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통합진보당'은 자주파(NL)가 주축이었던 구 민주노동당과, 유시민·천호선 등이 소속된 구 국민참여당, 평등파(PD)에 속한 심상정·노회찬·조승수 등 구 진보신당 탈당파가 함께 만든 정당이었다. 그러나 19대 총선 후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을 겪었고,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까지 발생한 끝에 분당에 이르렀다.
분당 결과 두 개의 원내 진보 정당이 존재하게 됐다. 한 갈래는 NL 내의 다수파였던 경기동부연합과 부산울산경남연합이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면서 해온 당이다. 이 정당은 지난해 법무부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됐다. 이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민주주의 위축 우려가 일었다.
다른 한 갈래가 지금의 정의당이다. 조직세에서 이들은 구 '통합진보당'보다 소수파였다. 해산 당시 통합진보당 당원 수는 10만, 현재 정의당 당원 수는 현재 2만 명가량이다. 그러나 NL의 한 갈래인 구 인천연합과 국민참여당계, 진보신당계 등 3개 정파가 한 집 살림을 하면서 오히려 '통합진보당'보다 '통합'이라는 이름에 걸맞다는 평을 받았다.
2013년 7월 당시 진보정의당은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고 천호선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다. 그 후 2년, 이들은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2년 동안 당 대표를 맡았다가 이제 퇴임을 앞둔 천호선 대표를 지난달 29일 당사에서 만났다. 천 대표는 지난 2년간 이룬 성과로 3가지를 들었다. 이념과 정책 노선의 현대화, 당 문화의 개방화와 대중화, 당 운영의 민주화였다. 천 대표는 "'운동권 언어'는 사라졌다"며 "정파 중심 운영을 벗어났다"고 자부했다. 그는 이같은 성과를 '2기 진보 정치'라는 말로 표현했다.
정의당이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와 '진보 4자 통합'을 추진하는 것도 '더 큰 진보 정당'을 통해 2기 진보 정치를 해보겠다는 구상과 연결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인터뷰 바로 전날인 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에서 통합에 부정적 결론이 난 데 대해 천 대표는 "그러나 통합이라는 방향은 옳다"며 "(노동당을 제외한) 3자 통합이 되든 다른 어떤 형식이 되든 그 문제는 고민해야 한다"고 계속 추진해 나갈 뜻을 밝혔다.
단 그는 노동당 내 일부 그룹을 의식한 듯 "'쟤들은 개량이다', '신자유주의다' 이렇게 전형적으로 우리를 비난하는 분들은 참 같이 하기 쉽지 않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천 대표는 기존의 진보 대중 조직을 당 지지 세력으로 조직화하는데 실패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의당이 노동을 대변하려 하고 인내심을 가지면 민주노총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면서도 "배타적 지지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기존의 진보적 대중 단체들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며 "너무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의당의 장점에 대해 "다른 당처럼 무자비한 대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념 대결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마침 새누리당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 문제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사무총장 인선 문제가 불거진 와중이었다. 천 대표는 "선배 세대에 이어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고, 당원들의 공통 분모가 확대되고 있다. 하나의 꿈을 가진 하나의 정당이 돼가고 있다"며 정의당에 관심을 당부했다. 다음은 천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
"노동당 총투표 부결됐지만, 통합은 옳은 방향"
프레시안 : 정치권에 이슈가 많은 때다. 민심을 어떻게 보고 있나?
천호선 : 국민들이 제1당과 제2당의 모습을 보고, 정치에 대해 거의 포기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는 (유 원내대표에게) 정치를 그만두라는 수준의 압력이다. 새누리당이 그래도 그간 자기 변화도 해왔고, 특히 유 원내대표의 교섭단체대표연설이 인상적이어서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함께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정치를 기대했다. 유 원내대표에 대해 범 진보 진영이 더 놀라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거의 조폭 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분들도 상당히 회의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가만히 보면 10년째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3김 시대에 인물 중심 지역 구도가 (정치권에) 생긴 것이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정당이 자기 변화를 해야 했다. 지역 구도를 뛰어넘어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게 하고, 아래로부터의 정당 운영이 되도록 혁신해야 했는데 그걸 못 하고 있다.
