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2015년 메르스, 2016년은?
항간에는 이런 말이 떠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가 터져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2016년에는 무엇이 우리를 다시 고통의 나락에 빠트릴 것인가?"
불안 사회, 위험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민의 심리를 잘 드러낸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위험과 재난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 재난이나 위험에 대한 불안과 불신은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도 높다.
어떤 이들은 선택을 잘못한 탓으로 돌린다. 어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란 진단을 내린다. 또 어떤 이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계속 무능한 정권을 선택하였기에 국민이 더 당해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즉 더 큰 재앙을 당해야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재난과 위험의 위협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위험과 맞닥뜨리지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 위험을 통제할 수 있으면 재난의 위협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위험은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위험에 놓이지 않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앤서니 기든스나 니콜라스 루만 같은 저명한 사회학자도 현대 사회에서 위험은 불가피하며 이를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과 같은 재난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이들 사회학자들의 지적에 거의 전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우리 사회가 서구 사회가 겪는 위험보다도 훨씬 더 자주, 더 심하게 위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대다수 국민은 다시 한 번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불통'으로 상징되는 박근혜 정권은 소통이 가장 중요한 감염병(전염병) 대응에서 특유의 장기(?)인 불통을 고집해 화를 키울 대로 키웠다. 정보를 제때 공유하지 않고 감췄으며 잘못을 하고도 이를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세월호와 메르스는 시민의 업보(?)
국민은 위험 관리와 위기 대응에서 소통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란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최종 선택을 할 때는 소통 지수가 떨어지거나 소통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 지도자를 골라왔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연쇄 참극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 업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메르스 사태에서 많은 시민들은 실제 이상의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를 꺼렸고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그들의 이런 행동과 행태는 그들의 무지나 비과학적 사고 등의 탓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신뢰를 주지 못한 정부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 전문가에 대한 불신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기 마련이다. 신뢰의 하락은 위험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왜 위기나 재난에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없는 정치 세력을 지지해온 것일까.
이는 한마디로 위험이나 재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탓이다. 우리 사회 시민들은 아직 깨어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울리히 벡이나 기든스와 같은 학자들은 위험 사회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찰적 근대화'를 주장하며 하위 정치(subculture)와 사회운동을 통한 일반 공중의 조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6일 첫발 내딛는 메르스극복연대회의
하위 정치란 기존의 제도권 정당 정치가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해 정치를 직업 정치인에게, 과학기술을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방역을 의사와 의료 기관에게, 경제를 자본가나 기업가에게 전적으로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것에 참여하고 감시하고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깨어 있는 시민의 정치가 곧 하위 정치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 하위 정치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에만 모든 것을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자각이 시민 사회 진영에 퍼지기 시작했다. 6일 시민·사회단체와 소비자 단체, 환자 단체, 의료인 단체, 노동계와 학계 등이 하나로 뭉쳐 메르스극복연대회의를 만든다. 우리 사회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으로 주목 받기 충분하다.
이 연대 모임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낼지, 시민들로부터 얼마만큼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기든스 등이 줄곧 주창해온 하위 정치의 하나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시민 사회의 이런 자구 노력이 궁극적으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기존 정당의 재탄생과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런 정당에 대한 선택을 주권자들이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은 녹색건강연대 공동대표로도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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