었건만 이 정도의 기획이 그 동안의 침묵의 결과물이라면 그것은 나태와 무기력이 아니면 의도적인 해태, 시간 벌기, 버티기 전술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며 "왜 이번 권두언에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던 약속조차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것일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그는 자신의 창비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즉각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통절한 사과의 뜻을 표하는 한편, 잡지 <창작과비평>의 정간이나 폐간, 아니면 적어도 편집 기획 체제의 전면적 개편과 더불어 창비 출판 구조와 관행에 대한 전면적 검토를 선언하고 장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지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내가 만일 창비의 편집위원이었다면, 나는 우선 전체 편집위원의 총사퇴를 주장했을 것이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나 혼자라도 창비 편집위원직을 내놓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창비 편집위원들이 "(창비) 편집부 직원들만큼의 문제의식도 없다"고 분노를 표했다. 신 씨의 표절 사태 직후 창비가 처음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자, 창비의 직원 일부는 익명 계정으로 트위터 등에 "회사가 부끄럽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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