사실 문재인 대표가 선출되면서 저도 기대를 가졌는데, 4.29 재보선 패배 책임을 문 대표에게 묻는 것은 너무 과도하다고 보지만 그에 대한 문 대표의 대응도 정면 돌파가 아니었다. 혁신의 큰 방향은 너무나 분명하고, 혁신은 당 대표가 주도해서 해야 하는데 혁신위를 따로 만들었다. '외주 혁신'이다. 또 혁신위는 혁신안을 만드는 것이고, 실행은 문 대표가 해야 하는데 (그 당이) 대표에게 그런 권한을 인정하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물론 저는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을 기대한다. 제1야당이 잘 돼야 야권 전체가 활성화되니까. 그런데 어려워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는 국민 생각만큼만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거기에 이 말을 꼭 덧붙인다. 국민의 정치 의식 수준은 그 나라 정당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즉, 정당의 수준이 그 나라 국민의 정치 의식 수준을 결정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체돼 있거나 퇴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근대적 정당이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당 후보로 나와 당선된 게 아니라, 대통령 되고 난 뒤에 국가 권력을 이용해 자유당을 만들었다. 새누리당의 뿌리인 공화당도 쿠데타 후 중앙정보부부터 만들고 중앙정보부가 만든 당이다. 대중이 참여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위로부터 만든 정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그 뿌리는 한국민주당에 있지 않나. 친일 지주의 당이었다가, 권력을 잡지 못한 인물들의 당, 그 인물들의 지역 기반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이 됐다.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권력을 이용해 보수 세력을 단결시키는 등 나름의 자기 변화를 해 왔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야말로 혁신이 정체돼 있다. 구호는 있지만 챗바퀴를 돌았던 게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진보 진영 재편 이야기로 자연스레 넘어가자. 방금 말씀처럼 기존 정당들이 혁신을 하지 못하고 국민의 정치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데, 진보 재편이 그에 대한 답이 될까?
천호선 : 전통적 진보 정치는 민주노동당부터 시작됐다. 민노당의 '진보 정치 1기'는 1980년대의 운동권 이념과 가치, 헌신과 열정으로 무상 급식 같은 진보적 이슈를 통해 국민의 삶을 바꿨다. 지지받은 만큼 의석 확보를 못한 것은 한계였지만. 그러나 시대가 많이 변해서 진보정치도 혁신이 필요했는데, 여기서 구 통합진보당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위에서 정의당을 시작했다. 정의당에서 '진보 정치 2기'가 시작됐다고 감히 자부한다. (요체는) 3가지인데, 첫째, 낡은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시대에 맞게 노선과 정책을 바꿨다. 올해 봄에 새 강령을 만들었는데, 이 강령을 보면 무슨 주의(主義)나 이념을 제기하기보다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을 담았다. '운동권 언어'는 거의 사라졌고, 합리적이고 진영 논리를 벗어난 정책을 내세웠다. 예를 들어 공무원연금이 문제였을 때, 옛날에는 '전공노가 우리 편이니 무조건 편을 들어준다'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공무원연금은 개혁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시작했다. 담뱃세 인상에 대해서도 서민 증세라는 면에서는 반대했지만 흡연율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게 담뱃세라는 면에서 찬성했다.
둘째,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다. 예전에 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느냐 마느냐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필요할 때 할 수 있다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운동권 언어 같은 표현도 많이 줄어들었고, 예전에는 전투적 집회를 많이 했는데 이제 설득 중심의 대중 활동 위주로 변화했다. 우리 당의 거의 유일한 자산이 6000만 원짜리 LED 모니터가 붙은 '이동 당사'(전광판 차량 : 편집자)다.
셋째,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정당 운영이다. 예전에는 당 내 정파들의 힘이 강했고, 당이 정파들 간의 조정과 합의를 통해 운영됐다면, 지금은 철저히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전국위원회 회의를 했는데, 같은 정파에 소속된 분들이 발언하는데 의견이 다 다르더라. 옛날엔 정파가 같으면 이게 다 똑같았다. 그래서 표 대결을 통해 상대 정파를 이기고 배제하는 게 진보 정치에서 많이 나타났던 현상인데, 이제는 정파 중심 운영을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이 3가지 면에서 정의당이 진보 정치 2기를 시작했다고 자평하지만, 그럼에도 숙제는 남아 있다. 아직도 주변에 건강하고 합리적인 진보 정치 세력들이 있다. 제2의 창당은 처음부터 정의당의 과제였다. 모든 당을 다 통합하는 하나의 당을 만들자거나 무조건적 단결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독자 노선을 따르는 정파도 있고, 함께하지 않겠다는 분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4자 연대를 통한 진보 정치 재편이었다.
