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가 공공기관이 생산한 전자기록을 민간 기업에 위탁·보존할 수 있도록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각급 학교 등을 제외한 한국전력공사·한국수출입은행·국민건강보험공단 등 850여개 '기타 공공기관' 기록물을 민간시설이 보존·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위 개정안을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업무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보안누설과 국가기록 민영화 문제 등 여러 면에서 문제점이 많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자.
우선 정부는 이러한 개정안이 나오게 된 계기가 기업들의 요청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국무조정실 보도자료를 보면, 경제단체 릴레이 간담회를 통해 위 사안이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현 법에서는 '공공기관은 기록물 보존을 위해 기록물 관리기관을 설치‧운영해야 하며, 전자문서법상 공인전자문서센터 활용은 불가하여 기록물 보관 관련 신규 투자수요를 저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민간기록물 관리시설(기록원장 지정‧고시)을 활용하여 전자기록물을 보존·활용할 수 있게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쉽게 말해 공공기관 기록보존 및 관리에 대한 공인전자문서센터 등 민간기관의 활용을 합법화해야,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공인전자문서센터'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정을 받은 LG CNS·한국무역정보통신 등 4곳이 개인·단체 등의 전자문서를 보관하고 열람·증명·유통하는 서비스다. 이번 개정안이 경제인들의 요구를 반영했음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설문원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국가기록원은 기타 공공기관의 기록관리가 미진해 이런 처방을 내놓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을 왜 민영화 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또한 지금 제도 안에서도 시스템 구축을 외주화하는 등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법률개정부터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보안성 문제도 큰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의 기록을 보면 수많은 비밀기록과 민감한 개인기록이 즐비하다. 이번 개정안만 보면 이런 기록까지 보존·관리를 위탁할 수 있는지 밝히고 있지 않다. 비밀 기록 및 개인정보 기록을 일부 대기업이 운영하는 공인전자문서보관소 등에 보관할 경우, 보안누설 등 그 책임성도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은 이번 개정안에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유출한 자'에 대한 처벌 주체를 공무원에서 민간기록물관리시설의 임직원을 추가로 규정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보안 및 개인정보 등 민감한 기록은 시행령 등을 만들어 제외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현실성(과연 수많은 기록 중 구체적인 기록의 종류를 시행령으로 적시해 제외하라고 하는 것이 가능할지 여부)이 여전히 의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주체가 국가기록원이라는 점도 더 큰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활성화하고, 각종 시설 및 인력을 지원해주어야 할 기관이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이 공공기관의 기록을 민간이 보존할 수 있도록 해, 스스로 역할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마지막으로 8월 12일 국가기록원 주최로 개최하는 공청회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참가자 중 비밀기록 및 개인정보를 많이 다루고 있는 기관과 이 개정안을 강하게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빠져 있다. 또한 참석자와 일반 토론 신청자는 미리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어, 개정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최재희 이화여대 기록관리교육원 특임교수는 "이 중대한 문제를 왜 이렇게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공기관의 기록관리가 걱정된다면 정부가 운영하는 정부통합센터에 기록 보존을 넘기면 되지 왜 민간기관에 넘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전자기록의 서버를 민간기관에 넘기는 것은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민간기관에 관리 기준을 명확히 세우겠다고 하지만, 민간기관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는데 현재 국가기록원 인력으로 가능한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뜬금없이 공공기관의 기록보존 민영화 밀어붙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 제기되고 있는 각종 위험에 대해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업무담당자와 관련 기록관리 전문가들의 의견을 얼마나 청취하고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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