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반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집 <나무>(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 '황혼의 반란'이라는 단편이 있다. '황혼의 반란'은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저 소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만간 맞이할 '초고령화 사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대통령은 새해를 맞이해 신년 담화문을 발표하고, 온 나라에 '노인은 일은 하지 않고 밥만 축낸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다. 노인들은 CDPD(휴식 평화 안락 센터, Centre de Detente Paix et Douceur)라는 기관에 끌려가 안락사를 당했다. 70대 프레드·뤼세트 부부는 센터에 끌려가기 전 탈출에 성공, 다른 노인들과 산속에 들어가 반정부 투쟁을 벌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을 찾아오는 노인들이 많아지자, 정부에서는 면역력에 약하다는 데 주목해 독감 바이러스를 퍼트린다. 결국 노인들은 독감에 걸려 하나 둘 죽어나갔다. 결국 프레드마저 CPDP에 붙잡혀 안락사를 당한다. 그는 죽어가며 "너도 언젠가 늙은이가 될 게다"라고 말한다.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을 배척하는 운동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었다. 한 사회학자가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대통령은 신년 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요컨대, 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노년의 이미지는 점차 사회의 모든 부정적인 요소와 결합되었다. 인구 과밀, 실업, 세금 등이 모두 '자기들 몫의 회전이 끝났음에도 회전목마를 떠나지 않고 있는 노인들' 탓이 되어 버렸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 중)
'황혼의 반란'에는 노인 혐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젊음을 숭배하는 시대 조류에 우리 자식들이 세뇌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자녀들은 육체의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합니다. 몸무게를 줄이고 주름살을 없애는 것을 하나의 신앙 행위처럼 여기고 체조나 조깅을 신성한 의무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몸을 가꾸고 젊음을 유지하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들은 바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젊음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참으로 큰 착각이죠."
'청년'이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층 인구는 지난 10년간 65만 명이 줄었다. 60만 대군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국군의 수와 맞먹는 엄청난 숫자가 증발한 것이다.
지난 1월 25일 국회 예산 정책처는 '2014~2060년 장기 재정 전망' 보고서에서 지금처럼 저출산 고령화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3년에는 국채 발행으로도 빚을 감당 못하는 국가파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령화로 인해 복지부분 중 특히나 연금부분의 지출이 크게 늘 것이지만, 세금을 내야 할 생산가능 인구가 적어 세수가 부족해진다는 이야기다.
이와 맞물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도 침체될 것은 불 보듯 뻔 한 수순이다. 청년세대의 불황은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가까운 미래에 세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세금이 부족하면 연금을 받아야 할 노년세대가 연금을 받지 못한다. 청년세대의 불황은 출산문제뿐 아니라, 노년층 노후 불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나라는 일본, 이탈리아, 독일이다. 이 중 일본과 이탈리아는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확대 등을 통한 건설경기 부흥을 이룩해 얼어붙은 경제 및 실업률 회복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이는 실패한 사례로 평가된다. 결국 인구 쇼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본은 2040년 지자체의 절반이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이탈리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전체 청년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해외로 떠나는 청년은 매년 4만 명을 넘고 있으며, GDP 대비 국가 부채율은 121%를 돌파했다. 전체 실업률은 13%에 달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년 실업률은 40% 넘어섰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반면, 독일은 청년에게 집중했다. 초기 취업에 실패한 청년에게 취업 장려금을 지급하고, 무상 등록금·주거비·생활비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독일은 국민소득이 3000달러 수준일 때부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같은 정책을 시행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독일은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분배해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 전체 실업률은 4%이며, 청년 실업률은 11%를 돌파했다. 청년 취업자의 첫 고용 형태는 비정규직 비율이 35% 정도로, 가히 '고용 불안 시대'라고 할 만하다. 청년들은 삼포·오포를 넘어 칠포세대라 불리며, OECD국가 중 대한민국은 이혼율, 자살률, 가계부채, 출산율, 최저임금, 저임금 노동자 비율, 낙태율 등 총 50개 분야에서 1위다.
청년고용문제와 결혼·출산 문제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2010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체 취업률이 1% 떨어지면 결혼은 최대 1040건이 줄고, 임시직 비율이 1% 오르면 결혼은 330건 줄어든다. 청년고용문제가 해결되어야 결혼과 출산이 늘어나며 인구 증가로 이어져 세수 확보 또한 가능하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일본의 현재에 비쳐 대한민국의 10년, 20년 뒤를 볼 수 있다.
일본의 청년세대는 꿈도 희망도 직장도 없는 빈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스스로 취업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니트족(NEET족,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늘고 있다. 이는 곧, 낮을 결혼율과 출산율로 이어진다. 경제불황의 여파에 가장 취약한 세대가 청년 세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기존 구조에서 철저히 탈락하며, 점점 설 곳을 잃고 있다.
청년의 소득 감소는 부메랑처럼 노년층의 노후 불안으로 이어진다. 인구 정책 중 핵심이라 불리는 청년 정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본과 같은 길로 향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문제를 푸는 방법은 딱 하나, 정공법(正攻法)이다. 더 이상 세대 갈등으로 번질 인구 문제를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모든 세대, 정부와 국민이 모여 우리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야 할 때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청년과 노년을 아우르는 전 세대의 빠른 결단이 있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위 기사는 진보정의연구소 블로그기자단 이건호 학생(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의 취재로 작성됐습니다.
진보정의연구소는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특히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이해에 부응하는 정책개발과 연구, 시민교육을 수행하는 전문 연구기관으로 2012년 12월 창립됐습니다.
연구소는 청년·학생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지나쳐버린, 혹은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초 블로그기자단을 구성했습니다. 블로그기자단은 청년 문제를 비롯한 정치 및 생활 의제에 대한 고민을 양질의 콘텐츠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정의당과 청년 간 직접적·지속적 소통의 장이 됐으면 합니다. (☞진보정의연구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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