(함께하지 않겠다는) 그 분들을 제가 비판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녹색당은 독자적 정당으로 계속 나가겠다는 입장 아닌가. 저는 녹색당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언젠가 함께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그들의 기조를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또 노동당 안에도 독자 노선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배타적인 그룹, 자신들과 다르면 당 같이 안 한다는 그룹도 있긴 있다. 그게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프레시안 : 바로 어제(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에서 4자 통합 가부를 묻는 총투표 발의안이 부결되지 않았나. 결국 노동당은 4자 통합에서 빠지겠다는 뜻인데.
천호선 : 냉정히 봐야 한다. 저는 노동당 당원들 다수, 반 이상은 통합을 지지한다고 본다. 나경채 현 대표가 진보 결집을 내세우고 당 대표가 된 것에서 그게 확인됐다. 그런데 노동당 당대회는 대의원들이 결정을 내리는 것인데, 대의원은 보통 일반 당원들보다 당 활동에 더 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 더 많게 돼 있다. 대의원 의결 결과 (총투표 찬성이) 과반이 안 됐지만, 그게 노동당 당원 다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당대회에서는 과거 진보신당 때의 경험이나 기억 때문에 부정적인 결론이 났다고 본다.
우리도 노동당 당대회에서 그런 결론이 날 것이라는 걸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4자가 하려고 했던, 통합이라는 방향은 옳다. (노동당을 제외한) 3자 통합이 되든 다른 어떤 형식이 되든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고민해야 한다. 애초에 4자 결집이란 것이 '4자끼리만 통합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4자가 함께 진보 진영 전체에 '함께 당을 하자. 우리가 앞장서겠다'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노동당에서 결정이 나지 않았고 그것은 아쉽지만, 흔들리지 않고 추진돼 나가야 한다고 본다. 고민을 함께 해보겠다.
어제 제가 노동당 당대회 가서 축사도 하고 왔는데, 우리가 만들려는 진보 정당의 원칙에 대해 얘기했다. 첫째, 진보의 가치에 동의하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 민주주의적 운영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 생각이 달라도 배제하지 말고 공존의 태도를 가지자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런 정당을 꿈꾼다. 노동당원 여러분들도 이런 꿈을 같이 꿔 보자'고 얘기한 건데, 물론 그렇게 생각지 않는 분들도 있다. 전형적으로 우리를 비난하는 말이 있지 않나. "쟤들은 개량이다, 신자유주의다" 이런 것. 이런 분들은 참 같이 하기가 쉽지 않죠. (한숨)
프레시안 : 내년에 총선이 있는데, 향후 통합 관련 일정은?
천호선 : 9월에 모일 수 있는 분들이 최대한 모여야 한다. 바로 못 들어오는 분들은 그 뒤에 들어오면 된다. 9월에 한다고 해서 그때 완성이 되는 게 아니다. 애초에 '더 큰 진보 정당'이란 것도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진보 정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가진 여러 분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이유와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9월에 최대한 모으되, 그때 합류하지 못하는 분들은 그 후에' 이렇게 가는 것이고, 이후로도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 총선만을 놓고 논의하는 것도 아니다. 총선 전까지 다 모여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그런 공간과 이유를 만드는 것은 9월에 해야 한다.
"총선 때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이? 통합은 불가, 연대는 가능"
프레시안 : 통합 진보 정당이 만들어지더라도, 새정치연합과의 선거 연대 문제가 분명히 또 당 내외로부터 제기될 것이다. 이와 관련, 새로 탄생할 정당에 대해서도 당의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총선을 위해 급히 만들어진 것이라는 비난이 선거를 앞두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천호선 : 일단 진보 통합은 급조된 게 아니다. 급조해 봐야 시너지가 나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가운데 뭐 더 특별히 유명한 사람, 당에 온다고 국민들이 표 줄 그런 사람이 있지도 않다. (웃음) 9월에 통합을 해도 지지율이 의미 있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단지 결집을 하자는 게 아니다. 진보 정치 2기를 맡아나가는 정당이 돼야 한다. 이 정당은 실패해선 안 된다. 같이 하는 분들 모두가 트라우마가 있다. 노동당도, 우리 당 사람들도, 국민모임도. 이들 모두의 대원칙은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 입장은, 당이 명사 정당, 엘리트 정당이 돼서도 안 되고, 정파 연합 정당 같은 방식이 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통합하고 창당하면 매번 책상에 앉아서 무슨 표현, 무슨 이념을 강령에 넣느냐 마느냐 가지고 만날 논쟁하고, 지도부 구성 비율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 이런 것을 논의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선거 연대 문제는, 제가 올해 초 기자 회견을 할 때 총선 목표를 20석이라고 했더니 기자분들이 '그게 되겠냐'면서 웃더라. (웃음) 그런데 정치는 '운칠기삼'이다. '운'이라는 게 무슨 재수, 행운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선거 시점의 정치 환경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정의당이 더 큰 진보 정당이 된다면, 선거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연합 정치가 이뤄진다면 20석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4자가 모이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야권 연대는 2010년 지방선거 때는 성공적이었으나 2012년에는 그렇게 성공적이지도 못했고 오히려 그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됐다. 국민들이 볼 때 식상하고, 선거를 위한 일시적 결합으로 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별로 표가 안 된다는 걸 느꼈을 테고, 우리도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의 표가 잘 당겨지지 않는 것을 재·보선 등에서 경험했다.
