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찍어내는 데 성공한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지나면서 후반기 국정 운영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당·청 친위 체제 구축이다. 이를 위해 국회를 배제하고, 친박계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다른 손에는 사정의 칼자루가 들려 있다.
청와대, '공포 정치' 통한 친위체제 구축
청와대는 지난달 순차적으로 청와대 행정관 3명을 쫒아냈다. 세 명 모두 새누리당 당직자,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국회와 가까운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언론과 국회 측에 청와대에서 나오는 정보를 일부 건넸다는 의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청와대 정무, 홍보수석실 행정관들은 국회에 자주 왕래한다. 여당과 국회의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청와대의 입장을 국회에 알리는 것 등이 주요 임무다.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부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찰을 하는 방식으로 내쳤다.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정무라인과 홍보라인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기강 단속이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한 행정관은 최근 이른바 '친유승민계'로 분류된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박 대통령이 내놓은 '6.25 발언'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청와대가 '비박'과 가까운 행정관들을 내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또 다른 행정관도 역시 비박계 전직 의원실 출신이다.
일부 언론은 10일 여권 관계자가 "이병기 비서실장이 주변에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내가 알기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파'인 이병기 실장이 청와대 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장관들에게 "개인적 행로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총선을 앞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수두룩한데, 이들에게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고 한 것과 다름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6일 비박계인 권영진 대구시장으로부터 "부총리가 선거 준비 때문에 나온다고 그러는데 대구·경북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내년 총선 걱정할게 뭐 있나. 내년까지 나라 경제 좀 챙기고 나오는게 좋지 않냐'는 의견이 대구경북민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다"라고 뼈있는 말을 들었다. 최 부총리는 이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분간은 개각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케 한다.
박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정무수석을 새로 내정했다. 2012년 공천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칼'이 됐었던 현기환 전 의원이다. 현 전 의원은 현 정부 정무수석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던 인사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부산 지역을 비롯해 영남권 공천에서 현 전 의원의 영향력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현재 영남권 초선 의원들 대부분은 '박근혜-현기환'의 공천 과정에서 발탁된 인사들인 셈이다. 국회와의 소통보다는 국회를 통제하는 데 방점을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연일 강조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 드라이브를 위해, 노동계-국회 등의 의견 조율을 하기 위한 다목적 인사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 정무수석 내정자는 한국노총 출신이다.
柳 '악연' 친박 황진하와 柳 몰아내기 일조한 홍문표
새누리당은 주요 당직을 친박계가 차지할 조짐이 보인다. 유 전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분노'를 직접 맞닥뜨렸던 김 대표는 당직 인선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잇다. 특히 내년 총선 공천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 등 당 주요 보직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인사는 사무총장에 친박계 황진하 의원, 제1사무부총장에 홍문표 의원이다. 황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한 비박계 의원은 "그런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오는 12일 정도에 결론을 내리고, 14일 쯤에는 발표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무성 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일 오후나 모레 아침에(11일~12일)" 당직과 관련해 결론을 내고,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는 14일 쯤, 당직발표도 함께 할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12.12쿠데타 당시 '전두환 전속부관' 출신 황진하 의원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 시절 안보특보를 맡았던 인연으로 '친박'의 길을 걸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박 대통령의 편에 섰고, 18대 국회에서도 박 대통령에게 외교 안보 관련 조언을 해왔던 인물이다.
황 의원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기도 하다. 유 전 원내대표가 19대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사실상 추인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국방위원장 출마 선언을 했다. 경선을 통해 유 전 원내대표가 선출되긴 했지만, 황 의원의 출마를 두고 "유승민을 견제하기 위한 친박계의 의도가 아니었느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따지고보면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두 차례의 경선(국방위원장, 원내대표)에서 친박계의 도전을 받았던 셈이었다.
친박 색깔이 강한 황 의원이 사무총장에 거론되고 있는 것은 결국 청와대의 의중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반응이다.
제1사무부총장에 거론되는 홍문표 의원도 '유승민 정국'을 지내면서 유 전 원내대표 퇴진에 일몫을 했다. 친박계 '돌격대'였던 이장우 의원이 주도한 충청권 의원 모임에서 "당정청이 혼연일체가 돼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기위해 유 원내대표가 대승적 차원에서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낸 자리에 홍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이대로 가면 당 핵심 보직이 친박계에 넘어갈 판이다. 내년 총선 공천에서 비박계의 목소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놓다. 김무성 대표는 비박계 재선의원 모임에서 "나까지 건드리려 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김 대표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계파 막론하고 공히 통용되는 분석이다. 청와대를 등에 업고 '유승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친박이 공석이 된 비박 당직자들의 자리를 전리품처럼 챙겨가는 모습이다.
정치권 사정 바람·공안 바람 불어닥칠 듯
청와대와 당을 재정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또 하나 들고 있는 것은 바로 '검찰 사정'의 칼자루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안통 검사 출신인 황교안 국무총리를 임명한데 이어, 법무부장관에도 검사 출신인 김현웅 장관을 앉혔다. 김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대한민국을 부정하거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는 국가의 기본을 흔드는 것으로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감사원 감사위원에 검찰 출신 인사를 임명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김한길 의원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박지원 의원은 저축은행 금품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유죄가 나왔다. 공소유지를 맡고 있는 검찰이 총력을 다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명숙 의원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야권 재편에서 '사정 바람'의 영향은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련기사 : 박상옥 대법관 탄생, '한명숙 총선' 밑밥?)
여당도 예외는 아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전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검찰에 약점 잡힌" 여권 내 인사가 상당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키워드는 '친위 체제'와 '공포 정치'다. 그와 함께 '민생 행보'에는 더욱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본인은 국민과 속에 함께 있다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다. 재래시장은 '대목'을 맞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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