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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야, 미안해!"

[언론 네트워크] 강정을 찾는 사람들

2015 강정 생명 평화 대행진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제주시청에서 출발한 행렬은 어느새 성산과 대정을 넘어 강정으로 향하고 있다.

매해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하는 대행진은 늘 그렇듯 작은 마음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감동을 공유하며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번 대행진은 올해 최고의 무더위를 만났다. 반나절 행진에 동행한 기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강렬한 햇빛과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를 고스란히 견디며 대행진 참가자들은 걷고 또 걸었다.

남들은 산, 바다, 계곡이나 하다못해 시원한 바람이 빵빵 터지는 에어컨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할까?

7월 29~30일 동진과 서진을 오가며 '왜 걷나요'라는 질문을 참가자들에게 던졌다. 말 한마디도 힘들다며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이 말을 빼놓지 않았다.

"미안해서…."

"돕고 싶어서…."


▲ 올해도 강정은 생명 평화 대행진으로 많은 사람들의 힘을 얻었다. ⓒ제주의소리

"강정 대행진은 오래 전부터 참여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이제야 왔네요. 육지에 살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오고 싶었고 이제야 왔네요."
(부산에서 온 30대 여성)


"강정을 돕고 싶은데 도울 방법이 마땅히 없었어요. 여기는 매일 해군 기지 공사장을 보면서 몸과 마음이 충돌하는데 저는 함께 할 상황이 안 되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해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온 30대 남성)

"내가 강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3년째 오고 있어요. 군사 기지 반대 투쟁이 쉽지 않잖아요. 숱한 어려움 속에서 제 자리를 지키며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들에게 평화이야기를 계속 해주고 있어요." (두 딸과 함께 경기도에서 온 40대 주부)

"강정 해군 기지는 결코 강정만의 문제가 아니예요. 제가 사는 서귀포 시, 그리고 제주 전체를 군사 기지화 하는 출발이 바로 강정 기지입니다. 미약하지만 강정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4년째 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평소 못 다한 미안한 마음도 대행진에 와서 풀리기도 합니다. 부끄럽네요." (서귀포에서 아들과 함께 온 50대 아버지)

▲ 제주평화나비 깃발과 강정 깃발. ⓒ제주의소리
나이, 사는 곳 모두 다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짓말처럼 비슷했다. 3000일 동안 해군, 정부와 싸워온 강정에게 미안해서 비록 며칠 밖에 안되지만 기꺼이 함께 걷겠다는 마음. '항상 옆에 있진 못해도 난 여전히 강정을 지지한다'는 믿음의 발걸음이다.

강정 해군 기지 반대 투쟁의 열기가 예전만큼 못하지만,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강정 사람들은 어깨가 펴지고 다리에 힘이 생긴다.

7월 29일 동진에서 강동균 전 강정 마을 회장은 특별히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지역 대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 '제주평화나비' 회원들이 대행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강 전 회장은 "이 젊은 친구들이 제주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군 기지로 싸워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평화나비 학생들이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이에 화답하고자 마이크를 잡은 이민경 제주평화나비 대표는 "강정에는 평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명예와 인권을!"이란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강정 대행진에는 많은 깃발이 나부꼈다. 용산 참사, '일본군 위안부' 제주평화나비, 그리고 '함께 살자'는 강정. 모두 누군가의 아픔과 희생이 서려있는 사건이다.

▲ 용산참사 깃발과 강정 깃발. ⓒ제주의소리
아픔은 당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광주 5.18 희생자 유족들이 내건 현수막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7월 30일 서진 행렬에 있던 40대 수녀가 한 말은 강정 생명 평화 대행진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많은 것을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한다는 것을 강정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용산, 밀양, 세월호, 강정 모두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요. 여기 모인 분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으로 걷고 있지만 '잊어버리지 않겠다. 함께 하겠다'는 마음은 모두 똑같을 거라고 봐요."

가마솥 더위 속 강정 대행진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과연 당신이 비통한 일을 당했을 때 옆에서 함께 슬퍼해주고 목소리 높여줄 사람이 있는가? 당신을 위해서 한 여름 가장 더운 날에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게 걸어줄 사람들이 있는가?

강정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명 평화 대행진이 증명하고 있다.

해군 기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다음 해도 강정을 향한 장정은 계속될 것이다.

▲ 7월 30일 산방산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강정 생명 평화 대행진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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