저는 야권 연대가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과거의 야권 연대는) 그저 선거 연대 수준, 즉 선거 직전에 후보를 단일화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선거 후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010년 선거에서 당선된 새정치연합 소속 시도지사들이나 기초단체장들이 민주노동당과의 합의문을 지켰나?
201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통합진보당 사태의 책임이 크긴 하지만, 당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여러 합의를 한 게 다 휴지조각이 됐다. 야권 연대가 선거 연대만이 아니라 의정에서의 연대를 통해 정치를 바꾸고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에는 우리도 책임이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도 같은 책임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우리 당에 대해 '무시하거나, 흡수하거나'라는 2가지 중 하나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정의당을 인정하고 '작지만 협력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무시하거나 흡수하려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중에 우리와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당을 놓고 봤을때는 우리와 가치와 노선이 많이 다르다. 또 당 운영을 놓고 봤을 때에도 운영 원리가 다르다. 그 당은 개혁이든 반개혁이든 상층부에서 권력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지역과 세대의 편중이 나타나 지지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당 대표나 국회의원 후보가 안 만들어지는 구조다. 당을 같이 할 수는 없다. 또 당을 합친다고 지지율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지난 2011년 '시민통합당'을 만들어 민주당과 통합했지만 지지율이 얼마나 올라가더냐. 정의당과 합친다고 해도 지지율 '덧셈'한 것만큼도 안 오를 것이다.
프레시안 : 야권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그러면 어떤 면에서 하는 말인가?
천호선 : 거시적이고 과감한 전망이 필요하다. '정권 교체를 위한 야당 연합' 같은 구상을 가지고 중장기적 협력과 연대를 해야 한다. 그게 제가 제시하는 방안이다. 그렇게 될 때 시너지가 난다. 고유하게 있는 진보적 지지층에 무당파까지 합쳐져 '곱셈 지지'가 가능하다. 정권 교체는 결국 중도 개혁에서 진보까지를 포괄할 텐데, 새정치연합 내의 진보적 분들과 함께 진보적 의제를 우리 당이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과거에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도 했는데, 이런 연립 정부를 왜 못하겠느냐. DJP 연대보다 훨씬 국민 공감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총선 연대가 될 수 있다 본다.
정리하면 '통합은 불가, 연대는 가능'이다.
프레시안 : 내년 총선에서는 어떤 의제를 놓고 선거전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천호선 : 올해 초에 '우리 당은 비정규직 정당'이라는 표현을 했다. 기존에 민노당을 만든 게 민주노총이었지 않나. 기존의 대기업 정규직,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그래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전체 노동자의 50%가 넘는 비정규직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비정규직을 우선 대변하자는 것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이기도 하고, 과거의 전통적 노동운동 방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기도 했다.
지금도 노동 중심성을 당에서 강조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과거의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보다 스스로 조직화하지도 못하고 대변받지도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들을 대변하는 것이 정의로운 정당으로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과감한 비정규직 정책이 총선에서 가장 핵심이다.
두 번째는,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의제인 탈핵 문제다. 삼척·경주·고리의 사례를 보면 생명과 생태라는 가치 앞에 보수, 진보가 없다는 것이 검증됐다. 탈핵과 생태가 야권의 전면에 내세워져야 한다. 세 번째는, 총선 전에 정치 개혁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이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내세워야 한다. 이 3가지 면에서 야권 전체가 공통적 정책 비전을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필수적이지 않아"
프레시안 : 노동 중심성을 얘기했는데, 현재 정의당에 대한 노동계의 조직화된 지지가 약한 것은 사실 아닌가.
