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초기 대응이 또 도마에 올랐습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에 이어 북한 지뢰도발에서도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건데요. DMZ에서 지뢰폭발사고가 발생한 4일 오전부터 국방부가 북한의 목함지뢰 매설에 따른 폭발사고라는 발표가 나온 10일 오전까지 6일 동안의 청와대 행적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청와대 초기대응의 문제점을 방증하는 사례는 여러 가지입니다. ▲지뢰폭발사고가 났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그 다음 날 DMZ 인근 백마고지에서 열린 경원선 복원 기공식에 참석해 북한에 남북화합의 길 동참을 촉구한 점 ▲그 직후 통일부가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한 점 ▲국가안전보장회의는 8일에 가서야 열린 점 ▲박 대통령은 지뢰폭발사고가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인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와 관련해 한 마디도 안 하고 오히려 북한의 표준시 변경만 거론한 점 등등입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어제 적극 해명에 나섰는데요. ▲대통령 보고가 사고 직후인 4일 오전 10시 이후 4차례에 걸쳐 기민하게 이뤄졌고 ▲지뢰폭발사고가 북한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는 5일 오후에야 이뤄졌으며 ▲8일 저녁에서야 비로소 폭발한 지뢰가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라는 사실이 보고됐다는 겁니다.
추리자면 지뢰폭발사고와 관련한 보고와 대응은 기민하게 이뤄지고 있었으나 북한 소행이라는 확정이 이뤄지지 않아 예정된 일정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의 해명인데요.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의심은 가시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심은 청와대 해명이 한민구 국방장관의 말과 배치된다는 점입니다. 한 장관은 어제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지뢰폭발사고 당일인) 4일 늦게 북한의 목함지뢰에 의한 도발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했고, 그런 사실이 (청와대에) 다 보고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5일 오후에 가서야 북한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청와대 해명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어제 저녁 – 청와대 해명이 나온 이후 – "(한 장관이) 기억에 의존해서 발언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며 청와대 해명이 맞다는 취지로 수정발표 했는데요. 사안이 엄중할뿐더러 초기 대응 부실 문제가 이미 제기된 상태였는데도 한 장관이 보고서를 작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억에 의존해 국회에서 즉석 답변을 했다는 게 설득력 있는 해명인지 의문입니다.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 한 장관이 '독박'을 쓰기로 한 게 아닌지 하는 의문만 추가됩니다.
백 번 양보해 청와대의 해명과 국방부의 수정이 맞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가시지 않습니다. 합리적 의심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청와대 해명에 따르면 북한 소행이라는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경원선 복원 기공식 참석, 통일부의 고위급 회담 제의 등을 예정대로 했다는 건데요.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역은 DMZ입니다. ‘잡상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지뢰폭발사고가 발생했다면 북한과의 연관성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게 상식적 대응입니다. 노란불 켜놓고 일단멈춤 태세를 취해야 했습니다.
백 번이 아니라 천 번을 양보해 경원선 복원 기공식과 같이 사전 고지된 공개행사는 취소하기 어려웠다고 이해하더라도 통일부의 – 당연히 청와대의 사전 허가를 받은 것이겠죠 – 고위급 회담 제의는 얼마든지 유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일정이 사전 공지되는 공개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당국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시간 조절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앞뒤를 둘러보지 않은 채 고위급 회담을 제의한 것은 DMZ에서의 지뢰폭발사고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방증이 됩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놓쳐서는 안 되는 안보문제에서 나사 풀린 수준의 안이함을 내보였다는 방증이 됩니다.
합리적 의심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청와대 해명에 따르면 폭발한 지뢰가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라는 사실이 보고된 시점은 8일 저녁이었습니다. 헌데 왜였을까요? 그로부터 하루하고도 한 나절이 더 흐른 10일 오전에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표준시를 변경한 북한의 처사를 비판하면서도 지뢰도발이란 더 엄중한 북한 행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군 통수권자가 말이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당국은 이날까지도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는 내용의 대북 전통문 접수를 요구했습니다. 여기에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가 북한이 매설한 지뢰라는 추정이 나온 5일 저녁으로부터 이틀 하고도 한 나절이 지난 8일에야 열린 점도 추가해야 합니다. 도대체 이런 행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행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대응이 굼떴다는 것이고, 태도는 도발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보고를 몇 번 받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단계별 보고에 맞게 적절한 대응이 이뤄졌는지가 핵심입니다. 하지만 청와대 해명은 거꾸로입니다. 단계별 보고가 이뤄졌는데도 대응은 천하태평이었다는 점만 부각시킵니다. ‘셀프 디스’를 한 겁니다.
이 기사는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바로 가기 : <시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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