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오후 2시20분. 현대중공업 도장1부 소속 김광웅(45) 씨가 작업장에 쓰러져 있었다. 신음을 흘리던 그를 담당 반장이 발견하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
당시 김 씨는 동료들과 배 내부, 정확히는 화물창 내부에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동료 4명은 화물창 안으로 들어가 페인트 작업을 했고, 김 씨는 화물창 밖에서 에어펌프 호스를 잡아주는 일을 했다.
약 1시간 정도 작업을 했을까. 비는 줄기차게 쏟아졌다. 김 씨는 비 때문에 화물창 내부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작업 과정을 확인하려 해치커버(화물창 덮개)와 해치코밍(덮개가 닿는 부분)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당시 정황상 안을 들여다보던 중, 갑자기 해치커버가 닫히면서 몸이 끼였다는 게 일반적 견해였다. 해치커버를 작동할 경우, 신호수가 배치되고 그에 맞춰 작동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참사를 불러왔다. 공사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비 오는 날 무리한 작업을 한 점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 씨에게는 어린 딸들이 있었다.
# 2014년
10월 28일 이경환(33) 씨는 아침 8시부터 해치커버 안쪽 청소 작업을 동료 2명과 함께 진행했다. 해치커버 작동 검사를 준비한 것. 청소 작업은 30여 분 정도 걸려 마무리됐다. 그러자 작업반장이 해당 작업 구역으로 와서 해치카바 조종석에 앉았다. 열린 해치커버를 닫기 위해서였다.
작업반장은 조종석에 앉은 뒤, "닫는다"라고 소리친 뒤, 해치커버를 닫았다. 하지만 이 씨는 미처 해치커버가 닫히는지 알지 못하고 쇠지레에 물을 묻히고는 작업구역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작업자가 "닫지 마세요"라고 외쳤지만 작업반장은 닫아도 된다는 신호로 판단, 해치커버를 닫았다.
이 사고로 이 씨는 좌측 두개골 골절로 즉사했다. 해치커버를 여닫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에 직업표준서에는 최소 3명의 안전통제요원을 배치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배치하지 않고 작업하다 사단이 난 셈이다.
조종석에 앉은 사람이 지시하면, 신호수는 앞뒤, 좌우를 다 살펴보면서 안전점검을 일일이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문제가 없으면 신호를 통해 해치커버를 작동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인원이 부족한 관계로 신호가 맞지 않았다.
이 씨가 현대중공업 하청기업에 입사한 지 딱 두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세 살 된 아들이 있었다.
1972년 세워진 현대중공업, 지속해서 반복하는 죽음들
죽은 이유도, 장소도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1994년 사고 당사자는 현대중공업 직영 노동자지만, 2014년 사고 당사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죽음'은 일회에 그치지 않았다. '재래형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에 따르면 1972년에 세워진 현대중공업은 1974년 22명의 노동자가 배를 만들다 죽었다. 이듬해인 1975년에는 19명, 1976년에는 15명, 1977년에는 23명이 죽었다. 이후 사망자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1978년 12명 1979년 17명, 1980년 17명, 1981년 12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 자릿수 죽음이 존재했다.
한자리로 내려온 것은 1985년(9명)부터였다. 이후부터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하청 노동자가 죽기 시작했다. 노동의 외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죽음의 유형은 이전과 대동소이했다. 죽음의 주체가 직영에서 하청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992년 12월 윤모 씨는 크레인과 컬럼 사이 협착으로 사망했다. 1996년 2월 서모 씨는 떨어져서 사망했고 문모 씨가 협착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김모 씨 등 3명이 블록 전복으로 사망했다.
2000년 이후로 들어서면서도 사망 원인은 비슷했다. 추락, 협착, 질식 등으로 사망했다. 2004년에는 족장 핸드레일에 바스켓이 걸려 추락사를 당하지 않나 세척작업 중 추락사하기도 했다. 2006년에도 블록전도로 추락 사망한 이가 있었다. 또한 실족 추락, 부재 사이 협착 등 셀 수 없는 사망사고가 벌어졌다. 2000년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죽은 대다수가 하청노동자라는 점이다.
반복되는 죽음, 현대중공업에만 적용될까
주목할 점은 이러한 반복되는 '재래형 사고'는 현대중공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속노조가 정리한 ‘주요 조선소 중대재해 현황’을 보면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중대재해로 5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대부분이 추락(16명), 협착(15명), 폭파‧질식(10명) 등 ‘재래형 사고’로 사망했다.
한진중공업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중대재해로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경남 통영에 있는 성동조선해양의 경우, 2002년부터 2014년 동안 15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역시 대부분이 ‘재래형 사고’였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후 약 40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며 "가스질식, 추락, 화재 등 기본적이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라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외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부터는 죽음의 주체가 직영 노동자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바뀌었을 뿐"이라며 "일하다 죽는 구조는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고 유형들은 현대중공업 초창기 때 있었던 사고가 그대로 반복되는 식"이라며 "이는 현대중공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른 조선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4년에만 13명(계열사 포함)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습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올해에도 2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역시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이들은 왜, 어떤 일을 하다가 죽었을까요?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요? 왜 죽음은 반복되는 걸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들 죽음의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반복되는 죽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죽음이 지금도 반복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로 치부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일하다 죽는 노동자'를 당연시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그렇게 당연시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 죽음의 고리를 찾아보고자 <프레시안>에서는 '조선소 잔혹사'를 기획했습니다. 이 기획은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과 '노동건강연대'의 협조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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