천호선 : 앞서 자유당·공화당 얘기도 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 정당은 민주노동당이었다. 여기서 다시 '현대적' 진보 정당을 만들겠다는 게 제 공약이었다. 이념·노선, 문화, 민주적 운영이라는 3대 과제를 내세웠고 성과도 있었다고 자평한다.
과거 민주노총은 민노당에 대해 배타적 지지를 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과 정당의 차이를 분명히 구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노당이 민주노총 대리인이냐는 비판도 받았다. 꼭 그렇지는 않았지만, (민노당이)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만 대변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또 하나, 민노당 안에서 당직과 공직을 분리했던 시절이 있었다. 의회는 개량적이고, 그래서 의회 밖에서 (당이) 의회를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이 배타적 지지와 당직·공직 겸임 금지가 민노당의 대중 정당화를 실패하게 하고 안주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당도 민주노총의 지지를 매우 바라지만 과거 식의 배타적 지지가 복원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번에 4자 재편 과정에서 노조 분들을 만났는데, 노조 조직에서도 30·40대 위원장들은 언어나 인식 자체가 오래 노동운동을 해온 50대 이상 민주노총 간부들과 완전히 다르더라. 어떤 분은 스스로 '전후(戰後) 세대'라고 표현했다. NL-PD(국민파-현장파) 갈등 이후에 노동운동을 했다는 거다. 이 분들은 기존 민주노총의 운동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진보 4자 재편에 대한 열망과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진 분들이었다. 이 분들이 민주노총의 2세대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이 분들이 어떻게 다르냐면, 옛날에는 (노조에서) 정치 교양 할 때 '우리는 민노당 배타적 지지하니까…'라고 하지 않았나. 이 분들은 우리 당, 노동당, 녹색당 3군데의 활동을 다 조합원들한테 홍보해 주더라. 그런 접근이 옳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주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정치적 교육이 훨씬 바람직하다.
진보 정치 2기는 정의당에서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이번 당 대표 선거에 나온 조성주 후보가 과연 대표까지 맡을지는 모르겠지만 진보 정치 '2세대'라는 이들도 나왔다. 마찬가지로 민주노조 운동에도 2세대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의당이 노동을 대변하려 하고 인내심을 가지면 민주노총의 지지를 회복하고 그뿐 아니라 한국노총, 비정규직 노조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기존의 진보 대중 조직 가운데에는 해산된 구 통합진보당에 우호적인 단체가 많다. 이들 세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천호선 : 통합진보당에 대해 제 생각은 명백하다. 그 당의 많은 당원들은 우리와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만 통합진보당을 주도했던 분들은 2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관행적으로 있었던 일이지만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불법이거나 문제가 있었던 일들이 있었다. 물론 노항래 당시 후보처럼 한 표도 부정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러나 당시 저는 노 후보를 포함해 모두가 함께 책임을 지자고 했다.
반면 그 분들은 여기에 대해서 첫째, '우리는 잘못 없다'고 하거나, 둘째, '왜 우리한테만 책임을 지라고 하느냐' 이렇게 오해했다. 또 하나, 그분들로서는 억울할지 모르지만, 진보 정치와 진보 운동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는 자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분들과 진보 정치 2기에 함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프레시안 : 통합진보당 '주도 세력' 말고, 이를테면 농민단체라든가 이런 대중 조직을 어떻게 정의당 지지세력으로 조직화할지를 물었던 건데…. (웃음)
천호선 : 특정 단체는 정의당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서 접근 자체가 어렵다. 그렇지 않은 단체의 경우에도, 외형적으로 (정치권 내 진보 세력이) 쪼개져 있어 어느 한 쪽을 지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하지만 저는 최근 그 분들의 생각도 많이 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진보적 대중 단체들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본다. 너무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영 논리를 벗어나 노동자든 농민이든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때그때 정치 방침을 다수 의견을 모아서 결정할 수는 없나? 예를 들어 총선에서 정의당 지지했어도 잘 못하면 바꿀 수도 있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협약에 의한 배타적 지지에 따른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 익숙해져 있는 기존 대중 조직 지도자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새로운 세대로 교체돼야 한다고 본다. 아직도 1980년대식 사고에 머물러 있다.
