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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나면 다 죽는다. 그들만 빼고…

[서리풀 논평] 전쟁의 질병, 평화의 건강

전쟁의 질병, 평화의 건강

이 글을 쓰는 이 시각까지, 아슬아슬한 평화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남북이 마주 앉았고 토요일 시작한 협상은 길게 끌었다. 일요일 오후에 다시 회담을 해봐야 알 수 있다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만해도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또 희망한다.

문제는 이번 일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봐도 지금 한반도는 평화 체제가 정착되기는커녕 갈등과 긴장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서리풀 논평'이 전쟁을 걱정했던 때가 불과 2년 몇 개월 전(2013년 4월 8일)이다. (☞관련 기사 : 전쟁과 평화 그리고 건강) 북한이 남북 불가침 합의를 폐기한다고 선언하고 개성공단의 가동이 중단된 때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안 없이 대결과 적대 구도로 복귀한 탓이 크다. 퍼주기니 뭐니 하면서 대북 정책을 뒤집었지만, 어떤 정책으로 무엇을 이루었는가 생각하면 답답하다. 기조가 이러니 이번 위기를 어떻게 봉합한다 해도 곧장 평화가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전 협정 체제로 복귀한 셈이니 앞으로도 얼마나 자주 불안과 안도를 반복해야 할까.

전쟁과 평화가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두가 안다. 주가 폭락이 대변하듯, 전쟁의 작은 조짐만으로도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다. 위기가 아닌 실제 전쟁의 참혹한 결과는 삶의 극단, 즉 죽음으로 나타난다. '현실'을 실감하기 위해 바로 그때 '서리풀 논평'의 내용을 다시 옮긴다.

한국 전쟁 때 남북한을 합친 한국인의 인명 손상은 520만 명이 넘는다. 2010년의 총사망자 수가 25만 명을 조금 넘으니, 한국 전쟁은 20년을 모은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최근 전쟁도 마찬가지다.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이라크 전쟁 때문에 2만5000명 이상의 어린이가 숨졌다. 유니세프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적으로 200만 명의 어린이가 전쟁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예상되는 재앙은 분명한데도,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굴절되고 왜곡된다. 몇 십만, 몇 백만이라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집합'은 사실이긴 하지만 고통을 추상화시킨다. 개인과 가족이 겪는 아픔과 고통은 숫자로 환원된 채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를 위해 소모되기 일쑤다.

전쟁(그리고 그를 둘러싼 정치)이 점점 더 미디어에 의존하는 것도 현실과 현실감을 박탈한다. 남북의 전쟁 위기를 '중계'하고 '확성'하는 텔레비전과 신문(특히 종합 편성 채널(종편)과 극우 논조의 신문)을 보라.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면서 위기를 더 키운다. 장 보드리야르가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지만, 우리가 보고 듣고 이해하는 그런 남북의 위기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다면 본 모습이 무엇인가.

누가 전쟁을 말하는가에 이르면 가상 현실이 따로 없다. 전쟁의 현실에 가장 둔감한 집단이 전쟁을 부추긴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도(!) 국가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전쟁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위기에도 머리털 한 올 다치지 않을 사람들이 전쟁 불사를 외치는 풍경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며, 그러면서도 사람을 차별한다. 먼저, 현대의 전쟁에서는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 사망자가 더 많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쟁 사망자의 85〜90%가 비전투 인력이다. (☞관련 자료 : The Role of Public Health in the Prevention of War : Rationale and Competencies) 현대전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한데, 한국이라고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전쟁의 불평등은 더욱 심각하다. 여성과 어린이가 전쟁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최근의 모든 전쟁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가난한 사람들도 불리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또한 미디어에 의존해야 하지만, 가난한 난민과 그들의 악순환적인 가난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짐작할 수 있는 사례는 충분하다.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 그리고 이번의 지뢰 폭발에 이르기까지, 다치고 죽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북한의 포격에 집을 떠나 피난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서해 5도의 조업 중단은 또 어떤가. 최전방에 근무하면서 노심초사해야 하는 장병, 그리고 자식을 보내놓고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부모도 분명 '계급적'이다. 전쟁 위기와 그 결과, 그리고 부수적 피해의 지독한 불평등.

평화가 지킬 생명과 안전은 모두에게 해당하면서도 불리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절실하다. 그뿐인가, 주가가 폭락하고 관광객이 끊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화는 또한 경제이자 고용이다. 그것도 외부 요인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작고 불안정한 자들의 경제(메르스 사태의 피해와 마찬가지다). 어떤 명분도 이보다 더 높은 순위에 올 수 없다.

우선 불안을 없애고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급하다. 다행스럽게 한 고비를 넘길 수 있다면, 추가적인 긴장 완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보탠다.

이번 기회에 특히 평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2000년에 나온 통일연구원의 한 보고서에서 평화 문화의 중요성을 인용한다. (☞관련 자료 : <한국 사회 평화 문화 형성 방안 연구>)

"남북한의 평화와 안보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우위를 통해 보장받을 수 없다. 평화로운 환경 즉, 직접적으로 통일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평화 환경의 조성 자체가 중요하다.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정부의 공식적인 대북 대외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의 광범한 '평화 마인드'의 확산이 요망된다."

'평화 마인드'는 한 요소일 뿐, 평화 문화는 범위가 넓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몇 가지 핵심 요소는 이런 것이다. 협력과 연대, 반핵, 민주주의, 군축, 양성 평등, 경쟁의 완화, 예술의 사회적 가치, 윈-윈의 철학, 작은 소득 격차, 다양성과 관용, 정의, 환경 친화, 사회 안전망, 사법 정의…. (<전쟁과 보건(War and Public Health)>(배리 레비, 빅터 사이델 엮음, Oxford University Press 펴냄, 454쪽).

평화 문화의 확산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만큼 통합적이고 구조적이며 또한 정치적이다. 모두의 책임과 의무,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별히 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도 있다. 앞서 인용한 <전쟁과 보건>에서는 보건 전문가가 전쟁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관통하는 원리야 어디 특정 분야에만 해당할까. 모든 분야 전문가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첫째, 전쟁이 미치는 영향과 전쟁이 발생하는 원인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
둘째, 전쟁의 영향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과 일반인에게 교육하는 일.
셋째, 전쟁을 방지하는 사업이나 정책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
넷째, 전쟁을 막는 일에 직접 참여하는 것.

"전쟁을 불사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학습해야 평화를 얻고 또한 키울 수 있다. 지금 이 시기 모든 사람의 복지와 건강을 바란다면, 평화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이 글이 게재될 즈음에는 불안이 해소되고 다시 더 큰 평화를 구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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