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1조 원에 가까운 세수 부족에 이어, 올해도 그 절반 정도의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사태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경제팀 수장이다. 최 부총리는 지난 7월로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세수 부족이 발생하는 원인은 엉터리 경제성장률 예측 때문에 실제 세수보다 예산을 많이 편성한 기술적인 요인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실적이 나빠 법인세를 적게 내는 것도 한 요인으로 넣을 수 있다.
특히 수출대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진 이유는 국제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지원해주기 위해서 법인세 부담을 줄여줄수록 좋은 것일까? 최 부총리의 논리는 그런 모양이다. 법인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에 대해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법인세 부담을 늘리면, 경쟁력이 약해져 실적이 나빠지고, 결국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가 감소해 세수 부족이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의 이런 소신은 2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새삼 확인됐다. 야당의 법인세 관련 질의에 대해 "법인세는 결코 낮지 않다"고 답변했다. 또한 최 부총리는 최근 대기업에 비과세 감면 정비를 하면서 실제 세율도 꾸준하게 올라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극히 낮은 법인세율로 자본을 유치하는 조세회피처들을 경쟁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주요 경쟁국에 비해 한국의 법인세율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게 사실일까? 실제 내는 법인세 부담인 법인세 실효세율이 정말 꾸준하게 올라가고 있는 것일까?
일단 한국의 법인세율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명박 정부에서 25%였던 법인세율을 현행 22%로 낮춘 것이다. 하지만 주요 경쟁국인 미국의 법인세율은 35%다. 프랑스 33%, 이탈리아 27%, 일본과 중국이 25% 정도다.
그럼 외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어떤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본은 22.1%, 영국 25.5%, 미국 22.1%"라면서 "도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과 일본의 저명한 기업은 30%가 넘는 실효세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어떤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16일 내놓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시총 상위 100대 기업(2012~2104)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3년 22.8%에서 2014년 19.1%로 낮아졌다. 각종 세금 감면, 비과세, 세액공제 등의 혜택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많아졌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결과다. 실질적인 법인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온 야권에 따르면 '진실공방'이 불가피해진다.
대기업일수록 실효세율이 낮은 기현상
더 충격적인 것은 순이익이 큰 상위 법인일수록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 수출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3년 26.0%에서 지난해 15.6%로 줄었다. 법인세 실질 부담이 각종 혜택으로 낮아지는 것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장치가 최저한세율이다. 어떤 이유로든 이 정도 세율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17%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실효세율은 최저한세율마저 무력화시켰다. 대기업에 대한 최저한세율은 2012년 14%에서 지난해 17%로 인상됐지만, 삼성전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현대차·SK하이닉스·제일모직 등 시총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3년 21.5%에서 지난해 17.9%로 낮아졌다. 10대 기업의 실효세율이 최저한세율과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순이익과 법인세 규모가 월등히 큰 삼성전자만 유난히 혜택이 집중된 탓도 아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시총 100대 기업의 실효세율 역시 2012년 21.0%에서 2013년 20.8%, 지난해 20.5%로 계속 감소했다.
정부는 법인세율을 올리면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져서 경제활성화에 역행하는 조치가 된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법인세율을 대폭 낮춰준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 경제는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 저성장 기조가 뚜렷해지고, 나라빚이 폭증하고 있다.
경제활성화가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춰줘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드러났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나라 전체로 골고루 분배되지 않아 내수 침체가 심한 것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은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내수 활성화가 관건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19일 정부가 발표헀듯, 앞으로 해외 직접 구매와 병행수입 활성화를 위해 관세운임을 깎아주고, 병행수입품이 가짜면 정부가 우선 보상해준다는 식의 어이없는 발상이다.
이른바 기업들이 벌어들인 과실이 국민에게 골고루 퍼져간다는 '낙수효과'는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안창남 교수(강남대 세무학과)에 따르면, IMF 이전에 한국 경제에서 발생한 소득 귀속 비율이 기업과 가계 대비 5.5 대 4.5로 기업 부문이 좀더 많은 수준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다시 조사해보니 확 달라졌다. 기업 대 가계의 소득 귀속 비율은 8.5 대 1.5다.
이것이 바로 비정상적인 경제구조다. 이 정도로 기업과 가계의 소득 귀속 비율이 불균형하다면 내수가 활성화될 수 없다. 기업의 소득을 정부가 법인세로 거둬 경제가 전체적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이 번 돈은 어디로 가나
그동안 수출대기업들이 엄청나게 쌓아둔 사내유보금은 정부의 환율정책과 법인세 감면 혜택으로 국민에게 돌아갈 수익을 기업에게 환류시킨 측면이 적지 않다. 원화 환율이 낮아지거나, 법인세 부담이 늘고 있어 국제경쟁력에 비상이 걸렸다고 호소할 때도 수출대기업들의 수출 실적은 오히려 늘어나 매년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8년간 조세회피처로 흘러들어 간 대기업의 자금 가운데 180조 원 정도가 국내로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일부는 대기업이 해외에서 비자금으로 조성하거나 법인세를 탈세하기 위해 은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조세회피처로 흘러가고 회수되는 자금 흐름은 수출입 대금 결제 등 국제적인 기업 거래를 원할히 하기 위한 합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세회피처를 이용하는 중소기업과 비교하면 대기업들의 흐름에는 수상한 점이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대기업의 조세피난처 송금액은 총 4324억 달러(현재 환율기준 약 508조 원)이며, 이 기간에 대기업이 국내로 수취한 금액은 총 2741억 달러(322조 원)였다. 송금액 대비 37%에 해당하는 1583억 달러(186조 원)가 조세회피처로 들어간 뒤 아직 국내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1722억 달러(202조 원)를 송금했다가 2539억 달러(298조 원)를 회수해 회수 자금이 오히려 817억 달러나 많다.
오 의원은 "조세피난처로의 송금이 늘어나는 가운데 회수가 줄어드는 것은 자본의 해외유출과 함께 역외탈세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라며 "과세당국의 철저한 감독과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세회피처로의 순유입액이 불어나면서 국세청이 역외탈세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추징한 건수와 액수도 증가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역외탈세의 실제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거래이기에 탈세 혐의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 국세청의 입장이다. 정부 차원에서 역외탈세 단속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그 결과 국세청의 역외탈세 추징액은 '새발의 피'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이러니 "대한민국 정부는 대기업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냉소가 점점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