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사면 방침 천명이 세간의 해석처럼 기업인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건 부적절합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단 하나의 대비사례만으로도 그 부적절성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건국 60주년을 기념한다며 특사를 단행했는데 그 대상자 중 한명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박 대통령은 광복 70주년 기념 사면을 거론하고 있고, 그 대상자 중 한명으로 또 다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거명되고 있습니다. 10년씩 꺾어지는 해마다 광복과 건국을 기념한다면 사면은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고 ‘정례’적인 것이 돼 버립니다. 게다가 받은 기업인이 또 받으면 사면의 값어치는 서푼짜리로 격하됩니다.
효용성도 의문입니다. 광복절 특사에 기업인이 포함될 것이란 전망엔 경제활성화를 위한 필요조치라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어떻게든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 박근혜 대통령인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자 기업인을 사면해주고 대신 투자를 받으려 한다는 겁니다. 이런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은 그 정황증거로 두 가지를 듭니다. 지난해 9월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잇따라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아 기업인 가석방 필요성과 가능성을 언급한 점이 하나이고, 지난 9일 30대 그룹 사장단이 “광복 70주년을 맞아…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다시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게 둘입니다. 하지만 별 효용성이 없어 보입니다. 기업인 사면이 이뤄진다 해도 그 대상은 최태원 회장 형제와 구본상 LIG넥스원 전 부회장 정도입니다. 이들이 사면을 받은 대가로 투자를 한다 한들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비교수치가 있는데요. 정부가 11조8000억원의 추경을 포함해 총 22조원의 재정 보강을 통해 끌어올릴 수 있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라고 합니다. 그럼 최태원 회장 형제 등은 얼마만큼의 투자로 얼마만큼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까요?
물론 이런 미세하고도 계산적인 접근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핵심 인사들의 성향이 뼛속까지 친기업적이라고 전제하면 이들이 효용성 이전에 당위성 차원에서 기업인 사면에 접근했을 수도 있고, 각종 현란한 수치와 그림으로 기업인 사면의 효용성을 극대화해서 보고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경제활성화에 올인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 한 푼이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이런 차원이라면 상식적 의문에 봉착합니다. 지난해 말 황교안과 최경환 등이 군불을 땔 때 못 이기는 척하고 사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때는 쳐다보지도 않았을까요? 오히려 지금은 상황이 더 안 좋습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특사 논란이 불거졌을 때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법치주의’ 운운하며 사면권 엄격 제한을 강조한 직후입니다.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노건평 씨의 특사 로비 가능성을 ‘특별’ 발표했다가 소송을 당한 직후입니다. 게다가 황교안 총리와 김현웅 법무장관이 맨앞에 서서 이른바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한 직후입니다. 이런 때에 부정부패의 당사자를 법치주의를 훼손하며 사면해주는 게 작금의 환경과 궁합이 맞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바 ‘삐끼용’ 또는 ‘애드벌룬용’으로 기업인 사면을 던졌을 가능성입니다.
이미 대서특필되고 있듯이 기업인 사면은 경제활성화와 세트로 논해지게 돼 있습니다. 기업인 사면이 논란이 될수록 경제활성화 담론 또한 이슈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박 대통령은 두 가지를 얻습니다. 메르스와 유승민으로 점철됐던 국면을 돌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먹고사는 문제에 올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놓으면 다음 수를 놓기가 쉬워집니다. 박 대통령의 어제 언급 이후 나오는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사면 주대상은 생계형 사범 100만명 정도라고 하는데, 예로 드는 생계형 사범들이 도로교통법 위반자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1톤 트럭 몰고 과일과 채소 팔러 다니는 사람들 말고도 자가용 모른 직장인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 대상이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사면 지지율 상승 동력과 국정 수행 기반을 확충할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런 여세를 잘 관리·보존하면 내년 총선 때의 여당 지지세로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화룡정점은 기업인에게 찍을 겁니다. 세간의 예측과는 다르게 기업인을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면 박 대통령의 원칙을 재부각시킴으로써 지지율 상승 동력에 가속기를 달 수 있고, 법치주의를 재확인함으로써 부정부패 일소에 탄력을 붙일 수 있습니다. 반전을 통해 극적 효과와 정치적 초과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시나리오가 이렇게 완결된 형태로 짜여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 특별사면의 절차적 특성을 고려할 때 최종 판단은 광복절 즈음에 내리면 됩니다. 기업인을 넣을지 뺄지는 그때 가서 점 하나를 찍던가 지우던가 하면 되는 일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티 안 나게 일부 경제인 이름 위에만 점을 찍고 100만명이란 수의 위세로 덮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나리오를 환기하는 이유는 꼼수를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너무나 단선적인 분석과 대응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적 진창에서 빠져나올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 자체가 개연성보다 더 한 단계 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 기사는 7월 14일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바로 가기 : <시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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