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가 떴다. 13일 오전 현재 온라인 음원 사이트 멜론이 제공하는 멜론 차트의 1위(와리가리)와 10위(위잉위잉), 12위(Hooka)에 한 달여 전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밴드의 노래가 올라 있다.
전적으로 문화방송(MBC)의 <무한도전> 덕분이다. 혁오는 <무한도전>이 2년마다 내놓는 브랜드 '무도-가요제' 멤버로 합류한 첫 주 방송에서 곧바로 인터넷포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바로 다음 주에는 음원 차트까지 정복했다.
이전에도 혁오는 인디 신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피비아르앤비(PBR&B)의 청량함과 70년대 어번 솔(soul)의 가벼운 우울함, 90년대 한국 모던록의 감수성을 잘 버무린 사운드 스타일은 신선했고, 가사는 청춘의 불안함을 적극적으로 매만져 공감을 끌어냈다.
밴드는 적잖은 개별 싱글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미술을 전공한 보컬 오혁은 비주얼 아티스트로도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이미 지난해부터 홍대 신에서 혁오는 노래가 가진 사운드의 힘과 노래를 활용한 비디오의 신선함만으로 입소문을 탔다. 음반 유통업체 미러볼이 내놓는 케이-인디 차트(K-Indie Chart)에서 신보 [22]는 7월 첫 주까지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음반 판매업체 향뮤직이 제작하는 향차트에서도 [22]는 6월 셋째 주 1위를 차지했다. 음반은 일찌감치 동났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찻잔 속의 폭풍이었다. 음원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층이 아이돌 팬덤과 인디 신을 아우르는 팬덤으로 양분화된 현실에서, 혁오의 소비자는 후자에 가까웠다. 팬덤의 크기는 작고, 전파력도 약했다. 쉽게 방송을 타기도 힘든 게 현실이었다. <무한도전> 출연 전까지 혁오가 '핫한 밴드'라는 말은 거짓에 가까웠다.
결국, 예능 방송 출연이 아직 정규 데뷔앨범도 내지 않은 음악인을 일약 화제의 중심에 놓은 셈이다(혁오는 현재까지 미니앨범(EP) 2장을 내놨다). <무한도전> 출연 후에는 오혁의 헤어스타일까지 기사화가 되고 있다. 역으로 혁오가 <무한도전>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노래가 대중에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예능 방송 출연 덕분에 음악이 화제가 된 것이다. 음악은 곁가지였고, 결과에 불과했다.
굳이 '혁오 현상'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이는 지금 현재 텔레비전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을 반영하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복면가왕>도, <히든 싱어>도, <쇼 미 더 머니>도 근본은 마찬가지다. 음악은 예능을 동반하지 않는 한 대중에게 닿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음악이 전면에 부각됐던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마저 예능이 전면에 앞선 후속 프로그램에 밀려났다. 음악만으로는 대량 소비를 끌어내기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아이돌이 신보를 내고 어떻게 활동하는지만 봐도 이는 명확하다. 음반 홍보를 위해 예능 방송에 출연하고, 이를 통해 대량 소비를 만든다. 이제 새로운 아이돌은 키치적 소비를 위해 캐릭터의 성격을 제조하는 시대까지 왔다.
텔레비전의 변화된 입장은 대중음악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대중의 문화 소비 행태에서 음악은 어느새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음악인은 예능으로 소비되지 않는 한 잠재적 소비자를 만나 자신을 홍보할 기회를 찾기 어렵다. 윤상이 음식 방송에 나오고, 유희열이 개그 캐릭터로 소비된다. 음악이 어디에서나 일상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한 음원 유통 기술 혁신의 결과는 음악을 음악인 소비의 주변부로 몰아내 버리는 것이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대중에 가닿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혁오의 인기가 바꾸는 건 없다. 2년 전, 4년 전 장기하와 얼굴들, 십센치가 신선함을 일으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인을 위한, 음악만을 바라보는 여러 행사와 프로그램이 대중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시대, 음악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밀려나는 시대. 어디에서나 음악이 존재하는 오늘의 진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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