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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정면돌파,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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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정면돌파,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초록發光] 탈핵과 정치

며칠 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탈핵을 당론으로 정할 필요성을 주장하며 '정면돌파'의 의지를 보였다. 반가운 일이다.

사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대선 공약으로 탈핵을 언급한 바 있다. 2040년까지 원자력을 폐쇄하겠다는 선언을 담아 '2040 탈핵' 비전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선거 이후 당 강령이나 정책, 공식 논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흐지부지된 당 정책이었다. 당시 이 '탈핵 비전'은 당의 진지한 토론과 장기적 계획에 기반을 둔 정책이라기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시민사회에서 증가하기 시작한 반핵 목소리에 따라 급조된 슬로건 성격이 강했다.

문 대표의 이번 발언이 진정성을 지니려면 에너지 전환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대안이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당장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서 제시한 사용 후 핵연료 처리 권고안에 대한 당의 입장과 해결 의지를 밝혀야 한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지난 부안 사태 때부터 적어도 산업자원위원회 등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한 의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서도 그 때부터 족히 10년 동안 정치권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그 '잃어버린 10년' 덕분에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공이 넘어갔고 2020년 까지 최종 처분장 부지 선정이냐 단기 임시 저장소 건설이냐의 선택에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앞으로 5년 내에 최종 처분장 부지를 선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각 핵발전소 부지 내에 사용 후 핵연료 임시 저장소를 건설하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이 그렇게 실기한 시간만큼 지역 주민과 중앙 정부의 갈등은 격해질 것이다. 그리고 임시 저장소가 위치할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그 곳이 최종 처분장, 사용 후 핵연료 중간 저장소가 될 지도 모를 것이라는 불신이 자리 잡을 것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는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뒤따를 것이다.

사실 원자력 정책에 대한 그 동안 우리 정치권의 전형적 대응 방식은 회피와 질타였다. 핵발전소 폐기나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이른바 '까다로운' 본연의 문제는 회피하고 정작 행정부를 통제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통제를 하지 못한 채 질타만 하는 차원에 머물렀다.

최근 사례를 보자. 얼마 전 정부는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삼척에서 주민 투표로 핵발전소 건설 반대 의사가 분명히 표명되었지만 정부는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핵발전소 2기를 추가하면서 그 장소로 삼척을 배제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몇 년간의 감소하는 전력 수요 추세는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전력 수요 증가를 높게 평가하여 추가 건설을 고집했다.

관련 국회 상임위에서도 이번 계획안이 핵발전소 확대를 위해 전력 수요를 부풀렸다고 '질타'했다. 과거 한국수력원자력의 불법적인 핵발전소 건설 관행에 대해서도 국회 내 '질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핵발전소 건설은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고, '질타의 정치'는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게 의회가 회피와 질타에 만족한다면, 우리는 몇 년 후 핵발전소 건설을 '국가 시무'로 밀어붙이는 중앙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지역 주민 간의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최근 사례가 있다. 7월 2일, 독일에서는 이른바 '에너지 전환(Energiewende)' 3.0 버전이 발표되었다. 핵발전소 폐쇄에 이어 화력 발전소 퇴출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졌고, 그 동안 에너지 전환의 사회 갈등 요소였던 송전탑 건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독일은 핵발전소 폐쇄와 더불어 재생 가능 에너지에 기초한 에너지 전환을 목적으로 북해 지역에 대규모 해양 풍력 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남쪽 산업지대로 보내기 위해 독일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송전망 구축 사업을 계획했다. 그러나 송전탑이 지나갈 지역의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골치 아픈 갈등의 시기가 흐르고 정부는 마침내 기존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기민/기사당 및 사민당 연립 정부는 420킬로미터 길이로 건설 예정된 신규 송전망을 30킬로미터로 대폭 줄였다. 더욱이 신규 건설은 지상 송전탑이 아닌 지하 케이블로 대체하기로 했다.

독일 환경단체들은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주장하면서 신규 송전망 건설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비판했으나, 어쨌든 우리의 밀양 송전탑 건설 사정과 비교하면 그저 부러운 결과임에 분명하다. 물론 지하 케이블은 지상 송전탑에 비해 건설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치적 결정이 내려진 것은 그 동안의 주민들 반대를 정치권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은 사회적 갈등을 표출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의 에너지 정책 현실은 정당이 사회적 갈등을 대변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정당이, 그리고 정당 정치가 대변하지 않을 때 갈등은 고스란히 중앙 정부와 지역 주민의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나타나고 약자인 주민들이 고통을 부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독일에서처럼 에너지 전환 문제가 대표적 정책 이슈로 정치적으로 논의될 때 지역 주민의 요구가 정치권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출직 입법부가 비선출직 관료보다 대중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그 동안 정치권은 원자력 정책에 대해 불감증에 빠져있었다.

지금이라도 행정부의 일방적인 에너지 정책 '독주'를 막고, 책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정당은 명확한 에너지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회피가 아닌 정면돌파로 민심을 대변해야 한다. 정치가 무책임하면 그 비용은 국민이 지게 되고 결국은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을 초래하여 정치는 파국을 맞게 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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