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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행 속죄포’ 보도, 선수를 두 번 죽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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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행 속죄포’ 보도, 선수를 두 번 죽이나

[베이스볼 Lab.] 약물에 관대한 국내야구, 도핑 징계 강화가 필요하다

속죄: [명사] 1.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앰. 2. <기독교>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

사전에서 ‘속죄(贖罪)’라는 말을 찾으면 나오는 뜻풀이다. 의미를 잘 살펴보면 속죄는 죄를 지은 사람이 지은 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 죄를 씻어내거나, 종교적인 의미에서 죄가 없는 사람이 희생을 통해 다른 이의 죄를 씻어내는 경우를 뜻한다. 속죄의 핵심은 죄와 등가를 이루는 ‘대가’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죄의 종류와는 전혀 관계없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죄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정도의 희생을 갖고는 속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화 최진행이 30경기 출장 징계를 끝내고 복귀했다. ⓒ연합뉴스


12일, KBO리그 야구 뉴스에서는 속죄의 향연이 펼쳐졌다. 금지약물사용 적발로 받은 30경기 출장 징계에서 돌아온 한화 이글스 최진행의 복귀전이 배경이다. 이날 최진행은 첫 타석에 나오자마자 터뜨린 투런 홈런을 시작으로, 두 번째 타석에서는 2루타를 터뜨리는 맹활약으로 팀의 대승을 이끌었다. 최진행의 공백 기간 동안 장타 부재로 어려움을 겪은 한화 입장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활약이다. 새 외국인 투수 로저스의 활약에 더해 최진행까지 이전 모습 그대로 복귀하면서, 한화 이글스의 성적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활약을 미디어가 전달하는 방식이다. 최진행의 홈런 직후, 한 인터넷 매체는 이를 속보로 전하면서 “최진행 속죄포”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외에도 다수의 매체가 ‘속죄의 홈런’ ‘속죄의 활약’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심지어 최진행의 맹타를 정현석의 활약과 묶어 ‘감동의 시너지’로 표현한 매체도 나왔다. 한 방송 해설자는 돌아온 최진행을 팬들이 따뜻하게 격려해 달라고 권유했다.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마치 남모를 사연이 있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다 돌아온 대상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물론 최진행이 1군에 복귀해 경기에 출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미 최진행은 규정되어 있는 3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모두 받은 신분이다. 징계 기간이 끝난 선수가 1군 경기에 나가면 안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일부에서는 도의적인 차원에서 올 시즌 경기 출전을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지만, 이는 헌법에서도 금지하는 이중처벌을 하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출장을 강행하는데 따르는 비난은 선수 본인이 감수해야 하겠지만, 경기 출장 그 자체는 전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진행의 출전을 문제삼지 않는 것과, 그의 활약을 ‘속죄’나 ‘감동’ 같은 표현으로 미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분명히 하자. 최진행은 도핑테스트에서 경기력 향상 약물성분인 스테노조롤이 검출되어 KBO의 징계를 받은 신분이다. KBO리그에서 현역 스타플레이어가 정규시즌 중에 금지약물 적발로 징계를 받은 것은 사실상 최진행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최진행의 사례는 앞으로 KBO리그가 금지약물 문제를 다루는 데 중요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매체는 최진행의 복귀전 활약을 ‘속죄’로 미화하면서 면죄부를 주는 쪽을 택했다. 사실 금지약물 적발 당시에도 적지 않은 언론에서는 ‘모르고 사용했다’ ‘지인이 줬다’는 선수의 변명을 전달하는데 그쳤다. 당일 포털사이트 스포츠 섹션에서는 오후 들어 최진행 관련 비판적인 기사가 일제히 자취를 감추는 기묘한 일도 벌어졌다. 그리고 최진행이 복귀해 맹타를 휘두르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속죄와 감동의 물결이 헤드라인을 휩쓸고 있다.