프레시안 : 정의당 내부 이야기다. 앞서 천 대표가 '당 운영에서 정파가 사라졌다'고 했지만, 여전히 정파라는 틀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4.29 재·보선 과정에서도 '참여당계'라는 호명이 나오기도 했다.
천호선 : 정파 문제가 없어졌다는 게 정파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정파는 있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참여계 같은 경우(천 대표는 국민참여당 출신이다 : 편집자), 참여계라는 틀에 머무르지 않고 이제 사회민주주의로 가자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 것이 정파의 긍정적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 내 모든 정파에서 '우리만 옳다. 다른 데는 배제하자' 이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문화는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제가 전국위원회를 구성할 때 '60명이 넘지 않게 하자'고 제안했다. 대의원대회는 그냥 대의기구지만, 전국위원회는 대의 기구이면서도 동시에 숙의 기구이니까 50여 명 정도면 충분히 중요한 의제에 대해 토론하고 설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런 과정을 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정파 주도 정당 운영의 폐해가 극복됐다고 본다.
"정의당은 '무자비한 대결' 없는 당…꿈이 있다"
프레시안 : 앞서 내년 총선 의제 중의 하나로 정치 개혁을 들었다. 현재 국회에서 정치 개혁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고,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 등도 논의되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천호선 : 오히려 지금은 개악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중앙선관위에서 내놓은 안(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실에서 만든 것과 똑같다. 권역을 너무 잘게 쪼개지만 않는다면 정의당의 입장인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유사한 면이 많다. 그래서 우리 당이 선관위 안을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선관위는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2대1이 돼야 한다고 하는데, 결국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선관위는 '저희가 정수 문제를 제기할 것은 아니다'라고만 한다. 건드리고 싶은데 못 건드린다는 말이다. 의원 정수를 늘리는 개혁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국민들 비판을 받으면서 할 용의가 없다. 물론 우리 당 내부에서도 의원 정수 문제는 논쟁이 있다. 심상정 전 원내대표나 나는 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회찬 전 대표는 국민 정서와 부딪혀서 명분을 갖기 어렵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부분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했는데, 그 자체는 본인도 실패했다고 평했지만 그 대연정 제안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하자고 했던 게 바로 선거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중대선거구제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든 하자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승부를 걸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노무현처럼 치열하게 붙어봤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정부 시절 지방자치제를 단독 투쟁으로 따냈다. 그 정도 결의를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노 그룹이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정치 제도를 조금이라도 개선시키거나, 최소한 개악은 막아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이것이 야권 연합의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해서 승부를 걸지 않는 것은 '노무현 정신'을 잇는 게 아니다. 저희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 사표를 줄이고 민심을 반영하는 정치를 하자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프레시안 : 내년 총선에서 정의당은 몇 개 지역구에 후보를 내나?
천호선 : 올해 초에 100석을 내겠다고 했는데,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총선 캠프를 미리 만들어 펀드도 모으고 지금부터 지역 활동을 하게 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출마할 후보를 정의당이 70명까지는 만들 수 있고, (진보 통합 과정에서) 새로 오실 분들까지 하면 246개 지역구 중에 최소 절반에서 최대 200곳까지 낼 수 있다. 반 이상은 낼 거다.
프레시안 : 천 대표는 계속 수원에서 출마하나?
천호선 : 가을쯤 결정하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출마하든 하지 않든 당을 위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다.
프레시안 : 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총선 계기 정계 복귀 가능성이 없나?
천호선 :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본인이 출마할 생각이 1%도 없더라.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천호선 : 앞서 정당 수준이 국민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하면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가진 근본적 한계가 수정되지 않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정의당은 진보 정치 2기를 하고 있고, 과거의 이념에서 탈피했다고 생각한다. 강령을 통해 종합적 국가운영 비전을 만들려 하고 있고, 북한 인권과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적시했다. 녹색당과 거의 차이가 없는 생태적 내용도 강령에 담았다. 유럽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성과를 계승한다는 얘기도 있다.
정의당은 다른 당처럼 '무자비한 대결'이 있는 당도 아니고, 이념 대결이 있는 당도 아니다. 선배 세대에 이어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생각이 다 일치할 필요는 없지만, 당원들의 공통분모가 확대되고 있다. 정파연합 정당이 아닌 하나의 꿈을 가진 하나의 정당이 돼 가고 있다. 이번 당 지도부 경선 과정에서 이런 변화가 잘 보여지고 있다. 정의당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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