약물사용 선수에 대해 이렇게 관대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보며, 다른 선수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금지약물 사용이 경기력에 가져오는 효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근력과 집중력, 반응 속도가 향상되고 이전보다 좋은 타율과 장타력을 시즌 후반까지 유지할 수 있다. 걸리지만 않으면 연봉협상과 FA 계약에서 대박을 노릴 수 있다. 만약 걸리더라도 이번 최진행과 과거 사례들에 비춰볼 때 잃을 것은 많지 않다. KBO의 징계는 30경기 출전 정지가 고작이다. 물론 여론의 비난을 받겠지만, 복귀해서 좋은 활약을 하면 언론에서 알아서 잘 포장해줄 것이다. 과거 병풍 파동과 국제대회 도핑에서 적발된 선수들이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걸리지만 않으면 엄청나게 많은 부와 명성이 따르지만, 걸리면 솜방망이 처벌과 잠깐의 비난으로 끝나는 게 현재 국내에서 약물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명백하다면, 과연 약물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선수가 몇이나 있을까.


이는 과거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먼저 겪었던 일이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선수들 사이에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이 만연한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구단들도 매년 봄이면 헐크가 되어 나타나는 선수들을 보면서도 방조했다. 처음에는 약물 사용을 거부하던 많은 선수가 10홈런도 못 치던 다른 선수가 50홈런 타자로 변신하는 현실 앞에 결국에는 굴복했다. 언론에서도 몇몇 매체를 제외하고는 스테로이드 사용에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는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 대결이 구름 관중을 불러들이고 메이저리그의 인기가 살아나던 때다.


사무국도, 구단도, 언론도 누구 하나 ‘대세’를 거스르고 불편한 문제를 공론화하려 하지 않았다. 뒤늦게 정부 차원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도핑테스트를 강화하고 징계 규정을 가다듬었지만, 모두가 합작해서 ‘스테로이드 시대’를 방관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KBO리그의 가벼운 징계 규정과 미디어의 관대하다 못해 따스하기까지 한 태도는 과거 메이저리그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행여 이런 태도가 선수들에게 ‘약물을 사용해도 괜찮다. 다만 걸리지만 말아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최진행은 규정에 있는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징계를 다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 또 다른 금지약물 사용 선수가 나오는 불행을 막으려면, 지금보다 더 강화된 징계가 필요하다. 30경기 출장 정기 정도로는 금지약물을 뿌리뽑기 어렵다. 1차 적발시 80경기, 2차 적발시 한 시즌 출장 정지 중징계를 내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전히 약물 선수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실정이다. 1차 적발시 한 시즌 출장 정지, 2차 적발시 영구 제명 정도로 강력한 징계를 내려야 제 2의 최진행이 나오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또한 그 정도는 되어야 징계가 끝난 선수가 복귀하더라도 팬들 사이에서 ‘복귀는 이르다’ ‘징계가 부족하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금지약물 선수를 두고 ‘속죄’ 운운하며 미화하는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속죄’라는 표현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물의를 빚은 연예인이 열심히 방송활동을 하는 것도 ‘속죄’로 불리고, 문제를 일으킨 운동선수가 홈런을 쳐도 ‘속죄’로 부른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본인 입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속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듯이 속죄는 잘못과 정확하게 같은 값을 가진 대가를 치렀을 때 성립한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자기 밥벌이 하는 걸 두고 속죄로 부르는 건 웃기는 일이다. 최진행은 그저 프로 선수로서 정해진 징계를 받은 뒤 돌아와서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경기 후 인터뷰도 두통을 이유로 고사할 만큼 조심스러운 복귀 후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대고 일부 매체가 속죄와 감동을 운운하는 건, 조용히 야구에만 전념하고 싶은 선수를 두 번 죽이는 행태다. 선수 욕 먹이는 호들갑을 떨 시간과 지면이 있으면, 금지약물 문제와 도핑 강화 필요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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